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10.14 신앙의 발전과 변질의 차이, 개혁과 혁명, 신앙에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금밤22.10.14 신앙의 발전과 변질의 차이, 개혁과 혁명, 신앙에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관리1 0 109 2022.10.14 20:18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21014 금밤

제목 : 신앙의 발전과 변질의 차이, 개혁과 혁명, 신앙에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찬송 : 52장(샘물과 같은 보혈은)

본문 : 열왕기하 16장 17절-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 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며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인하여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더라

다 같이 묵도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다윗의 복된 길을 마다하고 멸망의 길을 간 아하스 왕도 있었고, 그 아하스 왕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가 걸어간 모든 잘못된 길을 보며, 각오하고 결심하고 준비하였다가 아하스 왕의 아들이 왕이 될 때 아버지의 불행 아버지의 죄를 본받지 아니하고, 다윗을 쫒아 전무후무한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 기록해 주셨으니, 지난 주간 또 이번 주간 교회와 신앙과 예배에 모든 잘못을 아하스를 통해 살펴보았다면, 그 아들 된 히스기아의 회개와 정리의 신앙을 함께 배워, 옳은 것은 어디까지든지 본받게 하시고 잘못된 것 삐뚤어진 것은 어느 것이든 배척하고 멀리하는, 이 밤에 복된 저희들이 되도록 특별히 주일과 예배를 두고 보이는 면까지 조심하며 미리 살펴, 복된 개인교회 복된 부부의 가정교회 그리고 곳곳마다 세우신 교회들이 되어 지되, 이 밤에 저희들도 그리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배를 기억하며 오고 가는 모든 차량과 여러 곳에 두신 우리 모든 교인들, 입원 요양 출타 해외 근무에 있는 곳곳에 함께 하시고 시대와 주변과 또 흑암으로 치닫는 모든 교계에도 불구하고, 주일과 예배를 더욱 밝히 비추며 나아가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스라엘이 신앙을 출발할 때 광야 40년을 실로 짜서 만든 천막으로 하나님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 이름을 다 같이 뭐라고 그러지요? 예. 성전이 아니고 성막이라 그럽니다. 성막은 천막입니다. 실조차도 실 자체를 만들어 가지고 그 다음 실을 가지고 천을 만드는 그런 때였습니다. 신앙 출발에는 포장마차 같은 이런 곳에다 대고 하나님을 모셔도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출발할 때는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한테 부모가 무얼 요구하겠습니까? 그런데 480년을 준비하고 솔로몬 때 만든 성전은, 안 믿는 불신세상 어디 내놔도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그런 집을 지었습니다. 또 돈과 기술로만 말하면 일찍 지을 수가 있었는데, 성전 재료와 성전 준비 과정에 다윗은 손에 피를 흘린 군인이라. 준비만 하고 성전 짓는 것은 기회 주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 때에 이르러 성전을 지었습니다. 성막은 그렇게 그냥 하룻밤 사이에 준비도 못하고 나왔다가, 아무것 없는 사막에서 그냥 뚝딱 천막 짓듯이 지어놓고 성막의 하나님은 40년간 먹이시고 입히시고 마셨습니다. 농사짓지 않았고 물 긷지 않았고 얼마나 좋았는지, 신앙에 출발은 마구 위에서 부어주는 법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준비를 해야 될 정도. 세월도 지났고 깨달음도 있고 은혜도 받아본 이 정도 제대로 된 교인이면, 성막 타령하면 뭐 그냥 천막에도 계시던데 큰일 나는 겁니다. 짓지는 못해도 정성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솔로몬 때 성전을 지을 때 미리 성전의 가로 세로 높이 구조 하나도 빠짐없이 무늬까지 전부, 하나님이 일일이 전부 성령으로 가르쳐 대공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하스왕이 14절에 놋 단 치워버리고 이게 개혁입니까? 이게 개악입니까? 바꾸기만 바꾸면 전부 다 좋다 그럽니다.

