70년만에 오신 손양원 둘째 따님을 모시며..

문답 / 발언

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70년만에 오신 손양원 둘째 따님을 모시며..

사회 0 167 2023.07.30 08:54
손 목사님이 신풍에 오신 것은 1939년 둘째 따님은 오신 다음 해 1940년에 출생했습니다.
1952년에 신풍교회가 개척하던 바로 그 시점에 율촌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듯하고, 이듬해 졸업하면서 부산으로 가게 됩니다.
어제 저녁 신풍을 떠난 지 70년만이라 하시며 다시 방문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손 목사님 가정을 대하는 자세를 알고 계십니다.
손양원 딸의 이름을 평생 감추고 살아 오셨습니다. 그 것이 그 상처였고 또 훌륭한 부모님께 자신이 부족을 느끼면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 교회에 오셨고 우리 교회의 여러 자세에 대해 깊이 감사를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받아야 하는 인사입니다.

오늘 주일 예배를 참석하시고 예배 후에 교인들께 현관에서 인사를 하실 듯합니다. 반갑게 따뜻하게 진심으로 인사해 주셨으면.
첫 딸 손동희 권사님과 세째 손동연 사모님은 작년의 손동길 목사님 결혼식도 오셨고 또 여러 기회로 자주 제가 뵙고 있습니다.
둘째 따님은 저도 처음 뵈었습니다. 80대 중반의 연세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아이들까지 귀한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흔히 우리는 역사를 말합니다. 손양원 가정사를 직접 겪은 가족의 끝자락이라도 우리가 접하며 역사를 신앙에 익혔으면 합니다.


손동수 둘째 따님은 신풍에서 손동님 성함으로 어린 시절 모두가 기억합니다.
신풍에서 태어났고 그 해에 손 목사님은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갔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막 태어난 딸을 업고 면회를 갔고 이 대목이 사랑의원자탄에 나오는 장면들입니다. 해방이 되자 여섯 살에 해방이 되고 아버지를 뵙게 됩니다. 그리고 1948년에 오빠 둘을 여순반란사건에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장례식 때 오빠를 묻게 될 구덩이를 물끄러미 보는 둘째의 사진, 한국 교회의 모든 분의 마음에 말로 표현 못하는 심정을 심었습니다. 1950년, 우리 나이 11세에 손 목사님까지 순교하자 온 가정은 태풍에 찢겨 졌고 어린 나이에 어떠했을지 느껴 보면 좋겠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손 목사님 신풍교회가 개척한 1952년, 초등학교 6학년이나 당시 학제는 가을 입학에 6월 경 졸업이어서 부산으로 간 시점은 제가 오늘 다시 여쭤야 합니다. 부산에서 교육대학의 음악과를 졸업했고 교육대의 본교가 부산 서부교회 골목 맞은편의 현재 화랑초등학교가 있는 곳이어서 서부교회도 잘 아십니다.

예배 때도, 또 지금 이영종 주택과 관사 쪽을 사용하고 계시니 주변에서 뵐 때마다 마음 깊이 인사를 부탁합니다.




정확한 일시는 오늘 뵙고 다시 수정합니다. 현재 글은 인용을 보류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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