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9.24 고전16:1 매일에 얼마나 충성하여 귀중한 평소를 만든 만큼, 주일이 주일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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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2.9.24 고전16:1 매일에 얼마나 충성하여 귀중한 평소를 만든 만큼, 주일이 주일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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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4 토새

제목 : 매일에 얼마나 충성하여 귀중한 평소를 만든 만큼, 주일이 주일답게 바쳐지는 것

찬송 : 198장(우리 주여 목자 되어서)

본문 : 고린도전서 16장 1절 -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어젯밤 주일과 예배와 연보 여러 가지 면을 한 곳에 담은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연보는 준비로 하는 거다. 한 주간 준비한 것이 쌓여서 그다음 주일날 드려지는 겁니다. 6일의 준비, 6일의 조심, 6일 동안 마음속에 헤아리며 한 걸음씩 쌓은 것 그게 몸으로 교회를 향할 때 그게 연보입니다.

연보의 종류로 말하면 목숨 바치는 순교가 가장 큰 연보고 순교, 그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야 되는데 쉽게 주는 기회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순생의 연보, 겉보기에는 목회자는 가족과 경제와 자기 평생을 버려두고 하나님께 몸을 바쳤다, 겉보기는 그렇습니다. 목숨은 가져가실지 안 가져가실지를 모르기 때문에 순교는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순생이라는 것은 목회자가 목회를 바로 하면 순생이 정상입니다.

 이 순생의 기준 때문에 제 생에 전부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그 약속 때문에 기본적으로 목회자는 부업을 하지 않게 돼 있습니다. 부업이든 주업이든 목회자가 교회 위한 생애 말고 따로 아르바이트해서 뒷돈 버는 거, 죄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목회자의 약속이 제 목숨과 가족과 제 평생을 주를 위해 교회에 바치겠습니다, 이건 다 서약을 하게 돼 있습니다. 자기 약속 위반입니다. 성경 말씀 어기는 게 죄지 자기 약속, 자기 서약 어기는 것은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죄입니다.

순교가 생명 연보고 거의 없다, 했습니다. 하려고 찾아봐도 지금 누가 주님 때문에 사형을 시킵니까, 이 나라가? 사람을 열 명, 백 명을 죽여도 교도소까지만 데려가지 처형은 안 합니다.
순교가 없는 시대가 된 겁니다. 평생을 바치는 순생이라는 것은 겉보기에는 목회자들이 주님을 위해 자기 평생을 바치는 것 같은데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며 너, 월요일날 정말 주님 원하는 대로만 살았냐? 이렇게 하나씩 따져 봐 보면 겉은 주를 위해 산 것 같으나 속은 그리 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회사 다니는 분들이 사장님 없고 윗사람 없으면 회사 출근해 가지고 컴퓨터로 뭐 주식하는 사람, 컴퓨터로 가족 챙기는 사람, 근무 시간에 누가 알겠습니까? 겉보기는 출근하고 속으로는 엉뚱한 짓 할 수 있는 겁니다. 계속해서 업무가 바쁘면 못 그러겠지마는 시간이 남는 직장 소위 뭐 근무 환경이 좋다 소리 나오는 직장에는 몸은 출근하고 마음은 딴 데가 있기 쉽습니다.