눈으로 들어보고 귀로 한 번 밥을 드셔보시지요. 바꾸기만 바꾸면 다 좋은 겁니까? 안 바꾸면 안 되는 것도 있는 것이고 심장처럼 지키지 않으면 죽는 것도 있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 뭐 그냥 발이 크면 큰 신발 작으면 작은 신발 또 자라가면 점점 바꿔가며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 밖의 왕궁과 다른 것은 다 바꿀 수 있어도 성전 울타리부터는, 아예 하나님이 이것은 안 된다 했는데 여기다 대고 손을 댑니다. 말로야 개선이라 그러지 발전이라 그러지. 너 눈 두 개 빼가지고 바꿔볼래? 너 팔다리 바꿔볼래? 너 심장하고 내하고 한번 바꿔볼래 좋게 되는가? 그거야 뭐 그럴 리가 없다고 생난리가 나겠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입을 하겠지. 예배당 안에 창이 깨지면 바꿀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 창문이 새로운 재료가 들어와 아무리 소리를 내도 주변에 소음을 차단해주고, 또 안에 공기를 좋게 해주고 예배를 더욱 예배에 집중시켜줄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멀쩡한 유리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바닥이 많이 긁혀 처음 오는 분들이 자꾸 신경을 쓰면 청소해서 더 깨끗하게 할 수도 있고 바닥 바꿀 수도 있습니다. 왜 바꾸느냐? 바꾸는 이유와 자세와 목적이 뭐냐 이게 문제지. 신약에 보이는 예배당은 그건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바꿀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못 바꿉니다. 근데 아하스 왕은 바꿨습니다. 울타리부터 바꾸고 싶으나 남들 보는 눈이 있으니까 울타리는 놔두고 안에서 하나씩 둘씩 치워나갑니다. 몰래.

문 안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놋 단 치워버리고, 그다음 놋 단 뒤에 씻어야 되는 물두멍 대 치워버리고, 세 번째 물두멍에 물을 공급한 이 본부 저수지 바다라 하는 큰 물탱크 치워버리고. 바꾸면 좋아집니까? 부모도 바꿔보시지요. 세 살짜리는 제 부모 안 바꾸려고 그럴걸요. 10살 15살 되면 멋모르고 바꾸려고 시도할 애들 더러 있을 겁니다. 그래서 가출도 하고 그래서 부모하고 부딪힙니다. 바꾸고 나면 석 달 갈까요? 일반 가정에는 3일 가면 단번에 아니구나. 알 겁니다. 바꿔 좋은 것도 있고 절대 바꾸면 안 되는 것도 있는 겁니다. 근데 귀신은 바꾸기만 바꾸면 다 좋다고 자꾸 부추겨 댑니다. 이렇게 부추기는 걸 유혹이라 그러고 낚시라고 그럽니다. 낚이지를 말아야지 낚이면 그건 낚아가는 낚시꾼이나 미끼를 문 물고기나 둘이 동업한 겁니다. 가도 싸지. 저 시내에 남자가 눈 껌뻑한다고 따라가서 둘이 붙어산다? 살면 어떡하겠습니까? 살지. 뒤에는 자기가 책임지는 겁니다. 예뻐 보여서 다 데리고 왔겠지. 예뻐 보이는 거 데리고 살면서 비용이 얼마나 나가는지 뒤에 돈 계산해 본 사람들은, 아 얼굴 예쁜 것 꼴값 그거 참 생긴 꼴에 값이 세기 때문에 어떻게 그때는 그랬을까? 그때는 다 한 번씩 미치니까 그런 겁니다. 알고 나면 인물 안 봅니다. 무식하게 모를 때 보는 거지. 거의 청춘 시작할 때 처음 조심하면 두고두고 좋은 일만 벌어질 건데, 인생 시작하는 처음에 그냥 인물보고 덥석 미끼를 물었다가 낚시에 끼어서, 아는 물고기는 그날부터 죽은 줄 알고 모르는 물고기는 추어탕이 되면서도 모르는 줄 압니다.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 눈에 보이는 것부터 조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전은 손 못 댑니다. 그래서 성전입니다. 성전은 손대는 게 아닙니다. 그냥 배우고 쓰는 거지. 신약의 예배당은 돈 있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예배당을 만들던 문학적으로 만들던 예술적으로 만들던, 예술 중에 제일 발전을 많이 하면 전위예술이라 그럽니다. 유리창을 깨면서 이 소리 들어봤지? 이게 최첨단이야. 이런 거. 또 불을 질러놓고 아름답지? 이게 예술의 제일 발전단계 마지막에 가면 이리 되는 거야. 그거 벌써 주후 64년 로마를 불 지르고 시를 쓴 황제 이름 다 같이 누구지요? 그 놈이 네로입니다. 네로. 서양사람 제일 못된 거 괘씸한 거 이름 붙일 때 네로 이름을 붙여버립니다. 로마시민이 한 100만 명 정도입니다. 2천 년 전에 100만 명. 우리나라 100년 전에 서울 인구가 한 20만 명 그 정도입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한 몇 백 한 300~ 400 아마 그럴걸요. 2천 년 전에 로마시민이 한 백만 이 정도로 대충 잡습니다. 거기다대고 불을 질러 놓고 불꽃의 아름다움, 집이 타니까 울고 타죽는 사람의 괴성을 들으며, 아이 불쌍하다 또 눈물도 찔끔 흘려가며 그림 그리고 시 쓴 사람이 네로입니다. 그것도 예술인가? 네로 지는 예술이라 그럽니다. 그것도 입이 있고 자율성이 있는데 떠든다고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아니라는 학설이 있고 기라는 학설이 있고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고 이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이 있고 항상 그런 거지. 그 정도 되면 안 되는 겁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이 손대지 말라 그건 뭐, 저는 이래야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보다 머리가 더 좋은 모양이죠? 제 뜻은 이러했습니다. 어 하나님은 그 뜻도 모르는 등신이다. 그 말이 되는 겁니다. 아예 성전 밖에서는 뭔 짓을 뭔 짓을 천하를 향하여 다해도 성전만은 보호할 때 성전이 들어 생명이 되고 성전이 들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그러면 이제 성전 밖으로 점점 넓혀지며 좋아지다 보면 뭐 저절로 모든 게 다 됩니다. 그래서 우주의 지구는 하나밖에 없고 지구의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손바닥 만 한 작은 나라 하나밖에 없고, 온 이스라엘이 면적으로 보면 경남북보다 좀 큰데 실제 사람이 살 수 있는 정도를 보면 딱 전남북 정도로 좀 적습니다. 그중에 예루살렘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 안에서도 성전은 딱 집 한 채입니다. 여기를 딱 찍어 여기만 여호와의 전 하나님의 집이다. 이건 손대지 말아라. 그러면 그만 예, 하는 게 좋습니다. 집적집적하면 큰일 납니다. 성전 안에서 벌대로 집적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나환자 된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대개는 그 자리에서 데려가 버립니다. 왜 이런 구약을 성경에 기록했을까? 구약은 안 봐도 되는 오늘은 신약인데 구약을 적은 하나님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정통의 모든 교회는 신구약 66권은 정확무오 한 구원의 도리라 이거 기본입니다. 성경 전체의 구약이 4분의 3입니다. 이걸 전부 떼 내신다? 큰일 날 일입니다.

