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1.10.27 창1:3 삼위일체의 삼위적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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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1 0 91 2021.10.2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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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1.10.27 창1:3 삼위일체의 삼위적 창조



211027 수새

제목 : 삼위일체의 삼위적 창조

찬송 : 191장(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본문 : 창세기 1장 3절 -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우리가 말하는 이 말을 말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이름을 가진 예수님이 제 2위 신성 하나님으로 계실 때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과 창세기 1장을 겹쳐 비교를 해 보면 삼위일체하나님 홀로 계실 때 하나님이 완전자며 절대자며 하나님이 자존자로 만물이 없고 아무것도 없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을 보여 줄 필요도 없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완전자 하나님이 완전자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 우리를 만들어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만든 분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서 만들어진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라,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데 하나님을 닮은 우리로 만들었으니 반대로 우리가 우리를 보면 우리를 만든 하나님을 알 수가 있도록 이렇게 만들었으니 하나님이 하나님을 보이도록 만드는 그 면을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 2위 성자 하나님이 책임을 지셨고 그래서 성자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대학생이 시내 다니다가 자기를 소개하며 ‘제가 학생입니다’ 배우는 중이라 그 말입니다. 대학생이 초등학생을 데리고 과외를 할 수가 있습니다. 시내에서 만난 사람에게 ‘제가 과외 선생입니다, 학원 강사입니다’ 자기가 강사라는 직업 (학원에) 과외교사라는 말로 자기를 소개하면 가르친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고 자기가 ‘학생입니다’ 그러면 ‘배울 것이 있어 배웁니다’ 이걸 강조하는 겁니다. 나이가 좀 늦은 사람들은 삼십대에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른살, 서른세 살에 박사학위를 밟는 사람은 결혼을 해서 아이도 가지고 있는데 나이가 든 사람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옆에서 ‘어찌 되십니까’ ‘예, 학생입니다’ 박사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배울 것이 있다 할 때는 박사인데 박사라 하지 않고 ‘학생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교수 열 명 중에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삼분의 일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대게 석사 대학원 나오고 대학에 정식 교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옆에서 박사를 따 싸니까 너도 나도 교수가 돼서 서른 살이 아니라 사십 살, 오십 살에도 국립대 교수를 하면서 저 어디 다른 학교 가 가지고 또 박사 학위를 대충 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십에 대학의 정식 교수인데 ‘학생입니다’ 해도 맞고 아직도 배울게 있단 말입니다. ‘교수입니다, 아 대학의 선생님입니다’ 이 말도 거짓말이 아니고 이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모든 것을 진행하시는 완전자 하나님. 이때 성부 하나님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 모든 걸 계획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모든 것을 완전하게 진행하는 이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서 하나님만 계시면 남들이 알 수 없는데, 하나님이 아닌 존재는 볼 수가 없는데 창조를 할 때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만들 때 우리를 어떻게 만들며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알게 해 줄까? 이 면으로 가지고 건설한, 이 면으로 가지고 창조를 맡은 분이다, 요렇게 말을 할 때 제 2위 성자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 ‘말씀’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모든 걸 책임지시고, 모든 걸 진행하시고, 모든 걸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만약에 ‘아버지’라 한다면 이 관리, 이 목적, 이 진행 전부를 흠 없고, 점 없이, 차질 없이 진행하기로 하셨더라면 성자 하나님은 성자라는 이름을 성경에 적지를 않았을 터인데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영원을, 우리를 만들었다가 우리가 죄를 지어 우리가 깨지고 어둠 속에 한번 빠져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좋게 되어 져야 더 났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 그 내용 속에 고장이 있고 우리의 타락이 들어 있다면, 그 타락 잘못된 걸 해결을 하는 데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해결을 해야 해결이 되어 지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로 보면 성자 예수님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해결하는 아들, 좋은 아들 하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렇게 표시를 한 겁니다.