생명을 연보하면 순교다, 평생을 연보하면 시간적으로 순생이 된다, 그다음 주일날 하루를 주님 앞에 조심하면 그 하루가 주님 앞에 연보가 됩니다. 돈을 들고 연보 통에 넣는 것은 연보 중에 가장 작은 겁니다. 그런데 왜 연보라고 그랬냐? 작은 걸 잘해야 위로 하나씩 올라가고 높아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작은 것도 안하는 게 큰 거 할 리가 있겠습니까? 성도를 위하는 연보는 미리 준비하는 거다, 한 주간 살며 조심한 것이 한 주간 살며 열심히 자기 직장 자기 직책에 충실한 것이 그게 그만큼 충실한 것이 주일에 귀한 것이 되어 집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놀던 사람이 주일을 지키면 너 할 일 없이 나왔지 않냐, 뭔 아까운 걸 희생하고 교회를 왔냐, 이렇게 되어 집니다. 하루 일당 10만 원짜리가 주일날 교회를 나오면 아니, 10만 원을 벌 수 있는 사람이 교회를 나와? 1원도 연보를 안 했으나 10만 원 일당을 벌러 갈 수 있는데 이걸 접고 오는 사람은 주일 지키는 그 행동 자체가 10만 원짜리입니다. 원래 하루 10만 원씩 6일에 60만 원 벌 사람이 피곤해서 일요일은 쉬기로 되어 있는데 일도 없고 쉬기로 되어 있는데 교회 나오면 일당이 10만 원이라도 그거는 쉬는 시간 바친 겁니다. 매일 10만 원씩 6일을 일해서 돈 벌고 일요일도 돈 벌 수 있고 돈 벌 마음이 있고 돈 벌어야 되는 의지가 있는데 꺾어버린 사람은 주일 자체가 10만 원짜리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일당이 50만 원이라 50만원씩 일당을 벌면서 일요일은 일당의 두 배 니까 100만 원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또 벌고 싶은데 건강도 있고 가야 될 사람인데 주일 때문에 꺾어버렸으면 그 사람은 주일날 연보통에 1원을 연보하지 않아도 100만 원 연보가 되어지는 겁니다.

학생이 6일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주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하고 싶은데 주일 때문에 책을 덮었으면 귀한 하루를 바친 것이 되어 집니다. 그런데 토요일 날 미리 할 수 있는데 토요일 날 대충 시간 보내고 일요일 날 공부하려다가 주일 때문에 포기했다면 그건 토요일 미리 할 수 있는 걸 안 했기 때문에 놀다가 오는 것이지 그리 좋은 하루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나간 6일을 어떻게 살았는가, 열심히 살았는가, 노력을 했는가, 귀한 일주일인가에 따라서 주일 지키는 것이 그렇게 달라지는 겁니다.

이 남자한테 갈 수도 있고 저 남자한테 갈 수도 있고 아무한테나 걸려도 되는데 그런데 우연히 저 남자한테 걸린 사람, 뭐 결혼했고 함 몸이라 그러지마는 싼값에 넘긴 겁니다. 입맛이 까탈스러워 눈이 높아서 여기 갈 기회도 재껴 버리고 저기 오는 기회도 끊어버리고 입맛이 아주 까다로운 사람인데 자기 신앙을 계산하고 신앙 때문에 이 남자를 붙들었다면 자기 몸값이 높은데 신앙 때문에 결혼한 것이니까 그건 주님이 볼 때 넌 네 몸을 주를 위해 엄청 다 바쳤구나, 이리 됩니다. 그 거 순생 될 수 있습니다.

주일 아닌 날 얼마나 자기 위치 자기 할 일에 충실했느냐, 그 노력 그 아까운 만큼이 주일이 주일답게 지켰을 때 귀한 하루가 됩니다. 이러나 저러나 저러나 교회를 안 가도 일요일은 뭐 놀 건데 노니 교회 가자, 오늘도 공부를 하든 돈을 벌든 뭘 해도 열심히 할 일이 있는데 이 아까운 걸 주일 때문에 끊었다, 남이 볼 때는 똑같이 앉아 있어도 너는 귀한 주일, 너는 절반 주일 너는, 그냥 오가다가 그냥 앉아 있는 주일, 이렇게 급을 다 다르게 보십니다. 이거는 마음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이왕 교회를 왔으면 이왕 교회를 갈 바에는 값진 주일을 만들고 오는 것이 귀하지 않겠습니까? 주일은 한 주간의 준비에 달려 있다.