그러면 구약 그대로도 아니고 구약은 이렇게 많은데 어떡하라는 말이냐. 어린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집을 이리 지어라 저래 지어라고 기록을 해놓고, 신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신앙으로 보이지 않는 신앙에 건설하려면, 구약에 왜 집이 담이 있고 뜰이 있고 놋 단이 있고 세숫대야가 있고 이랬을까? 간단하게 그냥 한 가정 가정은 하나님 앞에 가정교회입니다. 가정교회 그 가정 아파트가 교회라 말 아닙니다. 그 가정 부엌이 예배당이란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둘이 한 몸 되고 자녀를 신앙으로 가르치는 그 신앙의 구성 내용이 가정 교회라는 뜻입니다. 재벌 집 아들, 거지 집 딸. 둘이 결혼해도 하나님께서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근데 재벌 집 아들하고 결혼했으니 어느 날 쫓겨날라. 이래서 하나님보다 이 남자가 더 중요하지 않냐 이러면 그때는 이 성전을 바꿔버린 겁니다. 그 남자가 주일 끼고 저 놀러 가자 그러는데 따라가면 그건 이제 안식일 없애버린 겁니다. 그 남자가 뭐 그냥 가족이 손잡고 교회 가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으냐. 아이들 교육에도 좋고 그렇게 들락날락하지. 그 서울에 교회가 몇 만 개인데 맨날 가면 뭐 회개 회개 이거 회개 소리 안 하는 교회 가자. 그 말이 물두멍 치워버리자 그 말이 되는 겁니다. 내가 인심 쓰고 연보를 이렇게 많이 했는데 뭔 청소 당번을 하라고 그래? 내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데 예배당에 빗자루 들고 청소를 해라? 아 그런 거 하면 나 그 교회 못 가. 이게 놋 단에 놋이라는 연단 고생은 못하겠다 그 말입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이 교회 오면 교회가 덕보고 교인이 덕 보니까, 그런 분들 눈치 봐서
설교를 해야 되는데 옆으로 돌아간다든지 이게 놋 단 치우고 물두멍 치워버리는 겁니다. 아마 여기 신풍 설교도 면밀하게 들어본 분들은 놋 단 치우고 물두멍 치운 설교 더러 들어보셨을걸요. 지금 설교방향 보면 이거는 7계명에 이런 짓을 하느냐고 야단을 쳐야 되는데, 7계명 문제가 있는 이 가정 저 가정 삐져서 교회 안 나올까봐 빙빙 둘러갔다는 거 다 느낄걸요. 그러면 그건 놋 단 물두멍 다 치운 아하스 꼴 나는 겁니다. 그래 그랬는가? 그러든 말든 놋 단은 놋 단이고 물두멍은 물두멍이라. 한 남자 한 여자가 결혼을 해서 가정이지 어디 하나가 둘을 셋을? 이 설교를 했다가 교회 물주 떨어지고 교인들 떨어 질까봐 돌아갔다면 아하스 꼴 나는 거고. 하나님의 말씀은 목회자든 주일 학생이든 사도바울까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는데, 신앙이 어리니 고칠 것이 하나도 없이 많으니 아직까지는 이 말을 할 때가 되지 않아서 순서를 뒤로 미룬 거라면, 그러면 그것은 아하스처럼 놋 단과 물두멍을 뜯어서 없앤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성전 문고리 잡는 사람이라서 연단에 놋 단 위에 당신을 바치라 그 말을 못한 겁니다. 이건지 저건지 남의 속을 알기는 어려우나 세월 속에 느껴보면 알 겁니다. 돈 많이 내는 부자 교인 삐져서 교회 안 나올까봐 비유 맞추느라고, 그 가정이 싫어할 만한 설교는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솔솔 피해가고, 막 잘합니다. 잘합니다. 그러면 교회에 인심을 써서 큰 선물을 해서 목사 자가용이 바뀌는 그런 설교는 해주더라. 자기는 몰라도 남은 잘 본다고 이런 거 있는지, 이런 거 딱 봤다가 저 목사 저거 순 돈을 위하여 점치는 점쟁이구나. 구약의 제사장들이 돈 들어오면 축복을 하고 돈 안 들어오면 저주를 하는 그런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 점쟁이 됩니다. 돈 가는 대로 점쳐줍니다.

