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10.1 요4:23 주일의 예배화 평일의 주일화, 주일의 평일화 예배의 인간화? 어느 것인가?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토새22.10.1 요4:23 주일의 예배화 평일의 주일화, 주일의 평일화 예배의 인간화? 어느 것인가?

서기 0 83 2022.10.01 05:06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21001 토새

제목 : 주일의 예배화 평일의 주일화, 주일의 평일화 예배의 인간화? 어느 것인가?

찬송 : 145장(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본문 : 요한복음 4장 23절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주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제사 제도를 통해 준비했고 소망했고, 또 예비했던 모든 행위는 끝이 온다. 주님을 기다린 것이 제사입니다. 구약의 예배는 제사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예배, 그게 제사인데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양을 잡아드리는 제사는 주님 오심으로 끝이 났고 동시에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라, 이런 율법도 그 율법을 적은 목적이 달성이 되었으니, 율법이 잘못되어 폐지되거나 중단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목적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신약의 신령한 예배 진정한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신령한 예배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상대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계시지 않는 시간이 없습니다. 예배 안에서만 예배가 아니라 예배당 밖에까지 예배가 뻗혀지는 때입니다. 또 이 예배당뿐만 아니라 천하의 모든 예배당이 다 예배  드리는 집입니다. 예배당에 예배를 드리는 것도 예배이지만은 예배드리는 그곳이 바로 예배당입니다. 구약은 예루살렘 성전 정한 곳만 구약의 예배의 처소가 됩니다. 신약은 주님 앞에 주님을 모신 사람, 그 사람 가는 곳이 전부다 예배가 되고 예배당이 되어 집니다. 또 귀신은 이렇게 발전하는 예배를 뒤 흔들기 위해, 어디든지 예배고 예배당이니 뭐 그냥 교회 갈 것이 있느냐?

정한 시간 정한 장소 주일의 예배는 당연하고, 건강 때문에 여러 형편 때문에 교회를 갈 수가 없게 되어 진다면 수술 후 회복하는 교인은 그 병실이 바로 예배당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지 멀쩡한 두 다리로 놀러가기 위해서 핑계를 대기 위해서 지리산 꼭대기는 하나님이 안 계시나? 거기 가서 예배드리면 되지 않냐? 이것은 신령한 예배를 무시한 것에다 대고 진정한 예배까지 없애버린 겁니다. 진정한 예배는 “마음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라” 네 힘, 네 뜻, 네 정성 다 하니, 놀러가야 되겠더냐? 너 놀러가야 되겠더냐? 이게 문제입니다.

진정은 자기를 향하여, 신령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했지만은 정성을 빼버리면 예배가 아니고, 정성은 기울였으나, 절의 중들은 정성이 없겠습니까? 미신 섬기던 우리의 조상들이 정성이 없었겠습니까?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으니 그 정성 그 세월이 다 헛일이었습니다. 신령한 예배, 진정한 예배 둘을 합하여 온전한 예배가 되어 지니 늘 하나님 앞에 두 번째, 이것이 나의 정성 나의 진심이냐? 내가 나를 점검하여 예배당을 찾는 시간은, 예배당을 찾을 때의 나의 옷차림은, 예배당을 찾는 한 주간의 횟수는, 또 예배드리는 나의 자세는, 나의 마음은, 위로 하나님, 아래로 내 정성 다했는가? 이렇게 양면을 살피는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리라”

예배가 바로 되면 주일에 예배를 중심으로 주일 전체가 살아나고, 주일답게 되어 지고 주일의 예배와 주일이 바로 되면 월요일이 달라져야 되고 화요일이 달라져야 되고. 주일을 주일답게 지낸 사람의 수요일이 주일이 주일답지 않는 사람의 수요일과 달라져야 될 것이고 그런 겁니다.

공부를 한 사람의 월요일이 공부 안한 사람과 다른 면이 있어야 그게 정상인 것처럼, 수업시간에 수업을 정말 집중하고 바로 했다면 예습이 중요한줄 알아서 그 다음 공부 시간 전에 예습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또 수업이 마치고 나면 배운 것 중에 복습이 있을 것이고 정리가 있을 것이고, 그 하루에 공부가 집중이 되고 잘 배웠다면 당연히 그 공부한 혜택이 있을 것이고, 공부한 만큼 마음과 자세가 달라지고 세사 살아가는 생활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의사가 의사 공부를 했더라면 정말 잘했다면, 공부하기 전에 먹던 것과 공부하고 나서 먹는 것이 달라질 겁니다. 이것은 저에도 먹었는데 이건 뒤에도 먹어도 괜찮은 것, 이것은 전에는 잘 먹었는데 이거는 내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안 먹을 것,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의사 공부하기 전이나 뒤나 똑같다면 그 사람의 지식은 날라 가던 새가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날라 가는 것처럼 왔다 갔지 아무 흔적이 없습니다. 새가 나뭇가지를 찾아 집을 지어 그곳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그 본부를 삼은 나무인가? 그냥 앉았다가 날아간 나뭇가지인가?