그렇게 해가지고 예배당에 모였는데 세끼 밥 먹기가 어려워 연보는 1원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시절에 어려운 교인들만 모였다 치고 정말 세끼 밥 먹을 밖에 없어 돈으로는 연보할 수 없는 교인들이나 열심히 살다가 주일 지키면 내일 한 끼를 굶어야 될 각오를 하고 교회를 왔다면 연보궤에 돈은 없어도 주일에 대한 정성과 성의는 똘똘 뭉친 겁니다. 그러면 그 교회야 모아놓은 연보가 없는데 그 돈으로 어떻게 교인을 위해서 쓸 수가 있는가, 이렇게 모인 교인들의 정성, 그 충성, 그 진심이 기도가 되어 지면 그 기도는 그 교회의 돈보다 더 큰 복음 운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게 되어 지면 교회고 그게 안 되면 그냥 종교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것은 망나니 아들이 정성이 없어도 그냥 한 달에 돈 천만 원씩 송금하면 아마 부모 계좌에 한 달에 돈 천만 원 들어오면 천하 부럽지 않을걸요? 천만 원이면 뭐 그냥 한 5백만 원 주면 한 사람 따라 붙어서 자녀보다 더 잘 하지 않겠습니까? 돈만 주면 효도는 되어 집니다. 아무리 부모를 위해서 대신 죽을 수 있는 심청이라도 돈이 없으면 애만 터지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세끼 밥도 돈이 있어야 해드리지.

세상은 정성이 없어도 효심이 없어도 돈만 많이 주면 효도가 됩니다마는 교회는 주일의 정성과 주일의 가치를 알고 주일 예배에 모이는 그 정성의 총합이 크면 연보궤에 돈이 없어도 주일을 아깝게 생각하여 바른 마음 고운 마음으로 주일을 지키고 그 주일을 지킨 교인들이 이렇게 귀한 주일을 함께하면 좋겠다, 온 동네 사람, 가족 이웃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일을 지키면 그 마음을 보고 그 교회에 전도의 길을 열어줄 겁니다.

교회의 연보궤에 돈은 없어도 교회를 출발하는 교인들이 자꾸 생겨지고 주일을 지키는 교인들이 자꾸 많아지고 그래서 교회의 교인들이 자꾸 많아지고 신앙이 깊어지고 신앙이 자꾸 쌓이면 그러나 마나 돈은 없는데, 그렇겠습니까? 돈은 모이지 않는 교회라도 주일다운 주일이 모여지고 주일에 대한 정성이 모여지고 주일에 대한 예배를 작정하고 모이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이런 볼 수 없는 신앙이 주일답게 되고 주일 예배에 쌓이고 쌓이게 되면 복음운동은 돈으로 하는 것보다 신앙이 제대로 쌓인 것이 훨씬 크게 합니다. 주님이 직접 움직이니까. 그러다가 만약에 나중에 돈까지 필요하면 돈이야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모아주면 뭐 얼마든지 문제가 없게 됩니다.

세상은 정성이 없고 애국심이 없어도 돈만 많이 내면 됩니다. 재벌이 애국심이 없어도 교도소 가기 싫어서 세금을 많이 내면 삼성의 그 세금 가지고 온 나라가 지금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속으로 나라 욕을 하든 말든 돈만 많이 내라, 그게 세상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네가 주일을 알고 주일을 지키냐? 네가 예배 시간이 뭔지 알고 주일날 예배 시간을 향하느냐? 그 볼 수 없는 신령한 신앙의 분량 그 신앙의 총량이 들어 교회의 복음 운동이 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런 주일과 예배에 대한 진심이 모여지면 다소 얼마라도 돈도 들어오겠지, 그 돈은 보이는 부분이고 주일과 예배에 대한 정성의 모임 이게 기도로 가고 이게 전도로 가고 이게 심방으로 가고 이게 연경으로 가고 이게 움직일 때 하는 일이 훨씬 큰 겁니다. 주일은 평소에 얼마나 하루하루를 귀한 시간으로 보냈느냐, 평소에 귀한 일을 소중한 시간을 가질수록 주일이 귀한 주일로 바쳐지고 귀한 주일로 바쳐진 그 귀한 주일의 신령한 볼 수 없는 것이 그 교회의 영적 신령한 실력 힘이 되어 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하루냐 그만큼 주일이 똑같은 주일인데 귀해집니다. 갈 데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일요일 날 교회를 가야 몇 사람 얼굴 보고 밥이나 먹고 말 몇 마디 하다 오지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인생을 평생을 잘못 산 사람은 일요일 날 교회라도 와야 사람 구경을 하니까 노인당 가듯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할 일이 넘쳐 아까운 매일 매일을 만든 만큼 주일이 주일답게 바쳐지는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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