그 문제가 아니라 아직까지 뒤로 술도 못 끊고 그냥 술고래가 돼 있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술 끊어 그래봐야 교회에도 안 나올 거니 그리고 본인이 양심의 가책을 아니까 그거 찔러댈 필요가 없어서, 그래서 술 먹지 말라 그런 말을 안 하는 이유가, 그 사람이 아직까지 받을 정도가 아니고 그런 절차가 아니라 어리기 때문에 놔둔다면, 그건 목자가 양을 길러가는 목회입니다. 목회기 때문에 두고 보느냐? 하나님보다 더 높고 귀한 사람이라 우상이 되었느냐? 아하스 왕이 첫 번째는 놋 단 치워버렸고 두 번째는 물두멍 치워버렸고, 세 번째는 놋 바다 치워버렸고 세계를 바꾸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앗수르왕 강대국 임금님이 방문할 때를 대비하여, 성전으로 통하는 낭실까지 바꿔버렸습니다. 여기 청와대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에 잠깐 예배를 드리러 오신다면, 오십시요 환영합니다. 그러나 오시면 순서대로 앉는 겁니다. 대통령 경호 때문에 한 10명이 앉아야 됩니다. 그러면 10명자리는 당연히 내드릴 수 있습니다. 대통령 지키기 위해서 권총 들고 들어옵니다. 권총 들고 들어오십시오. 천주교는 대통령 권총 들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교황 지킬 때는 아마 권총 다 차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종교인도 아닌 거니까 제쳐놓고 대통령이 앞에 앉아도 할 설교는 하는 겁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덩치가 크면 큰 자리 내드릴 수 있습니다. 덩치가 작은데 난 누워서 예배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허리가 아프십니까? 허리 아프시면 침대라도 가져오십시오. 허리가 안 아픈데 대통령이라 예배당 안에서 소파를 놓아 달라 그러면 그건 죄송하나 옆 교회 가십시오. 그럴 겁니다. 대통령 미워 그런 거 아닙니다. 예배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여기 18절에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이란 성전 울타리 안에 마당이 있고 마당 안에 성소와 지성소로 된 집이 있는데, 성소와 지성소로 된 이 집의 입구가 우리 예배당 들어오면 기둥과 지붕은 있고 벽은 없지 않습니까? 이런 걸 낭실이라 그럽니다. 성경에 낭실. 안식일에 쓰는 성전에 낭실, 또 왕이 밖에서 성전으로 들어올 때 왕을 위해 마련한 낭실은, 왜 왕은 특별히 취급을 해주지요? 성전에 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온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를 해야 되기 때문에, 왕이라 왕이 아니라 성전에서 본 하나님을 모시고 온 백성을 신앙으로 지도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왕이 성전으로 들어올 때 낭실이 있는데, 이 낭실을 앗수르 불신 왕을 인하여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더라. 우리나라보다 큰 나라의 높은 분이 올 때 이런 분을 위해서 성전을 개조해서 특별 좌석 만들어 여기 앉으시지요. 어쨌든 구약의 성전을 개조를 했습니다. 뭐든지 바꿀 때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꼭 그 말합니다. 좋게 바꾸는 거라고. 바꿔서 좋으면 좋은 거고 바꿔서 나쁘면 나쁜 겁니다. 바꾸는 것 자체를 막거나 바꾸는 것 자체를 반대하거나 바꾸면 무조건 좋다 이건 다 틀린 겁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거고. 바꿔서 정말 좋으냐? 당장이 아니고 두고두고 정말 좋으냐? 바꿉니다. 바꾼 것이 1년 10년 죽을 때 되돌아보니 그건 잘못 바꿨다 그건 잘못 바꾼 겁니다. 돈 놓고 돈 먹는 장돌뱅이처럼 당장을 보지 마시고 멀리 멀리 멀리 먼 훗날까지를 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는 바꾸는 것이 맞다 바꾸면 개혁입니다.