지식이라는 것이 오른쪽 귀로 들어와서 왼쪽 귀로 나가는 마이동풍처럼, 그때 그랬다던가? 그런가? 들은 적은 있던가? 그것은 자기 지식이 아니라 남의 지식입니다. 주일을 지났으나 그 주일과 자기와 상관이 없는 사람. 주일을 지날 때 마다 주일을 겪고 주일을 겪을 때 마다 주일의 은혜를 담고 주일의 은혜를 담을 때마다 그 담은 것이 한 주간의 복이 되어 복으로 돌아오고 그런 주일이 지날 때마다 자기의 성격이 자꾸 바뀌어 지고, 인생 자세가 바뀌어 지고 하나님을 상대하는 두려움이 더 바뀌어 지고 사람을 말씀으로 사랑하여 신앙으로 인도하는 참 사람이 나아지고 발전하고. 주일을 통해 그리 되는 것이 그게 옳은 겁니다.

멀리 가는 차가 휴게소 들를 때마다 차 안에 생수가 들어오고, 그로 인해서 운전하는 사람이 나아지고 휴게소 들릴 때마다 기름을 더 채워 차에 대한 자신감과 차가 갈 수 있는 거리가 멀어지고, 휴게소를 들를 때마다 차 안에 쓰레기를 비움으로 더 넓어지고 더 가벼워지고 더 깨끗해지고 차 안에 냄새도 더 나아지고. 휴게소 들를 때마다 차 안에 탄 사람들의 대소변도 비워버리고 생수와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 힘도 나고. 휴게소 들러 지도를 확인하며 가야 될 방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차도 좀 식혀서 또 다시 달릴 때에 차가 더 힘 있게 달릴 수 있고 안전 되고 안정되도록 되어야 되고. 믿는 사람 천국까지 가는 길에 모든 주일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날이 아니라, 그것 없으면 그 주일 지난 7일이 통째로 흔들어 빠져버립니다. 그 7일이 붕괴되고 무너지면 벽돌로 집을 쌓아 나가는 그 집에 벽돌 여기가 빠지고 저기가 빠지면 보기도 좋지 않을 것이고 그리로 열도 새나갈 것이고 바람도 들어올 것이고 그리로 쥐  고양이 강아지 도둑이 들락거리면 그 집이 집이 되겠습니까?

모든 예배는 그 예배 때문에 예배 전이 좋아지고 예배 뒤가 좋아지고 예배 때문에 예배의 앞  뒤가 함께 살아나며 그리고 예배와 상관없는 가정이 예배 때문에 더 가정 다와 지고 주님이 그 가정 속에 더 힘 있게 역사하고, 식구들의 말과 식구들의 사상과 식구들의 살아가는 목적과 식구들의 살아가는 안팎의 모든 모습이, 예배당에 예배 볼 때를 자꾸 자꾸 닮아져서 예배당 안에서 본 그 사람과 평소에 본 그 사람이 말의 조심이 달라지고 말 속에 말씀을 담으려는 노력이 더 나아지고, 나중에는 주일에 말씀의 강단과 말씀을 듣는 교인들과 그 교인들의 평일과 모든 것이 자꾸자꾸 일치가 되어져야 그게 정상입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윗물처럼 결국은 그리 돼야 됩니다. 윗물은 계속해서 맑은 물이 흘러가는데 아랫물은 끝까지 버티고 구정물이 되어 진다면 물줄기가 잘못 되었든지 뭔가 큰 고장은 생긴 겁니다.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윗물을 계속 맑은 물로 흘려보내면 변하고 변하고 변하여 결국은 윗물과 아래물이 같아 져야 됩니다.

예배가 뻗쳐져 주일 하루 예배 연장처럼 예배 확장처럼 또 다른 예배처럼 되어 지도록 노력하고 예배가 주일을, 그리고 그 주일이 식당을 가나 친구를 만나나 가족과 대화를 하나 돈 벌러 가나 공부하러 가나 이것을 공부하나 저것을 공부하나 몸이 예배당 안에 있을 때는 더 조심했고 모든 행동이 주일은 더 조심을 했지만은 조심하는 그 속의 마음의 자세나 평일에 직장을 가는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때 그 사람의 마음과 자세와 행위가 하나님 앞에 조심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움직이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결국은 주일의 예배가 주일을 삼키고 주일과 주일의 예배가 평일을 자꾸자꾸 물 들여가면 그게 성화고 그게 믿는 사람의 신앙의 발전입니다.

