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11.26 마24:15 말씀 순종 최종 결정의 순간, 세상의 미혹, 더욱 상향으로만 이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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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2.11.26 마24:15 말씀 순종 최종 결정의 순간, 세상의 미혹, 더욱 상향으로만 이기는 것

관리1 0 80 2022.11.26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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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6 토새

제목 : 말씀 순종 최종 결정의 순간, 세상의 미혹, 더욱 상향으로만 이기는 것

찬송 : 61장(이 세상 험하고)

본문 : 마태복음 24장 15절 -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세상 마지막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중심, 예루살렘이 다 점령이 되고. 예루살렘의 중심 하나님의 성전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다 철저하게 이렇게 흩어져 버릴 때. 예루살렘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가 되어진다면 예루살렘성은 무사하겠는가? 수도 예루살렘이 끝장나는데 이스라엘 나라의 생활과 일반 백성이 멀쩡할 것인가? 몸의 심장이 절단이 났는데 눈이나 귀나 손 발은 멀쩡해질 것인가? 심장이 당할 때에는 다른 것을 다 망치고 들어오는 법이다. 온 나라가 다 점령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당하고 예루살렘이 당해야 그다음 성전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전의 담과 성전의 성소까지가 다 엉망이 되어져야 마지막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하나님 나라의 예루살렘은 구별된 거룩한 성이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 안에서도 성전은 거룩한 집입니다. 거룩한 성전에 담부터 철저하게 막게 되어 있는데 그 다음 안에 들어와도 마당이 있고 그 뜰을 지나야 그다음 성소가 있고 성소 안에 마지막에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 지성소를 거룩한 곳이라고 하는데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신앙의 가장 중심 되는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 악령이 죄를 가지고 망쳐놓은 세상 그 세상이 교회 제일 중심에 우뚝 서게 되거든. 구약은 예루살렘 성전에 지성소의 세상의 군인이 세상의 적군이 짓밟고 들어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 되어집니다. 오늘은 예배당에 경찰이 군인이 예배당 하강단을 밟고 상강단 여기까지 들어오면 그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인가? 예배당 건물은 불도저로 밀어버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교인들의 신앙이 그대로 버틴다면 예배당의 건물은 빼앗겨도 예배당 건물 안에서 만들어놓은 신앙은 그것은 예배당과 강단이 없어진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은 보이는 이스라엘이라 보이는 성전이 지켜져야 됩니다. 신약은 볼 수 없는 신앙이 지켜진다면 보이는 예배당 보이는 강단은 뺏기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코로나에 강단에 서려고 했고 예배당으로 가던 걸음이 이게 경찰한테 막혀서 가지 못했다면, 예배당과 강단이 빼앗긴 것이지 교회와 신앙이 빼앗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이 가지 말라고 한다고 시도도 안 해보고 막히지도 않았는데 집에서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포기를 했다면, 포기한 것은 신앙을 내준 것이 됩니다. 집에서야 나와야지. 집 대문 밖에서 지켜서 집 대문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면 상관이 없으나, 집의 대문을 지키지 않으면 대문은 나오는 것이고. 그런데 예배당 대문을 지켜서 못 들어가게 한다면 싸우면서까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칼 들고 싸워 지키는 것이고.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라. 하나님께 붙들려 순종이 신앙이고. 주먹으로 어깨로 밀고 밀치고 지키는 신앙은 아닙니다.

예배당 문이 경찰에 막히면 잘 설명을 해서 비키시라고 하고. 경찰이 못 비킨다고 하면 주먹으로 어깨로 밀고 들어가고 그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경찰이 막은 거기까지 순종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신앙은 살아 있는 것이고. 세상이 빼앗을 수 있는 건물은 빼앗길 수도 있고 그건 무너질 수도 있고. 건축 소방법으로 안전 진단 나와서 위험한 거물이니 못 들어간다. 그러면 막히는 것입니다. 건물이 무너져도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예배를 드리렵니다. 그러다가 무너지면 순교가 될지 그게 자살이 될지 판정이 어렵습니다. 위험한 건물이 무너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확실하나 그것을 알고도 이 시간 주님이 나를 불러 가신다고 하는 영감으로 순종하고 들어가면 남이 볼 때에는 자살이고 하나님이 볼 때에는 순교로 볼 수 있고. 그냥 예배당은 무조건 건물을 지키는 것이라고 밀고 들어가다가 죽으면 인간들은 순교로 봐도 하나님은 개죽음으로 자살로 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 뭐 그렇게 죽고 사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평소 별 것 아닌 직장 문제도. 그 직장 다닐만한데 게을러서 오기로 그냥 성깔을 못 참아서 휙 던지고 나오면, 주님이 주시는 현실의 인도인데 그 현실의 인도를 거부하는 발람으로 볼 수도 있고. 또 그렇게까지 너의 성격과 신앙이 그렇게 맞지를 않는데 그릇이 아닌데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네가 판단을 잘못해서 잘못된 직장을 잡았으니 그러니 이제 다시 잘 생각해서 너 성격 너 신앙 너 실력을 고려해서 적합한 신앙으로 바꾸라. 그래서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원서를 멋 모르고 원서를 넣다보니까 좋은 대학 좋은 과에 합격을 했는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도무지 못 따라가겠으면, 합격까지는 합격이었으나 도무지 공부가 안되면 편입할 수도 있고 또는 전학할 수도 있고 또는 포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들어갔으니 맞지 않아도 못 따라가도 낙제만 해도 계속 무조건 끝가지 가야 되겠다 그렇게만 무조건 가는 것도 문제이고. 조금 찝쩍거려 보다가 안 맞으면 또 옮기고 안 맞으면 또 옮기고 또 옮기면서 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내 능력과 내 그릇이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건 뭐 개미 한 마리를 보고도 이래버리고 저래버리면 그건 변덕이지 그건 또 하나님의 인도를 찾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물 한모금 마시고 걸음 걸음 모든 것을 다 양심으로 살피며 가야 하고. 그렇게 노력을 해도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 좀 세월이 지나고 열매를 가지고 다시 살펴보지 그렇게 단언하고 큰 소리 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이 또렷한 것은 순종해 놓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주일과 평일이야 나뉘기 쉬운데, 평일 월요일에 장사 하는 사람이 여수로 물건을 팔러 갈까 순천으로 팔러 갈까 그건 말씀 읽어서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것은 쉬운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명확하고 쉬운 것을 순종하다면 보면 애매하고 어려운 것을 점점 명확하게 알려주셔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눈이 밝아지며 순종을 해 나가다가 어느날 말씀의 인도는 분명히 저쪽인데 말씀의 인도를 알면서도 이런 저런 인간적인 핑계로 슬쩍 방향을 바꿔버리면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 영안을 어둡게 만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가르쳐주지를 않으십니다.