우리는 그런 단어를 잘 쓰지 않는데 한국사람 한국교회 안에 개혁이라는 말을 교회가 쓸 때는 장로교만 개혁이라는 말을 씁니다. 장로교만 개혁이라는 말을 씁니다. 침례교는 혁명을 하는 곳입니다. 침례교는 천주교 불살라 버리고 죄를 만들고 다 뒤집어 엎어버리는 겁니다. 실제 그러지도 않습니다마는 말은 침례교는 갈아엎어서 재를 만들어 혁명하는 것이 침례교 쪽이고, 장로교는 쓸 수 있는 것은 쓰고 고칠 것만 고치는 게 장로교입니다. 그래서 장로교의 500년의 역사는 개혁주의다 참 어려운 말입니다. 천주교에서 세례 받은 것도 장로교는 세례 두 번 주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이단인데? 천주교가 이단이라는 말은 입으로 밥을 먹으니까 이단, 아닙니다. 천주교인들도 입으로 밥 먹습니다. 천주교의 교리에 틀린 것은 삼위일체 교리가 틀린 게 아닙니다. 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 이름으로 베푸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교리는 천주교와 기독교가 똑같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에서 영세세례를 받은 것은 좋지 않은 데서 받기는 받았으나, 신풍초등학교 졸업장은 뭐 서울의 경기 중학교 들어갈 때 안 쳐줍니까? 여수에 저 어디 섬에 어느 고등학교 나온 것은 서울대학 넣을  때 이 고등학교 이건 치워! 그럽니까? 고등학교 졸업장을 보니까 좀 실력이 없는 거 아닐까? 의심을 하거나 점수를 몰래 빼는 것이지. 시골 졸업장 필요 없어 그 말 안 하는 겁니다. 하필 졸업장도 또 천주교 졸업장이면 참 그렇지만은 그래도,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교리는 천주교와 우리 기독교가 꼭 같기 때문에, 삼위일체 이름으로 천주교에서 세례 받은 사람이 기독교에 출발을 하면, 세례문답은 해도 세례는 두 번 안 합니다.

침례교라는 데는 천주교는 예배당도 불 질러야 되고 저놈의 교황도 죽여 버려야 되고, 천주교는 그냥 걸어 다니는 발도 밉고, 천주교에서 한 거는 다 무효고 다 불살라서 재를 만들어라 이게 천주교입니다. 그래서 침례교와 우리 장로교가 다른 점은 역사적으로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천주교 틀린 것만 고친다. 고칠 게 너무너무 많은데 아무리 많아도 천주교라도 단 한 개라도 쓸 만한 것은 손대지 않는다. 이게 혁명과 개혁의 단어 차이입니다. 역사적으로 혁명은 왕을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걸 혁명이라고 그럽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왕 손발을 묶어놓고 틀린 것만 고치고 왕 자리에 올려놓는 겁니다. 개신교 기독교 장로교 개혁교회란 어떤 종류도 혁명 안합니다. 뭐 그게 그렇게 필요한 말인가 자녀가 부모 바꿔치기 안 합니다. 침례교는 부모가 마음 안 들면 부모 바꿔버립니다. 이 부모 제명! 부부 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잘라서 내버립니다. 새로. 자녀도 없애 버립니다. 침례교의 자기주장을 끝까지 살피다보면 더 나아 보이기는 나아 보이지만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야 그게 침례교의 마지막입니다. 멋모르고 그냥 젊은 청년들이 열불이 나 가지고 왈칵하고 시작한 게 침례교입니다. 틀린 거는 다 없애버려라 안 틀린 것까지. 부모 안 믿으면 부모 제명할 겁니까? 부부 둘 믿다가 하나 먼저 믿고 하나 안 믿으면 호적정리 해버릴 겁니까? 가정교회도 교인도 부부도 교회인데 한 몸인데 그래서 기독교는 정통의 장로교는, 또는 다른 말로 개혁교회는 왜 장로교회를 개혁교회라 그러느냐? 무조건 다 없애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라 틀린 것만 고치자 이게 장로교의 신앙의 노선의 사상입니다.

