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2.11.30 마24:19 극단의 오늘 환란, 하나님만 바라보는 독립 독자적 신앙을 만들 최종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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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2.11.30 마24:19 극단의 오늘 환란, 하나님만 바라보는 독립 독자적 신앙을 만들 최종 기회

관리1 0 114 2022.12.0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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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30 수밤

제목 : 극단의 오늘 환란, 하나님만 바라보는 독립 독자적 신앙을 만들 최종 기회

찬송 : 77장(어지러운 세상 중에)

본문 : 마태복음 24장 19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알지를 못하니 미리 준비하는 은혜와 복된 신앙의 자세를 가지도록 이 밤도 불러주신 주님. 또 부르심을 순종하여 삼일의 예배로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 부르시니 복이요 모였으니 복이요 주시는 말씀에 전하고 듣는 저희들이 함께 귀를 기울여, 이 시대를 주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방향 주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달라는 간절함과 노력으로 주의 은혜 받아, 말씀 인도하는 길 거침없이 따라가는 이 밤의 믿음의 용사들 되도록 함께 하시고, 순종 후에 만사를 주님이 책임지심을 깨달아 담대함을 가지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여수의 추위는 추위도 아닌데 영하 수십도 북한 땅 산 속에 찬송 숨어 부르며, 해방의 날을 기다리는 이북의 교회들 교인들 호소하는 그 애 터지는 마음 생각하며, 오늘 나만의 이 사회 여수의 이 날씨 오늘 밤에 예배를 힘들다 어렵다. 불편하다. 라고 생각하면 주님이 그냥 둘 수 없는 엄살이 되겠고 망령이 되겠사오니, 주시는 은혜의 은혜가 더해지도록 늘 감사하며 조심하며 진실이 충성하는 남녀노소 우리 교인들 되도록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역사에 없는 환란이 있을 것이라. 그리고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역사에 없던 환란이 산더미처럼 넘치고 있습니다. 창조 이후로 오늘까지 음식이란 생존을 위해서 피터지게 싸우며 겨우 한 끼 한 끼 먹고 사는 건데, 거지도 골라 먹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들 고양이들 모두 비만 걸려 전부 성인병 걸려 있습니다. 이게 좋은 건가. 역사에 없는 환란입니다. 21절에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먹을 것이 없어 뺏어 먹고 훔쳐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뼈골 쑤시며 발버둥을 치고 살아온 것이 역사의 전부였습니다. 지금 딱 우리 산은 오늘만 놀아도 먹고 게을러도 먹고 먹기 싫은데 줘서 먹고, 가난할수록 체중이 많아지는 이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재앙이라 그러고 환란이라 그럽니다. 이게 환란인지 모르는 사람은 세상 살기 어렵습니다. 환란인 줄 알고 조심해도 참 두통거리라 어렵다고 하는데, 어려운 걸 어려운 줄도 모르면 안 어려우면 상관이 없는데, 잘 먹으면 혈관 속에 찌꺼기가 들어가서 심장하고 뇌 쪽이 터져버립니다. 잘못하면 5분 만에 초상 쳐버립니다. 뇌하고 심장 쪽이 막히지 않으면 온몸이 막혀가지고 신장 투석이라고, 온몸에 피를 전부 다 빼내서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에 일주일에 세 번 그리고 매일 피를 갈아주면 이제 그거 죽습니다. 죽지도 않고 고생만 하다가 그리되어집니다. 이런 거 안 좋은 겁니다.