우리 몸에 손이 하나밖에 없었더라면 어디에 있었든지 오른손, 왼손 거르지 않고 그냥 손이라고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손이 두 개이기 때문에 오른손 왼손, 오른팔 왼팔이 생긴 겁니다. 두 개가 아니었더라면 오른팔, 왼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팔이지. 그런데 팔이라고 왜 이름을 붙였냐? 다리가 있으니까 팔로 구별하는 겁니다 팔다리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가운데 한 개만 있다면 오른쪽 등, 왼쪽 등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핸들도 움직이지를 못 하면 그냥 로켓이지 로켓은 직진만 합니다. 그런데 로켓은 직진만 하고 총알도 직진만 하는데 활도 직진만 합니다. 활, 총알, 로켓은 좌회전 우회전이 없습니다. 차는 핸들이 있기 때문에 이게 우회전, 좌회전이 생긴 겁니다. 그래도 로켓이 좌회전, 우회전이 없어도 앞이 있고 중간이 있고 뒤가 있기 때문에 1단, 2단, 3단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면 그냥 하나님인데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완전자인데 모든 것을 책임지고, 완전자인데 영원히 진행하시고, 완전자인데 모든 것을 다 마지막에 보니까 흠도 점도 없는 절대자라, 그냥 이건 한마디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안을 들여다보니 걱정하며, 책임지며, 모든 걸 지휘하는 하나님, 우리를 죄 지은, 죄 짓는 우리로 만들어야, 만들어 놓고 하나님과 같아집니다. 같아지도록 길러 갈 수 있습니다. 걱정하시는 분, 하나님 아버지. 그 걱정을 해결하시는 분 성자 예수님. 해결이 될 때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 성자인데 그런데 성자 하나님의 이름이 왜 또 말씀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주니까. 표시를 하니까. 내 속마음을 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고 만물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걸 보면 볼 수 없는 하나님 아지 못 하는 하나님을 읽을 수 있고 알 수가 있습니다.

만들어 놓은 하늘을 보니까 이걸 만든 분은 광대하구나, 그 높이를 측량을 할 수가 없구나, 만들어 놓은 바다를 알아갈수록 이걸 만든 분은 깊은 분이구나, 깊고 깊어서 그 끝을 알 수가 없겠구나, 파도치는 위만 우리가 알고 살았습니다. 그 속을 들어 가보면 어떤 세계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점점 알아가고 있는 겁니다. 손바닥 끝에 있는 세포 하나 속을 들여다보면 온 우주를 축약하여 집어넣은 것처럼 정밀한 세계가 있습니다. 아, 그냥 넓고 그냥 크고 그냥 위대한 게 아니라 그 정밀함과 세밀함이 영원무궁이겠구나. 창조를 통하여,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알려 주도록 창조를 만든 분,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하신 겁니다. 창조의 성부 하나님은 빠졌는가? 아닙니다. 창조의 아버지 몰래, 하나님 아버지가 전부인데 하나님 아버지 없이 아들 혼자 몰래 세상을 만드셨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삼위일체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성부적으로 보면 성부 하나님으로 다 볼 수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으로 보면 우리가 천지를 창조한 그 속에 성자 예수님적인 창조를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말씀이 만물을 만드셨다, 말씀, 말씀만, 성자 예수님만 만드셨다가 아닙니다. 성자 예수님이 만드셨다, 성부 하나님이 만드셨다, 성령 하나님 만드셨다 다 맞는 말입니다.