여기 아하스는 고치면 좋은 거 아니냐? 담부랑은 놔두고 담은 놔두고 성소 지성소도 놔두고 뜰에 있는 것만 하나 둘 셋 넷을 개조했습니다. 고쳐야 이거는 부흥이 되겠고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겠고 내 마음에도 좋고, 하나님이 못 고치게 못 박아놓은 거는 손 못 대는 겁니다. 하나님이 고쳐도 되고 말아도 되고 그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구약은 성전 자체는 어떤 것도 손을 못 댑니다. 신약은 예배 안에 이런 걸 넣을 수 있냐 없냐? 잘 생각하고 잘 생각하고 잘 생각해서, 이거는 구약의 성전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라고 주신 것이다. 레위기 1장에서 6장 7장까지 우리 다 공부해봤지 않습니까?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 어떤 사람은 비둘기 가져와도 되고 어떤 사람은 양 가져와도 되고, 어떤 사람은 송아지 가져와도 되고 그렇습니다. 그건 변덕이 아니라 처음부터 양이 없으면 비둘기라도 가져오너라.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유를 준 것은 할 수가 있는데, 담 뜰 단 물두멍 집 낭실 이건 뭐 왕이든 누구든 아예 손 못 대는 겁니다. 이걸 손댄 겁니다. 어떤 교파든지 자기교파 자기가정 자기신앙 자기 교회의 방침을 세워놓고, 우리는 여기까지는 하고 여기까지는 하지 말자 그건 교회의 자유입니다. 근데 언제는 이랬다가 언제는 저랬다가 이걸 갖다가 잣대를 갖다가 휘어버리고 바꿔버리면 문제입니다. 잣대라는 것은 뭘 재도 곧은 걸 갖다 대야 이게 굽은 것은 굽은 것이다. 자가 곧아야 이게 굽기는 굽은 것이다. 못 고치지만은 굽은 줄 알고는 있어야 되는데, 잣대가 굽은데 가면은 구워서 휘청거리지 또 고무줄이 돼가지고 긴데 가면 잣대가 길어지지. 미운 거한테는 잣대가 좁아지고 날카로워지지 우리 편 아니면 다 집어넣고 우리 편이 한 것은 아이 그럴 수 있지. 내 아들이 그런 것은 그럴 수 있지 사위가 그런 것은 그러면 되는가. 잣대가 휘어지고 바꿔지고 길었다. 좁았다 이리 되면 이건 안 되는 겁니다. 근데 지난날 이게 옳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성경과 교리에 이건 그때 몰라서 잘못 알았구나. 그건 회개하고 바꿔야 됩니다.

여기 아하스가 하나씩 둘씩 바꾸어 갑니다. 놋 단을 바꾼 것은 신앙생활과 주일과 예배 안에 내 속의 말씀에 잘못된 걸 꺾을 것은 꺾어야 되는데, 아무리 말씀에 잘못됐지만은 자존심이 있는데 그래도 그 말 하면 되는가? 이게 놋 단 치워버리는 겁니다. 그럼 내가 화가 나지. 하나님 지가 양보를 해야 되지 내가 양보를 해? 예배당 밖에 세상에서 너무 위대한 분들은 예배당에 와가지고, 예배당을 갖다가 그냥 이렇게 고무줄처럼 바꾸려고 듭니다. 세상 잘난 사람들은 그건 다 그러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예배당 밖에서 잘난 사람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그 교회는 반드시 속화가 된다. 이거는 교회의 그냥 통계입니다. 예배당 밖에 못난 사람은 예배당 안에 와가지고 예배당을 두려워하다 보니까 예배당을 못 바꿉니다. 그러다보면 이건 또 천주교가 돼버립니다. 이래도 탈이고 저래도 탈이고 어릴 때부터 부모 말을 잘 들어 부모하고만 평생 산다고 40 50이 돼가지고 결혼도 안 하고 부모하고 사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건 장애자입니다. 이것도 탈. 10살 되는 게 벌써 부모한테 맞서서 지가 옳다고 빡빡 씌우고 마음대로 다해버리면 이것도 탈입니다. 배울 때는 배우고 자립할 때는 자립을 하고 부모한테 설득을 해서 부모를 고칠 때는, 어쨌든 울어가며 달래가며 설명을 해서 부모를 더 좋게 모시기도 하고, 이래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참 그런 사람은 드문 것이고.