당해야 그때서야 아차 그러면 준비를 못합니다. 역사의 이런 때는 없었습니다. “창세로부터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왜 훗날에는 없을 것이냐 홍수심판의 홍수로 다 죽여 버리니까 더 이상 또 홍수가 와야 될 일이 없습니다. 근데 노아 후손들도 함의 자손 모두들 이리저리 문제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거는 물청소가 아니고 불로 다 구워버렸습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불 심판이 없었습니다. 물로 한 번 쓸었는데 안 되니까 소돔 고모라 봐보십시오. 니느웨 봐보십시오. 아예 이거는 그냥 불로 다 구워버립니다. 그리고 영원한 지옥이 영원한 유황 불구덩이입니다. 그래서 항상 성경의 말씀은 조심스럽게 경청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현재 우리 사는 세상은 역사적으로 이런 때가 없었습니다. 하나하나 다 따져도 다 그렇습니다.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요즘 의사들이 핀셋으로 찝쩍거리면, 사람의 귀를 허벅지에도 만들고 발가락에도 만들고 혹시 사진 보셨습니까? 핀셋으로 찝쩍거리면 장딴지에 오른쪽 귀 왼쪽 귀가 달리도록 만들 수가 있습니다. 지금 실험실에서 일부러 만들어 가지고 여기까지만 하고 마는데, 마음먹으면 다 만듭니다. 이 정도면 괴물 된 겁니다. 돼지 심장 떼다가 사람 심장하고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숨 쉬고 사니까 자랑스러우냐. 그렇게까지 살 것 같으면 가는 게 좋겠는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원래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심장이라는 것은 주먹만 하다 그럽니다. 이게 하루에 십만 번씩 백년을 펌프질을 해도 고장이 안 나도록 만들어 놨는데, 게으른 것이 자꾸 먹어대면 이게 고장이 나서 돼지 심장을 갖다가 방이 많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땀 흘려 일하고 청소 열심히 하고 남 신세 안지고 열심히 살다보면 심장이 고장이 나지 않습니다. 안 움직이니 심장이 내가 왜 뛸 거냐. 그러고 버티는 것이 심장병입니다. 먹을 만큼 뛰면 좋겠는데 그 이상으로 뛰니까 이게 과부화가 걸려서 내려앉는 겁니다. 두 가지. 세 번째는 과로도 하지 아니하고 몸조심도 하는데 잠잘 때 잠이 안 온다고 한 잔씩 살짝살짝 하게 되면, 이게 심장 속에 들어가서 심장 바탕고장을 일으켜버린답니다. 그렇게까지 죽으려고 환장을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반적으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남 신세 지지 아니하고, 세 살은 세살답게 스무 살은 스무 살답게 노인은 노인답게 또박또박 살아가면, 그런데도 일찍 오는 것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일찍 데려가서 복을 주십니다. 세상에 할 일이 많은 사람은 일찍 가고 싶어도 사도바울처럼 많이 뒀다가 뒤에 불러갑니다. 모세 같이 맨날 불러가 달라고 기도를 해도 120살에도 모세는 눈이 청청하고 몸이 아픈 데가 없었습니다. 120살 건강하게 심부름을 시킬는지 다윗처럼 70에 데려가실는지, 하나님께서 나이나 모든 것은 결정하고 우리는 아이는 아이답게 청년은 청년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수요일 저녁은 3일 예배답게 주일은 주일답게 그렇게 그냥 또박또박 걸어가다 보면, 건강도 죽는 것도 가정도 세상도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전부 다 완벽하게 조절을 해버립니다.

이렇게 좋은 길을 쌓아놓고 열어놓고 가자는데, 요즘처럼 그냥 전국의 고속도로가 이렇게 안전하게 잘 닦여 있는데, 빨간 신호등에 기어코 머리를 갖다가 들이 밀고 통과를 하면 그 다음에는 응급실 가시든지 중환자실 가든지 아니면 화장 막에 가야 되지. 수많은 차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빨간 신호등에 머리를 내미는데도, 그 사람 다치면 안 된다고 울어대고 난리가 났는데, 전부 그래야 된다고 그러면 온 사회가 미친 겁니다. 이게 객관적이고 이게 상식적이고 이게 안팎으로 가득 찬 복인데 이 복을 조금 뒤집어버리면 역사에 없는 재앙이 되어 집니다. 사람과 개는 음식을 같이 먹습니다. 그래서 뒤를 봐놓으면 냄새가 지독합니다. 염소나 소는 풀만 먹기 때문에 그냥 여기저기 버리고 가도 별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불붙이면 불도 탑니다. 영양분이 좋은 걸 먹으면 뒷 냄새가 지독합니다. 세상이 좋기 때문에 좋은 걸 잘 사용하면 기가 막히게 복된 사람이 되고, 조금 잘못 사용하면 더러워서, 더러워서, 더러워서 이걸 인간이라고 쳐다봐야 되나? 안 쳐다보면 요즘 또 인권위원회에서 잡아가니 안 쳐다봐 줄 수도 없고, 쳐다보자니 정화조보다 더 더럽지. 옛날 기생 잡부들은 저 뒷골목에 유리창 안에나 있는데, 요즘엔 뒷골목이 아니라 안방이 아니라 사방천지 그냥 가득 차버리니, 눈을 감고 돌아 댕길 수도 없고 이거는 같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이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이 있었는가? 7계명의 역사에 오늘 같은 재앙은 없습니다. 홍수 때보다 더 합니다. 소돔보다 더합니다.

