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6.25 막9:24 믿음을 만들기 위한 방편, 미리 순종 < 실행 순종 < 소망 순종, 끝까지 믿음은 전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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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6 토새

 

제목 : 믿음을 만들기 위한 방편, 미리 순종 <실행 순종 <소망 순종, 끝까지 믿음은 전능 

 

찬송 : 106(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본문 : 마가복음 924절 -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왜 도와 달라, 이렇게 기록하시고 우리에게 읽게 하셨는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도와 주소서, 그리고 해결이 되어 졌습니다. 아이를 데려온 것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쫓아내지 못했나이다이거 가지고도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다. 데려오랄 때 아이를 데려왔고 그다음 언제부터 이리 되었느냐,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아버지 속에 들어있는 자세 잘못된 걸 다 고쳐 그 다음, 최종적으로 데려온 아버지가 아이가 믿음이 없나이다가 아니라 내가 믿음이 없나이다. 아버지를 먼저 고치고 고친 아버지의 부탁 아버지의 순종을 붙들고 아이를 고쳤습니다.

 

왜 도와 달라, 이 말을 기다렸는가? 우리 빼고는 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는 주님이 가족의 부탁 본인의 부탁 없는데도 고친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본인들이 말할 때 고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본인은 말 없는데 부모와 가족 주변의 부탁을 듣고 고친 경우도 있습니다. 부탁하지 않고 도망가는 걸 고치는 경우, 본인에게 믿음을 심고 본인의 믿음을 붙들고 고치는 경우, 본인의 부모나 주변을 붙들고 고치는 경우 여러 가지가 다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때문에 솔로몬이었습니다. 다윗은 명확하게 부모가 잊어버렸고 부르지 않았는데 직접 불러다가 고친 경우입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모세나 다윗은 하나님이 직접 또 솔로몬 같은 경우는 순종의 다윗을 붙들고 그다음 고쳤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필요하면 하나님은 위에서 직접 해결해 버리십니다. 또 본인의 믿음을 고쳐 그다음, 해결할 때도 있습니다. 주변을 붙들고 해결할 때도 있습니다.

 

이 시대에 1020대들이란 지금의 부모 때를 되돌아 생각하면 열 살도 되지 않는 참 어리다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열 살이 열 살 노릇을 해야 열 살이고 스무 살이 스무 살 다워야 그게 청년인데 스무 살 말하는 거 생각하는 그 속에 들어있는 자세를 보면 예전 열 살은커녕 젖먹이 수준입니다. 아이가 어려 아이가 붙들려 아이가 스스로 주님을 찾을 수 없으면 마치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로 못 움직이는데 주님과 접촉을 시켜야 되니까 주변에 사람들 친척들이 침상 채로 들고 와서 주님을 마주치게 한 것처럼 본인이 주님을 모르고 본인이 앉을 자리 설 자리 모르면 그 본인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하라고 주님이 가족과 부모를 둘러 세워 놓은 겁니다. 본인이 이거는 죄인데 망할 일인데, 알면 본인이 급하여 돌아왔을 겁니다. 본인이 전혀 알지를 못하면 주변에서 주님과의 접촉을 시켜야 될 겁니다.

 

여기 아이는 아버지의 믿음을 고쳐 아버지를 붙들고 바로 고쳐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이 말씀이 특별히 필요한 것은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죄가 뭔지 의가 뭔지 도무지 방향 감각이고 옳고 바른 것까지도 다 붕괴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연 양심이라도 있으면 자연으로 두드려 고치는데 자연 양심조차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자연 양심이라도 살아있는 부모와 선생님들과 신앙에 앞선 사람들이 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시라,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주님의 능력을 모셔다가 고쳐야 되는데 우리가 믿음이 없으니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역사할 수 없으니 주님 아니면 안 됩니다 라는 이 간절, 이 간구, 이 애절함을 주님이 보시고 우리 때문에 주님이 벙어리 된 귀신, 벙어리를 만든 이 귀신 엉뚱한 말하게 하고 할 말은 하나도 못하게 하는 벙어리 귀신 귀머거리 귀신 우리 때문에 주님이 직접 이들의 귀를 열고 이들의 입을 열어 이제는 알았나이다, 그렇게 하겠나이다 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어 달라는 이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때입니다.