구약의 성전이란 손대는 게 아닙니다. 바꾼 거는 무조건 계약입니다. 그건 죽으려고 환장한 겁니다. 천하의 모든 성전이 다 바뀌어도 여호와의 성전은 안 바꾸는 겁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우리교회의 신앙의 방향이 뭐냐 노선이 뭐냐 중심이 뭐냐. 우리교회의 예배에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이 뭐냐. 왜 찬송을 크게 부르고 피아노 반주를 좀 세게 하라고 자꾸 부탁을 하느냐? 전부 그냥 입 닫고 예배 때 찬송을 안 불러버리니까 찬송이 안 되니까, 한쪽은 점잖아서 그러지 한쪽은 실수할까봐 창피해서 입 닫지, 한 쪽은 뭐 예배당 온 지가 얼마 안 되니까 몰라서 그렇지. 한쪽은 소리를 내면 그냥 음이 마구 엉망이 돼가지고 옆에 지장이 되지. 사람은 많은데 찬송을 불러라 해도 찬송이 안 되니까 실수를 해도 해보자고 그런 말을 해보자고, 피아노 반주에게 좀 반주를 세게 해주시라 찬송 인도하시는 분에게 목소리를 높여 주시라. 이렇게 하는 이유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을 배우기 위해서 그랬는가? 노래방을 해야 좋다고 노래방을 하려고 그렇게 유도를 했는가? 하나님은 들여다보고 아실 겁니다. 딴 마음 가졌으면 아하스 왕이 성전 안을 개조한 것 같은 죄로 처벌할 겁니다. 순복음 교회보다 박수를 더 치고 더 뛰고 굴려도 하도 움직이질 않으니까, 말 떼도록 시키기 위해서 그랬다면 그거 이해하실 겁니다. 이건지 저건지는 좀 지켜봐 보면 압니다.

묘목을 보고 감나무인지 사과나무인지 압니까? 가을에 열매 맺는 걸 보면 그거 모르겠습니까? 정말로 중심이 무엇이며 가는 방향이 어디냐. 예배는 하나님 앞을 전제한 겁니다. 하나님 시키는 대로입니다. 그 뜻을 찾는 겁니다. 구약은 집이고 신약은 볼 수 없는 신앙입니다.
이게 정말로 맞다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으로 나아가려다 보니 그렇다. 애양원 교회의 수요일 예배는 저 100년 전부터 예배가 오후 2시인가 그렇습니다. 수요일 저녁 예배가 오후 2시 그 이유를 혹시 아십니까? 그분들 병이 시력을 이렇게 앞을 못 보는 병이 많습니다. 또 약이 독해서 앞을 못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을 못 보는 분들이 많은데 밤에 예배당 올 때 문제가 생길까봐 그래서 저녁예배를 전부 오후에 보는 겁니다. 지금도 아마 오후에 볼 겁니다. 오후 2시인가. 신풍교회는 저녁예배를 7시 보는데 그 교회는 오후에 보니까 나쁜 교회 아니냐? 나환자들 눈이 어두워서 노인이 많아서 거기다 대고 또 발 불편한 분이 많아서 그런 겁니다. 그 하나님 기뻐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다 돌아가시고 지금은 전동 휠체어가 있고 플래시가 다 있어서 저녁예배 와도 드려도 문제가 없거든요. 지금은 환자도 없고 다 건강하고 불이 대낮같이 밝은데 지금도 오후 2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물어보실 겁니다. 100년 전에는 전부 발도 불편했고 눈도 없고 불도 없고, 장애자밖에 없으니 오후 2시였는데 지금 장애자 없지 않냐. 지금은 소경도 없지 않냐. 지금은 발이 불편하면 아스팔트 깔아가지고 전동 휠체어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않느냐. 근데 왜 100년 지나서 지금도 오후 2시냐. 우리는 무조건 2시라서 2시 그대로 갑니다. 오후 2시 예배 보는 것과 저녁 7시에 보는 것과 둘 중에 어느 것이 교인들이 예배에 참석하기에 좋겠냐? 물어보겠지요. 지금은 대부분이 애양원 밖으로 직장 다닙니다. 수요일 2시 예배 보니 직장 출근하는 사람들 안 올 겁니다. 오든지 말든지 우리는 2시 그대로 간다. 이리 되면 천주교 됩니다.