고속도로는 나라가 만들었다, 맞습니다. 고속도로는 건설교통부가 만들었다, 맞습니다. 고속도로는 현대건설 건설회사가 만들었다, 맞습니다. 고속도로는 노동자가 피땀 흘려 곡괭이로 만들었다, 맞는 겁니다. 칠십 년대, 팔십 년대만 해도 현대자동차는 정주영 회장이 만들었다, 그러했습니다. 구십 년대가 되니까 회장 그 놈은 돈만 쓰고 댕긴 나쁜 놈이고 노동자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만 만들었다, 이래서 회장 죽인다고 그 난리를 당한 겁니다. 지금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회장이 만들고 노동자가 만들었다, 회장도 만들고 노동자가 만드니 둘이 대화하는 것이 맞다, 노사 이제 대화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라 정확하지 않고 어쩔 때는 이쪽, 어쩔 때는 저쪽 이렇게 휘청입니다. 굶어 죽으려면 노동자가 만들었다, 그러면 됩니다. 회사를 더 기르고 싶으면 사장이 만들었다, 그리 가면 됩니다. 그래 가지고 자꾸 기르다 보면 노동자가 쓰러져 버리면 마지막엔 또 제자리로 와야 됩니다. 좋기는 사장이 계획하고, 노동자가 땀 흘려 만들어 가는 거다, 서로 필요하다, 균형이 맞는 겁니다. 그 이런 거는 그냥 한 시간 강의 들으면 끝날 일이지 오십년, 백년 죽으라고 싸우고 이런 미련한 짓을 하는 거는 좀 곤란합니다. 그 한, 한 시간 들어보고 생각해 보면 평생 누가 뭐래도 그 사장 하나 없으면 노동자 천만 명이 모여도 북한처럼 다 굶어 죽지, 먹을 걸 두고도 먹을 줄 모르는 게 노동자입니다. 사장이란 하나 가지고 뭐 아프리카 가든 어디 가든 돈이라는 돈 다 만들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너무 많아지면 밑에가 없어지면 꺼져버리고 짜부라지면 다 치어 죽습니다. 그래서 머리와 몸처럼 사장과 노동자가 적절하게 가면 좋습니다. 부부처럼 말하자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누구 신고?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뭔 하나님이 세 개인가? 머리 셋 달린 뭔 괴물인가? 완전자 하나님, 모든 걸 책임지시고 모든 걸 진행하시고 모든 영원 끝까지를 전부 관리하시는 하나님, 가정으로 말하면 아버지, 호주, 어른이 그렇겠구나. 그런데 살다 보면 고장이 생기는데 어떡하지요? 고장이 없는 가정이라도 좀 더 좋게 만들어 가 보려고 하다 보면 뭔가 공사를 하려면 땅도 파야 되고 그래야 건설이 되는 겁니다. 그 수고 그 땀은 누가 흘리지요? 성자 예수님. 그리고 그 모든 수고 끝에 그 좋은 건설, 그 주택 안에, 그 빌딩 안에 사용하는 방법 매일 매일이 복되게 부드럽게 행복하게 만드는 거는 누가 책임을 지지요? 성령 하나님의 안내와 마지막에는 부드러운 손끝으로 다 해결을 합니다. 한 분 하나님 완벽하게 세분 하나님으로. 이쪽에서 보면 성령 하나님의 역사밖에 없는데, 이쪽에서 보면 성자 예수님의 수고로 다 된 건데, 또 더 멀리 보니까 전부 하나님 아버지 품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분이 싸우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더 들어가면 삼위일체 하나님, 날 위하여 고난당하신 이 면으로 연구할 때는 성자 예수님. 영원 전에 영원 후 까지를 책임지시고 진행하고 계시는 든든함으로 감사 할 때는 성부 하나님 아버지. 이 부족한 것이 부족한데, 불안한데 이럴 때는 성령 하나님의 감화와 감동으로 보면 다 됩니다.

그리고 창조의 첫날 빛과 어두움부터 밤과 낮까지 성령 하나님이 배려하고, 성령 하나님이 관여하지 않은 창조가 없습니다. 낮도 낮 동안에 어떤 활동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따뜻함을 느끼시고 밤도 밤의 아늑함과, 포근함과, 휴식을 성령 하나님 품 안에서 누리시면 되어 집니다. 그러라고 1장 2절 이하의 “하나님의 신이 수면을 운행 하시더라” 라고 해 놓은 겁니다. 밤이 오면 어두움 속에 공포 스럽고 밤이 되면 산짐승 맹수가 설치듯이 어느 걸 잡아먹어 볼까 이렇게 호랑이는 낮에는 잔답니다. 밤만 되면 눈에 불을 켜고 온 산을 휘집고 다닌답니다. 찢어 놓기 위해서. 밤을 악독하게, 밤을 피비린내 나는 이런 무대로 삼는 맹수에게 밤은 또 밤이 되면 공포스러워 폐쇄공포증이 있고 불안해서 정신없는 이런 죄인, 이런 악인 그러라고 밤을 만들어 놓은 공간입니다.