반대로 이게 밑으로 내려가면, 그 사람의 주일이 그 사람의 평일을 닮아 옅어지고 흐려지고 혼잡해지고, 그 사람의 세상 생활이 그 사람의 주일을 세상화 시키고, 그 사람의 세상 생활이 주일 안에 예배 까지 뒤흔들어, 토요일 저녁에 노래방에 가서 한잔 먹고 설치던 그 술이 깨지를 않아서 주일 오전 예배당 강단에서도 춤을 춰야 되고 노래를 불러야 되는데, 겉으로는 복음성가라 찬송가라 그러는데 찬송, 찬양, 율동, 복음 성가하는 가락을 보니까 자세를 보니까, 뛰고 굴리는 꼴을 보니까 그리고 강단에서 나오는 설교의 내용과 방향을 보니까, 이건 뭐 세상인지 교회인지 주일인지 예배인지 아나운서 입인지 여당의 입인지 야당의 입인지 이 정도가 될 때가 구약으로 말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세상 이방 귀신의 제단으로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 귀신을 섬겨도 하나님이 진노를 할 것인데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귀신 미신 이방신의 제단을 들고 들어와서 이방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게 불신자 세상의 죄악의 풍습을 믿는 사람의 평소의 생활로 물들이고 이걸 주일날 그 짓을 하고, 예배 시간의 기도도, 예배 시간의 찬송도, 예배 시간에 설교도, 예배의 이름조차도 ‘목사 70회 생신 예배’ 이 정도면 예배가 아니라 끝에는 예배라는 말을 붙였지마는 앞에 있는 어느 목사 70회 생신, 70회 고희 기념 이게 세상 것인데 세상 것이 예배당 안에 들어와 주인이 돼버린 겁니다.

그래서 예배는 예배 앞에 아무 글자도 붙이지를 않는 겁니다. 어린이 예배? 어버이 주일? 어머니 주일? 어버이 주일? 삼일 독립 기념 예배? 8.15독립 해방예배? 주일과 예배 앞에는 이건 하나님의 것이라 인간 것 거기다대고 붙이는 것 아닙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모르는 죄인들의 세상인데 하나님 모르는 죄인들의 세상이니 세상의 노래와 세상의 활동과 세상의 사상과 세상의 일정이라는 것은 말씀 어기고 하나님 없고 인간이 주인 되고 인간 마음껏 만들어놓은 세상인데, 그 세상을 살려고 온 믿는 사람들을 세상의 죄악의 풍습이 물을 들여 버리고, 믿는 사람은 한 주간 세상 속에서 죄악의 풍습을 익혀서 묻혀서 주일 안으로 들어가서 주일을 세상 죄악적인 주일로 만들어버리고,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서 기도도 예배도, 예배 순서도, 교회의 운영도, 교회의 회의도, 교회의 결정도, 교회의 강단도 전부 세상 것을 만들어놓고, 말도 걸작이지, 민주화된 교회, 민주화된 회의, 인권을 보장한 설교 이게 예루살렘 성전 안에다 두고 귀신 우상을 끌어다가 예배드리는 종교 말년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 할 곳이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여기까지 마음 두고 생각해야 됩니다. 이건 세상의 죄악이 기독교를 전도해서 세상의 죄악 미신이 기독교를 전도해서 기독교가 세상 미신으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예배만은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해가지고 나까지도 나의 가족 나의 사상 나의 철학까지도 다 없애버리고, 예배 때 모신 주님 주님께 배운 은혜 그 말씀으로 주일을 청소하고 평일을 청소하여 죄악 세상 속에 예배와 주일을 가진 교인의 생활과 사상이 죄악 세상 어느 날 어디에 던져놔도 이건 변치 않고 오히려 주변에 있는 세상에 하나님 없는 이웃들과 생활들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이게 전도며 이게 심방이며 이게 선교입니다. 믿는 사람이 술집에 가면 그건 선교가 아니라 믿는 사람이 술집에 가서 술 먹고 앉았으면 믿는 사람이 술집에 가서 타락을 한 것이고 술집은 믿는 사람을 전도해서 술꾼을 만든 겁니다. 술집까지 이야기한 것이야 여기 있는 분이 술집 가겠습니까?

너 왜 공부하냐? 공부하는 그  속에든 사상을 말하는 겁니다. 넌 직장을 출근하는 이유가 뭐냐? 너는 퇴근 하고 돌아오는 목적이 뭐이냐? 그 속의 하나님 앞에 너의 정성을 다하는 거냐? 하나님이 주신 가정, 하나님이 주신 아내, 하나님이 맡긴 하나님의 자녀, 퇴근 시간 얼른 돌아와 이거 잘 있었는지 점검하고 가족의 사랑으로 잘 묶어 신앙으로 한 걸음 들어오도록 너는 그 목적으로 가족이냐? 그런 것 다 떼놓고 둘이 좋으니 둘이 좋기 위해서 예배와 주일이 있느냐? 그러기 위해서 직장을 가고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하느냐? 일단 그냥 부부 둘이 좋고 가족이 좋으면 그게 좋은 것이고 왜 여기 예배니 주일이니 이런 말을 해서 어렵게 만들고 불편하게 만드냐? 부부의 사랑과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주일을 배척해버리고 그런 예배를 없애버려라, 그것도 주일과 예배에 우상 귀신 세상 죄악을 끌어다가 갖다 놓은 겁니다. 주일과 주일의 예배 조심할 문제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1차-khs

Comments

Category
State
433,682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