바꿔서 좋다고 안 바꿀 것까지 바꿔버리는 것, 바꾸면 절대 안 되는데 좋게 될 겁니다 하고 하나님이 막고 나서는데 사람이 바꿔버리는 것, 100년 전에는 장애자들밖에 없어서 오후인데 지금은 장애자들도 없고 전부 회사생활하고 있는데, 2시 예배 그대로 봐버리니까 노인 몇 모이지 건강한 사람 직장 다닌 사람 아예 못 오게 만드는데 지금도 2시가 좋으냐?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약간의 변동이 있다 보니, 약간의 변동의 기회를 주면 죄 지을 사람은 전부 끌어다가 둘째 아들처럼 먼 나라로 가버리는 겁니다. 내 몫으로 돌아 온 것을 다 모아서 다시 아버지께 드리면 내 몫을 계산해 보니 이 모양인데 이 정도인데, 이거 전부 아버지께 이제 내가 바치고 앞으로 순종하랍니다. 이러면 100점이 되겠는데 큰 아들은 아버지 밑에 무조건 죽치고 앉았다가 전부 내 건 줄 알았는데 동생이 돌아오니까 손해 본다고 난리. 둘째는 지 것 계산해서 일찍 먼 나라에 털어먹고 온 이것도 문제. 큰 아들 둘째 아들 다 실패한 게 누가복음 15장에 부자 아버지입니다. 그 부자 아버지가 오늘 하나님 아버지고 큰 아들 작은 아들은 잘 믿는 사람 못 믿는 사람, 이래 믿는 사람 저리 믿는 사람 오늘 우리를 말합니다. 큰 아들은 큰아들대로 좀 고쳐야 됩니다. 둘째는 둘째도 고쳐야 됩니다. 아버지 거 말아먹은 것은 죽는 날까지 잘못된 겁니다. 큰아들은 아버지 시키는 대로 한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속에 보니까 도둑이 들어앉았습니다. 고칠 것은 각각 다릅니다. 고치기는 고쳐야 됩니다. 교회와 예배와 교회운영과 신앙의 노선과 교리를 두고, 아무리 봐도 이거는 성경 전체를 봐도 아무리 생각을 해도 역사를 봐도, 이러면 지금은 더 반드시 좋을 것 같다. 얼마든지 제안하시고 그대로 가야 됩니다. 그러면 사울을 이긴 다윗 됩니다. 안 고친 걸 안 고칠 걸 손대는 순간 여기 열왕기하 16장에 아하스 됩니다. 극단적으로 큰일 납니다.

부부의 가정교회도 그렇고 우리 신풍교회도 그렇고 공회교회도 그렇고, 자기 한 사람의 신앙 자기내면도 들여다보면서 나는 이러고 저러니 좀 빨리 오려다가 교통사고 나는 것보다 10분 지각해도, 많은 면을 생각할 때 나는 10분 지각을 해도 요래 오는 것이 예배의 정성이 되겠다. 그런 분도 계십니다. 요 앞에 주 그 앞에 주 교회 차 삼거리에서 운전하는 거 보니까 사고 나겠다 싶을 만큼, 사고 내라고 나갔겠습니까? 예배가 다 됐으니 빨리 모시고 와야 지각을 안 하겠다는 좋은 일념인데, 내려오는 차 사이로 그냥 고개 운전을 하면. 목숨 걸고 할 일입니까 그게? 출발을 좀 일찍 하든지 출발을 일찍 해도 타는 분 때문에 안 되면, 나 때문이 아니라 타는 분의 일정 때문에 거리 때문에 10분 지각은 하나님이 이해하신다. 얼마든지 고수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10분이 늦었는데 어느 날 10분 당겨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뭐 맨날 그랬으니까 요리 되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너 속은 그렇지 않았구나 이래버립니다. 어떤 사람 어떤 가정도 사실은 비판하고 개입할 건 없습니다. 그러나 참고는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나 신앙 내 가정의 신앙 우리교회의 내부를 잘 들여다봐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일을 두고 당장이 아니라 요랬다 조랬다가 아니라,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은 죽어도 못 바꾸는 겁니다. 바꿔도 되는 거는 바꾸는 겁니다. 애매하면 안 바꾸고 좀 버티는 게 지혜로운 겁니다. 애매하면 예배 여기까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쉬운 말 같아도 어려운 말이고 실행은 더 어려운 말이고, 양심껏 조금 차분하게 생각하면 가정도 그리 돼야 되고 부부도 그리 돼야 되고, 교회도 그리 돼야 되고 세상도 그리 돼야 되고 뭐 두 말할 거 없습니다.



1차: K.Y.Y

Comments

Category
State
434,246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