 

왜 여기 아버지가 도와 달라 했는가?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겼으니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맡겼으니 도와주소서, 육의 자녀를 맡은 육의 아버지는 육체의 아이 때문에 살려달라 기도하고 그러면 신앙의 지도자 되고 신앙의 부모 된 우리는 신앙의 자녀는 상관이 없을까? 육의 자녀와 마찬가지로 신앙으로 책임진 책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맡겼으니 하나님의 자녀인데 우리에게 맡겼으니 당연히 우리가 구해야 됩니다. , 직접 하시지 왜 맡겼는가? 우리를 기르는 자율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이만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기르다 보면 아이를 맡다 보면 아이를 맡은 부모가 자라게 됩니다. 남 보기에는 아이를 부모가 기르고 하나님이 볼 때는 아이를 기른다는 과정 속에 너부터 사람이 되거라, 부모를 길러 아이를 기르지 부모는 안 길러도 자녀만을 쏙 뽑아 기르는 수는 없습니다. 부모 범위 안에서 자녀는 자랍니다.

 

죄인 부모 밑에 의인 자녀가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지 부모를 통한 건 아닙니다. 그 아이 때문에 부모가 받은 모든 칭찬은 하나님 앞에 영원토록 반납해야 됩니다. 자기가 충성하고 충성의 대가로 칭찬을 받아야 될 건데 넘치는 칭찬 자기 것 아닌 것을 받은 칭찬은 영원토록 수치가 됩니다. 건설구원의 실패입니다. 하나님이 맡겼으니 하나님의 자녀라 그래서 듣고 보는 우리가 충성해야 되고 해도 안 되면 주님께 간곡하게 맡겨야 되고 우리에게 자율성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한테 맡겼으니 날 위해서 맡은 사람을 들여다봐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해결할 게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귀신, 죄짓게 하는 귀신, 주님을 우습게 하는 그 생각 그 기존 상식 내속에 있는 주관 이게 바로 귀신이 뻗쳐 있는 손길입니다.

 

주님 아니고는 아니 된다. 주님이 해줄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러고 있는 나. 순종할까 말까 망설이는 나. 이건 귀신이 아니고 거품을 물고 뒹구는, 뒹구는 아이만 귀신이 된 건가? 귀신이란 뒹굴게 만드는 귀신도 있고 눈 막는 귀신도 있고 귀 막는 귀신도 있고 그런 아이를 쳐다보며 주님이 이런 아이도 고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준 것도 내나 귀신입니다. 순서는 위에서부터 고쳐야 됩니다. 그리고 나부터 고쳐야 됩니다. 세상은 나는 놔두고 너부터 고쳐라, 그리고 서로 욕질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위에 있는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한테 고치라 그러고 자기는 쏙 빠져버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위에서 고쳐 아래를 고치고 또 내가 고쳐 나를 통해 나 주변이 고쳐지는 순서를 이렇게 잡는 겁니다.

 

누구 속에 있든 귀신 문제는 주님만 고칩니다. 우리는 그냥 명령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우리 할 수 있는 대로 충성하고 순종하기 전에 마음으로 순종하고 순종하면서 마음으로 순종하고 순종 다 한 다음 제가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주님이 나머지 해결해 주옵소서, 맡기는 것도 순종으로 맡겨야 됩니다. 내 생전에 이 아이를 회개시켜 주옵소서? 내 생전에 돌아서는 걸 보면 좋겠는데 내 생전에 돌아서는 걸 못 보면 후회하고 갈 것인가, 원망하고 갈 것인가, 공연히 믿는다고 그랬네, 낙망을 할 것인가? 미리 순종하는 마음, 순종하면서 순종하는 마음 순종을 다 해놓고 주지 않으시면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기한에 두셨으니 권한에 두셨으니 천하만사를 때와 기한을 통해 주님이 정한 때 알아서 해주실 것이고 나는 순종 다했으니 맡겨 놓았습니다. 소망 속에 기다리는 겁니다.