여기에 우리까지 한 발을 들이밀고 그 속에서 뒹굴면서 나도 오늘에 맞추고 있다. 그래야 되는가. 이 정도로 역사 이후에 더럽고 잘못된 세상에서는 한 발을 좀 살짝 빼버려야 될까 싶습니다. 전쟁이 나서 수백만 명이 죽어도 전국이 그러지는 않습니다. 양쪽이 들어붙은 데를 전쟁터라고 그럽니다. 일선이라고 그럽니다. 저쪽이 쏘면 죽는 일선에서는 죽어 나가도, 이쪽에다 대고 보급하는 후방은 놀아가며 잠자가며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전쟁을 잘 모릅니다. 역사 이후에 이런 환란 이런 엉망이 벌어지는데, 우리 말고는 5천만 명과 75억이 전부 그 전선으로 달려가 깨지고 뒹굴고 난리가 났는데, 후방에서 기도나 하면 되는 우리까지도 그 전방 속에 들어가서 또 총알을 막고 저쪽을 사살하고 그래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쁘게 안 가꿔도 5천만이 예쁘게 가꾸니까 세계적으로 한국 사람은 인물 좋다고 원래 호평이 나 있습니다. 인물 좋을수록 인격은 더럽게 돼 있습니다. 내 꺼든 남의 꺼든 그건 그렇습니다. 좋게 가꾼 근데 속을 보면 정화조 같은 5천만 75억이 버글거리는 세상에 안 살 수는 없으니, 우리는 한 발 살짝 빠져서 아침에 세수나 하고 빗이나 빗고 좀 조심조심 댕기면, 위험도 덜할 것이고 어느 날 사고도 안 날 것이고 또 속으로는 이런 인격자가 어디 있는가, 또 찾아보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만 또 찾고 있습니다. 끼리끼리 만나니까.