남 보기에는 몰라도 벌써 속으로 자기는 아는 것입니다. 발람이 발락을 따라가는 길, 발락이 오라고 그러지만은 발람은 미리 내가 가더라도 하나님께 순종만 하지, 너희들 원하는 대로는 못해준다 그러고 따라 나섰습니다. 발락 왕이 부르는데 발락 왕 하는 일에 선지자가 따라 가서 저주를 하려고 지금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 것인지 돈에 팔린 것인지 남이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안 갈길 돈 때문에 끌려간다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세 차례나 발락왕 면전에서 발락왕을 저주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여 순교 정신으로 걸어 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깊은 속에는 안 갈길 갔고 안 갈길을 갔는데 이게 발락왕의 칼보다 하나님의 칼이 무서우니까 그렇게 한 것이었고. 그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는가? 모든 게 끝나고 헤어지고 발락 왕으로부터 나올 때에 발락 왕한테 힌트를 하나 넘겨줬습니다. 앞에서 대놓고 저주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망치는 방법은 마음껏 차려 놓고 제사 음식을 먹게 만들어 버리면 너희들은 인심 쓰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죄 지었다고 하나님이 직접 다 죽여 버릴 것이다. 이렇게 덫을 놓는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그게 발람의 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돌아보면, 살아가며 한번씩 다 발람과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게 연약한 인간 속의 일어나는 전쟁입니다. 국가와 국가의 전쟁은 우리나라가 지금 1950년 이후에 70년 지나도록 없습니다마는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은 아니나 국내의 여당 야당의 전쟁은 70년 동안 쉬어본적이 없습니다. 여당 야당 싸움은 선거 때나 싸우는데 부부 싸움은 선거 때만 싸웁니까? 전쟁 때만 싸웁니까? 밤낮 없이 싸우지. 부부 싸움은 출근하고 안 볼 때에 몇 시간은 안 싸우는데 내 마음의 옛사람과 새사람의 욕심의 싸움 신앙의 싸움 갈팡질팡 미혹에 흔들리는 내 마음의 전쟁은 그건 24시간 피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미혹과 육체의 욕심을 꺾어버리고 말씀으로 내 마음을 틀어쥐면 그 이후에 부부와 가족과 주변 사람과의 갈등은 그건 뭐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길 수 있는 승리의 길로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귀신은 저 멀리에서부터 회개하여 나는 제일 마지막에 회개하자 이렇게 방향을 잡고 성령은 네 속아지부터 회개해라. 네 내면을 먼저 씻고 고쳐 그 다음 밖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자고 이렇게 방법을 완전히 달리 합니다.

여기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한국 교회의 주도권을 세상에 주면 안 된다. 우리 공회의 결정을 타 교단에게 맡기면 안 된다. 우리 교회는 교인끼리 결정해야지. 교인 아닌 사람이 와서 주도하면 안 된다. 이게 외부로부터 싸우는 전쟁입니다. 내 마음의 최종의 결정은 말씀을 따라가는 순종으로 내 마음이 항상 모든 결정을 하고 왔는가? 내 마음 속에 말씀 순종 아닌 것이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과 내 하루를 틀어쥐고 돌아 다녔는가? 이 전쟁에서 모든 전쟁은 판정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확실하게 말씀이 아닌데 확실하게 이것은 세상 지혜인데 확실하게 이것은 귀신이 좋아하는 것인데. 그것이 내 마음 속의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은 이미 나를 점령했습니다. 그럴 때에 그렇게 나의 신앙이 흔들릴 때에 구원의 방법 피난의 방법은 무엇인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세상 염려 환경 주변 입장 별의별 것 다 제쳐놓고 무조건 산으로 뛰어 올라가라. 신앙으로 조금 더 발전이 되는 상향, 하늘을 향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쨌든지 발버둥 쳐라 아니면 끌려 죽으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말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으로 걸어가는 길이 맞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 어떡할 것이냐? 머뭇거리면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날 바에는 죽기 살기로 한번 뛰어 보는 것입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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