낮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야 할 길이 있고, 또 가다보면 쉬며 돌아와 그 품에 안겨 휴식해야 되는 그런 단계, 기간도 있는 것이고 또 낮도, 밤도 우리를 아름답게, 우리를 복되게, 우리를 좋게 기르시려고 성령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배려해 놓은 겁니다. 성령으로 해석하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가 전부 성령적이 되고, 예수님을 주제로 읽으려면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전부 구속의, 수고의 주님으로만 읽을 수 있고, 성부 하나님으로 읽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읽을 수 있고 또 이렇게 세 가지가 아니고 그냥 읽으려면 하나님 하나로만 읽어도 되어 집니다.

성경도 그렇게 읽으시고, 하루해도 그렇게 읽으시고, 어떤 일을 접할 때도 그 일을 접할 때 일면으로만 상대하지 말고 아이가 다쳤습니다, 큰일났습니다, 어느 놈이 쥐 박았냐, 어느 차가 박치기를 했냐, 학교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여수시와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어떻게 됐길래 소중한 우리 아이의 얼굴에 기스를 내 놨냐? 막 거품 물며 발광 하는 것들은 전부 다 경기도 그 어느 누구 밑에 가 가지고 그 발광하는 사람들입니다. 악으로, 독으로, 깡으로 집구석에 가서 지 자식들한테도 그러고 앉았을란가? 조심도 해야 되고 아이 얼굴에 기스만 가도 이게 기스나 가서 다행이지 어떻게 돼서 눈이나 뭐 어떻게 장애가 생겼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그 면도 있어야 되면서 한편으로는 그래, 부모가 평생 봐 줄 수 없고 세상이 너를 보호 할 수 없으니 어릴 때 다쳐 보고 울어보며 조심을 배우는 겁니다. 다쳐 보며, 울어 보며 조심을 배우고 이 아이가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 세상은 곱게 살고자 하나 곱게 살 수가 없는 것이 세상이다, 겪으려면 일찍 겪어야 지혜로워진다, 당함도 있고 아이 얼굴에 손톱하나 지나갔다고 난리 나는 부모의 사랑도 있고 이게 함께 가야 되는데 남의 자식 다치면 아, 그럴 수 있지! 대범하고 제 자식 다치면 지구를 다 그냥 불 질러버리는 이런 분노가 치켜 오르고 이 인간입니까, 이게? 어느 장관 같은 인간들이지. 어느 대통령 후보 같은 인간이지. 남의 아이가 죽을 뻔 했는데도 아, 세상 살아가려면 그런 위기도 거치는 거다, 남한테 대범했으면 제가 죽고 제 자식이 죽을 뻔해도 아, 이럴 수 있는 것이 세상이다. 남한테 용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남한테도 그 실수로 그냥 얼굴에 기스 나가서나 다행이지 그 상처가 깊었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나? 남 실수도 몸이 떨릴 만큼 그렇게 긴장을 한다면 그러면 자기에게도 그렇게 긴장할 수 있는 겁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에서 그냥 쉽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삼면으로 만사를 보고 살아가는 겁니다. 한 가정의 좋은 아버지의 모습, 자기가 자기 마음과 자기 생애를 그렇게 관리해 나가야 됩니다. 영원한 사활의 대속의 고난, 자기가 자기의 신앙과 자기의 생애에 대한 그 고난의길 그렇게 걸어가는 겁니다. 성령 하나님의 모든 감화와 감동의 역사 동시에 있어야 됩니다.


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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