더러운 거는 더러운 걸 잘 발견합니다. 노는 것은 노는 것을 좋아하고 데리고 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곳곳마다 또 인격적이고 깨끗한 사람은 천하 없이 좋은 게 많아도 더럽다 그러고, 어디 좀 좋은 게 없나 이러다가 이런 사람하고 이런 사람 만나면, 그림 같은 그림 같은 과정이 펼쳐지고 하나님이 볼 때 기뻐하시겠는데. 시골에서 칠해가지고 시내로 간다고 그 표 안 나겠습니까? 시골 사람 칠해봐야 도시 가면 다 표 납니다. 부산 사람 말투 아무리 배워봐야 서울 갖다 놓으면 전부 어디 출신이지 다 표시합니다. 일부러 표현할 것은 없지만 대충하고 말지. 친정이 가난한데 부잣집에 시집 와 놓으면 돈 많은 표시를 얼마나 더럽고 추접하게 내는지, 혼자 자랑스럽고 속으로는 전부 다 천하게 봅니다. 진짜 돈 써보고 귀한 집 딸들은 그렇게 돈 가지고 그렇게 주변을 갖다 쥐 박고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배운 사람은 그냥 평범하게 그렇게 사는데 쥐꼬리만큼 배운 것은 아는 표시를 얼마나, 얼마나 내대는지 천하가 소란스럽다고 그럽니다. 그런 걸 선무당 굿한다고 그럽니다. 반 푼수 집구석 망친다고 그럽니다. “역사에 없는 환란이 일어나겠고” 교육 현장도 역사에 이런 학교는 없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담임한테 연애편지 보내고 같이 놀자고 이러는 세상입니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쯤 되면 선생을 덮친다고 난리라 이 정도입니다. 고등학생쯤 되놓으면 선생이 고등학생을 덮쳐서 또 난리입니다. 남선생이 여학생은 아니라 여 선생이 남자 애를. 세상입니까 이게 학교입니까 온 천하가 몇 십 년 작정하고 만들어 놓으니까 그리 되는 겁니다. 교육계? 안 그런 데가 있습니까? 이게 큰 환란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 큰 환란이라 할 때는, 예수님 가시고 한 40년 안팎 되면 로마군이 와가지고 완전히 엉망을 만들어 버릴 건데, 그때가 되면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처참한 일이 생기니 아이만 가져도 도망을 못가니 이걸 어떡하나. 점막이가 있으면 도망도 못가지 애도 문제지 나도 문제지 이러니 홀몸으로 도망을 가도 어려운데, 이거 뭐 아내나 젖먹이 데리고 있으면 어떡할 거냐. 라고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으로 오늘 우리에게는 예루살렘이 망하던 이스라엘의 최후보다 더 큰 재앙이 지금 쏟아지고 있습니다. 피해서 살아나면 좋겠는데 그 불구덩이 속에서 못 들어 가가지고 전부 날리고, 말리면 싸움이 생기고 도망을 가고 뭐 그러니 말릴 재간도 없고 말씀만 살펴보는 겁니다. 아이 가진 사람은 참 문제다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가지지 말라고 복 없는 사람 이렇게 거꾸로 읽습니다. 네가 맡은 신앙의 사람을 독립의 사람으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적으로 독립의 사람을 만들려면 이스라엘은 13년 걸리고 우리는 20년 걸려야 된다고 그럽니다. 스무 살에 어른이 여기 있습니까? 스무 살들 아직도 유치원 가도 애매할걸요. 서른은 돼야 모르겠습니다. 육체적으로는 10년 20년 30년이 되어야 독립의 인격자가 되지만은 신앙이라는 것은, 믿는 순간 하나님만 붙들고 말씀을 따라 독립의 신앙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은 고속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시공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물질이라 그러는데, 우리의 신앙은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세계이기 때문에, 신앙의 독립신앙의 독자적인 걸음은 교회를 처음 나올 때부터, 이 좋은 복음을 나보다 먼저 믿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열심히 배워야 되겠다. 그 사람은 벌써 독립신앙입니다. 교회 나온 첫날부터 어른 신앙이 있고 교회를 30년 다니면서도 집사들이 저래? 덕산 집사들이 다 이 모양이야? 이러는 분들은 젖먹이도 안 되는 겁니다. 덕산 집사님들은 다 손양원 목사님 정도 신앙이고 사도바울 정도 되고 그럽니까? 덕산에 신앙이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는데. 없는데 왜 그 욕을 합니까? 그 핑계 대고 거기에 숨어서 죄 지으려고 그러는 거지. 교회를 먼저 다닌 사람이 이 모양이냐 그러는 분들은 저는 속으로, 응 죄 지으려고 작정을 하는구나. 남 뒤에서 뒤 꼭지에다 대고 총 쏘는 비겁한 사람이구나.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듣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가로 늦게 신앙생활을 하고 뒤늦게 교회를 다녀도, 다른 사람들은 잘 믿고 수고를 하고 멀리 앞서갔는데 나는 이제 출발하니 부지런히 배워야 되겠다. 이 생각이 딱 들어가면 그 사람은 나중 된 사람인데 벌써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믿은 세월이 얼만데 이 생각이 딱 들어가면 그 사람 제일 꼴찌로 들어 가버리는 사람입니다. 이건 믿는 첫날에 눈빛을 보면 알고 자세를 보면 딱 나옵니다. 어 저 양반은 죽는 날까지 믿고 귀신 노릇하겠구나. 저 분은 오늘 하루 믿고 죽어도 하늘나라 귀한 신앙이 되겠구나.

아이들이라고 신앙까지 아이는 아닙니다. 몸은 아이인데 신앙은 사무엘처럼 젖 떼자 선지자 될 수도 있고, 몸은 주일 학생인데 벌써 다윗이 되어 사울대왕 위에 올라갈 수도 있고. 사울대왕은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사람을 다 모아놓고 훌륭했는데 젊어서 벌써 노망이 들어버렸습니다. 주일학생은 교회의 입장 때문에 반사 선생님들한테 배우지만은, 하나님 앞에는 목사님이나 주일학생이나 선생님이나 똑같습니다. 사무엘은 젖 떼자 어머니가 예배당에 갖다 놨습니다. 예배당에 갖다 놓으니까 대제사장 엘리보다 더 앞서버렸습니다. 신풍교회 초등학교 1학년이 저보다 훨씬 앞설 수 있다.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인사는 깍듯이 해야 되고 어른은 어른으로 대접해야 되고, 신앙이라는 것은 어른이 신앙이 있을지 아이가 신앙이 있을지. 그건 하나님과 관계에 있지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역사에 없는 환란이 닥칠 때” 아직까지도 아이를 독립을 시키고 사람답게 만들지 못한 사람은 큰일 난다. 아이를 가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가져라. 가진 아이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얼른 만들어라. 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님 말씀하시고 한 40년 뒤에 사건이 생기니 주님 이 말씀하실 때 아이를 가져도 환란 닥쳤을 때는 40살입니다. 그런데 40살이 돼가지고도 유치원 애만도 못한 사람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당야당한테 물어보면 그런 아이들 한 2500만 명 된다고 그럴 겁니다. 자기편은 놔두고 저쪽 편은 전부 유치원만도 못하다고 이렇게 5대 5로 그럽니다. 우리는 그런 걸 보며 우리의 신앙을 살피는 겁니다.