 

감옥 까지 간 요셉이 할 일은 이제는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밑에 할 일 했고, 어머니 다른 데 할 일 했고, 어머니 다른 형들에게 할 일 했고, 아버지의 심부름 목숨 걸고 했고, 팔려가며 신앙 지켰고, 팔려간 보디발 집에서 충성했고, 충성의 대가로 돌아온 감옥을 감사함으로 또 그곳에서 충성했고, 마지막으로 준 게 술 맡은 관원장이 출옥할 때 그건 실수지만은 어쨌든 부탁을 했고 이젠 더 할 일을 주님이 주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나간 술 맡은 관원장이 처음에는 나가니까 절차가 있어 잊었겠지, 지금쯤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나를 생각하고 기회를 찾겠지, 나라에 복잡한 일이 많고 큰 나라니 뭔가 맞질 않아서 기다리고 있겠지, 이제는 요셉의 마음에 이 인간 나간 처음이라 바빠 그런 건 아니고 이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저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인간에게 부탁한 것 완전히 하나님께서 딱 잘라 이 사람 머릿속에 기억을 다 없애버리셨구나,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하나의 소망을 둔 그 소망을 다 끊어버리고 그래서 요셉이 완전히 포기가 되어 지니까 하나님이 바로 왕을 직접 끌어다가 요셉을 끌어내버렸습니다. 불려 나온 요셉이 관원장한테 부탁한 것이 끈이 되고 연결이 된 것이 아니라 그 끈 그 연결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막으셨구나, 내 속에 사람의 힘으로 하고 싶은 일말의 가능성까지 완전 날고치기 위해서 그랬구나, 요셉이 2년을 넘어 더 기다리게 된 것이 자기 속에 아직까지도 준비가 되지 않은 그런 부분이 있어서 그러했습니다.

 

왜 주시는 것이 늦어지느냐? 주님이 정해놓은 예정의 때라야 이게 좋으니까, 그 때를 채우기까지 해당 본인도 때가 돼야 되고 주변의 사람도 때가 돼야 되고 나도 때가 돼야 되고 석 달짜리 아이를 갖다가 그냥 출산해 버리면 낳아야 시원하고 몸이 가볍겠지, 날 봐서야 뭐 석 달 만에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몸이 좋겠습니까? 그런데 석 달 만에 나와 놓으면 이 아이는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이도 열 달을 채우려면 힘이 들지마는 그것도 열 달이 되어서 나와야 나온 뒤가 좋고 평생에 팔푼이가 아니라 좋고, 열 달을 다 채우자니 엄마가 죽을 지경이나 아무리 힘들어도 열 달 채우고 나와야 그 엄마가 뒤에 고생을 덜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하나님께서 열 달을 딱 정해놨으니 군소리 말고 그냥 입 다물고 감사함으로 기다리라, 열 달이 넘어 더 버티고 앉았으면 어찌 되느냐? 아이는 배 속에 있는 게 편하겠지 그런데 열 달이 넘어 아이가 이제 엄마가 견딜 수 없도록 더 커지는데 엄마 뱃속에 앉아가지고 계속 편하게 먹고 놀고 그러면 엄마가 고장이 나는데 엄마가 고장 나면 자기는 좋겠는가? 함께 좋지 않지. 엄마의 형편 아이의 형편 둘을 딱 보시고 열 달로 정해 놓은 겁니다. 그 열 달의 사람에 따라 한 이 삼, 주 더 가는 경우도 있고 이, 삼주 당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정상이라 그럽니다. 그것까지도 못 기다려가지고 막 그냥 끄집어내느라고 정신도 없고 그 끄집어내는데 또 의사들은 돈벌이 때문에 그렇고 교과서 읽느라고 그러는데 거기에 따라 엄마가 못 견디니까 또 옆에서 말릴 수도 없고 그냥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겁니다.

 

불신자의 자연주의를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정확하게 인도하는 것도 있고 자연에 맡겨 하나님께서 2차적으로 또 주시는 은혜도 있는데 꿈에서 보여주는 성령의 은혜는 은혜라 그러고 성경은 읽기 귀찮으니까 치워버리고 자연의 은혜는 불신자한테도 주는 건 이건 시시한 줄 아는데 성령의 인도의 은혜나, 성경의 진리의 은혜나, 자연으로 인도하시는 은혜나, 하나님이 직접 고쳐주시나, 부모를 통해 고쳐 주시나, 아이의 믿음을 만들고 고쳐주시나 다르지를 않습니다. 중요한 말씀 기억하시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온 시대 세계의 귀신들과 맞서야 되는 것이 오늘의 결혼과 출산입니다. 공회로서는 이만하면 할 만큼 넘치게 했습니다. 가정별로 애가 터져야 됩니다.

 

 

1-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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