신앙은 교회를 첫 발 딱 딛으면서 제일 앞자리 갈 수 있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돕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손 딱 떼버리면 신앙의 전문가로 100년 살아봐야 에서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아이 가진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아이를 뱃속에 가지지 말라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이를 주시면 얼른 혼자 살 수 있는 독립 독자적인 신앙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여기 뭐 엄마 돌아가시면 교회 안 나올 사람 많을걸요. 엄마가 오늘 감리교로 넘어가면 뭐 어지간하면 줄줄이 다 따라갈 걸요. 남자야 밥 얻어먹어야하니까 따라가야 되고, 애들은 부모 따라가면 뭐 그쪽 편 되는 거고 이런 게 배 속에 아이입니다. 나는 나고 내 거는 내 건데 생명은 독립의 신앙이 독립의 인격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이를 가졌으니 잘한 것이고 한 생명이 더 생겼으니 소망은 있지만은, 싹수부터 시작부터 하나의 밀알처럼 겨자씨처럼, 아무리 작아도 이거는 땅 속에 심는 순간에 이것이 생명력이 있어 하나님과의 연결이 되어, 힘은 있으나 하나님과 붙들려 말씀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이걸 만들어야 되는데 10년간 밥 먹이고 돼지 기르듯이 사료만 줬지 사람은 만들지 못했다면, 이게 뭐 화지 화 아니겠습니까. 로마군이 와가지고 돼지를 왜 죽이겠습니까? 그건 잡아먹고 가져가겠지. 사람은 살려놓으면 원수가 되기 때문에 아이까지 다 없애버렸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잡으면 황실만 전부 다 죽여 버리지, 일반 백성은 이거는 세금 낼 거고 이거는 나중에 길러서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손 안 댑니다. 황실 쪽은 충성해도 죽고 나중에 멸종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본을 잡아도 일본의 황실은 씨를 말라버리고 없애 버려야 됩니다. 나머지는 우리 재산이고.

가정에 하나님이 육체의 자녀를 주셨는데 육체의 자녀가 없으면 신앙에 사람을 하나님이 맡기셨는데, 내가 애를 쓰면 애쓰는 만큼은 믿는 것 같고 내가 손 놔버리면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으면 이게 뱃속의 아이입니다. 엄마 죽으면 같이 죽습니다. 이 아이를 자기가 숨을 쉬고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을 만들어야 되는데, 저는 신풍교인들을 제가 없어도 목회자가 없어도, 신풍교인들은 전부가 한 명 한 명이 주님과 하나 되어 말씀으로 걸어갑니다. 함께 가면 더 좋고 없으면 나는 독립으로 끝까지 갑니다. 이리 되었으면 아이를 뱃속에 가진 것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 앞에 한 사람 사람을 만든 사람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계시니까 애양원에 1500명이 전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대한민국 최고의 교인들이 되고, 손 목사님 하나 가고 나니까 천5백 명이 전부 다 wcc 쪽으로 가가지고, 뭐 불교를 믿으나 뭐 기독교를 믿으나 돈 주는 데면 좋지, 그날부터 그리 돼버렸습니다. 저 동네가. 아이 밴 자들은 화가 있다. 부모와 지도자에게는, 자기의 사람을 신앙의 사람으로 자기 없어도 독자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는 사람을 만들어라 이 말씀이고. 신앙으로 배우고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목사 속에 하나님의 인도를 발견하여 겉으로는 목사 순종인데 속으로는 하나님 순종을 해라. 근데 하나님은 동쪽으로 가는데 목사가 가다가 서쪽으로 슬쩍 방향을 틀면, 아니 목사님 동쪽은 저쪽인데 왜 서쪽 가시느냐고 이래야 될 건데, 뭐 우리 목사님이 가면 선암사를 가든 조계종을 가든 뭐 어디를 가든 우리는 뒤따라갑니다. 그러면서 좋은 교인입니다.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고 앉았으면 이거는 통째로 죽은 겁니다.

부모님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니까 하나님 때문에 부모님께 목숨 걸고 순종하다가, 하나님은 동쪽 가는데 부모님은 서쪽으로 방향을 슬쩍 틀면, 밥 먹여주시고 지금까지 기르신 부모님이 동쪽 하나님 따라가야 있는데 왜 서쪽 가십니까? 이쪽입니다. 그동안 밥 먹여놨으니까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동쪽 가십시오. 이래야 이게 아이 가진 여인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 독립을 만든 여자가 되는 겁니다. 아이 밴 여인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두 번째 젖먹이는 여인들, 이거는 뱃속에서 나와서 숨도 따로 쉬고 움직이는 것도 따로 하니까 독립은 독립인데, 아직까지 엄마가 먹여주지 않으면 이거는 또 굶어 죽습니다. 아직까지 철이 없습니다. 젖먹이를 1년 안에 어른을 만들 수 있습니까 5년 안에 만들 수 있습니까 이건 세월 아니면 안 됩니다. 육체의 아이는 시간과 공간이 들어가야 됩니다. 신앙의 자녀는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딱 될 사람은 한 시간이 되고 안 될 사람은 50년 가도 안 됩니다. 50년 아니라 900년 넘겨 살았던 노아홍수 이전을 봐보십시오 거의 사람이 천 년을 살았는데 안 됩니다. 오래 산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을 딱 볼 때는 근본 자세가 어떤가. 그거 조심하고 그 책임을 알고, 이게 있으면 나머지는 전부 살아가면서 뒤에 맞출 수가 있습니다. 사상 중심 자세가 빼딱 해놓으면 돈 잘 벌어도 탈이고 인물 좋아도 탈이고, 이거는 훌륭해도 탈이고 이건 그냥 대책은 없는 겁니다. 사기꾼이 영어 잘 알면 영어까지 사기 칠 것이고, 사기꾼이 중국어까지 하면 중국 가서 사기 칠 것이고 도둑놈이 달리기 잘하면 잡을 수도 없을 거고, 도둑은 차라리 주저앉는 게 낫고 사기꾼은 벙어리 되는 게 낫습니다.

사람을 볼 때 겉 사람이 아니라 겉 사람 속에, 속에 들어있는 주인이 어떤고. 저건 남을 악용하고 탈탈 털어 먹고 마지막까지 그냥 쪽 빨아 먹고 빈껍데기 되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옆으로 건너갈 사람이겠다. 근데 바꾸면 바꿀 수 있다. 뭐 그러면 좋습니다. 사람은 잘 안 바꿔집니다. 바뀐다면 말씀, 창조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 바꿔버리면 이거는 피도 바뀌고 종자도 바뀌고 사람도 바뀝니다. 하나님이 손댄 인간의 인격은 절대로 안 바뀝니다. 그래서 부모 보고 윗대 보고 살아온 거 딱 보면 그건 틀림이 없는 겁니다. 더 볼 것도 없는 겁니다. 더 교묘해지기는 하지 연극은 하겠지. 자기를 돌아보며 죄송하고 상대방을 볼 때 어떻게 좀 잘해볼까. 자세가 그리되면 여기다 대고는 없는 돈도 기술 배워서 저금해서 뒤에 보충하면 되어 집니다. 예전의 인물은 타고난 인물이라고 그러지요. 요즘은 피부만 좋으면 나머지는 병원에 갖다 놓으면 다 만든답니다. 눈도 키우지 뭐 키도 키우지 뭐 코도 갔다가 만들지 뭐, 눈알도 파란색 빨간색 다 바꾸지 뭐 좀 있으면 아마 피부도 바꿔줄 걸요. 그때쯤 되면 애 낳을 것도 없다. 실험실에서 마구 빼내가지고 만들면 되니까. 그리고 이런 사람을 사람으로 봐야 되느냐. 아이 끔찍해라 그것도 사람이냐. 양을 잡아먹고 이리가 양을 뒤집어 쓰고 오면 엄마 양이냐. 엄마 잡아먹은 이리가 새끼까지 다 잡아먹을 이리냐. 엄마가 시장에 가면서 아이들한테 이리가 올지 모르니 문 잠가 놔라 부탁하고 나갔습니다. 이거 아무리 어려도 이건 압니다. 머리 나쁜 게 새인데 머리 나쁜 게 새인데 이게 부화가 되면 그날부터 엄마 소리를 알아듣습니다. 엄마 소리가 나오면 막 발광을 하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다가 엄마 소리 안 나오면 바로 그냥 딱 숨어서 쥐 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찾으려고 움직이며 꿈틀거리면서 도망을 가버립니다. 알이 부화가 됐는데 다 죽었나 싶었다가 한참 쳐다보는데, 엄마가 나타나면 그때서는 막 또 생난리가 납니다. 머리 나쁜 새. 새가 하루 만에 이렇게 생존의 지혜와 생존에 적응을 합니다. 인간은 20년 먹여놔야 죽을 짓만 골라합니다. 망할 길 죽을 길 후회할 길 땅을 칠 길만 골라서, 골라서 시내에 천길만길이 많은데 그중에 복된 길 한 길은 기어코 갖다 놔도 벗어나고, 망할 길 10개 100개 어떻게 찾아서 다 돌아다니는지.

아이를 가진 사람 젖 먹이는 사람. 아이를 가졌으면 얼른 독립에 숨 쉬고 독자적으로 숨 쉬고 성경에 숨 쉰다는 말은 기도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도는 호흡이다. 엄마가 기도를 해줘야 기도가 되지, 지는 기도할 줄 모르면 뱃속의 아이입니다. 뱃속의 아이는 숨 쉴 것 없이 엄마가 숨 쉬면 산소 공급이 저절로 됩니다. 이게 배 밖에 딱 나오면 숨은 지가 쉬어야 됩니다. 숨은 자기가 쉬야 되고 하나님은 알겠는데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깨닫는 것은 신앙의 양식인데, 이건 엄마가 대신 설명해야 알아듣지. 혼자는 설교를 들어도 성경을 읽어도 뭔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이게 젖먹이입니다. 이런데 기회가 다 지나가 버리면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는 전부 다 실패입니다. 믿는 순간 하나님을 직접 뵙고 기도해야 되고 그리고 한두 마디 딱 배워보고 들어보면 알겠습니다. 믿는 것은 그렇겠습니다. 벌써 젖 뗀 아이입니다. 새도 하루 만에 생존을 위해서 엄마 소리와 잡아먹으러 오는 뱀의 소리 다른 짐승의 소리를 다 구별하는데, 새가 부화되고 하루 만에 다 하는 걸 사람은 20년 돼 가지고도, 원수 목구멍에 목을 들이밀고 다 돌아다니고 앉았습니다. 이태원 갔다 죽은 거 말하면 큰일 난다니까 이태원은 빼버리고, 10만 명이 모여서 몇 백 명 죽는데 기 들어갑니다. 나이가 보니까 한 살이 아니던데 세 살도 아니던데 멀쩡하던데. 그 추운 날 그 추운 날 또 벗기는 왜 또 다 벗고 앉았지요? 해수욕장입니까? 119가 뜬다고 경찰이 뜬다고 엎어져서 죽지 않는다고 살려 놔봐야 그 사람들은 잘 살아도 죽은 목숨이고 죽어도 죽은 목숨입니다.

역사 이후에 없는 환란이 밀고 들어온다. 알고 보면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기회는 그렇게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복되게 잡으면 홍수에 전 인류가 죽는 바람에 노아는 배 한 척 가지고 천하가 자기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싸울 것도 말고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혼자 주님 따라 나섰는데 가고 보니 믿음의 조상이 돼 버렸습니다. 온 인류를 믿는 사람은 전부 아브라함 호적 밑에 다 들어갑니다. 경쟁이 3:1 10:1이었습니까 아브라함 혼자 지원해서 혼자 합격인데. 근데 그 길을 함께 가놓고도 롯은 가다가 중간에 빠져버렸습니다. 누가 말리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복된 길 가라고 조카 롯에게 저쪽이 복 된길 네가 먼저 가라고 밀어주는데도 소돔 쪽으로 갔습니다. 대학 가라고 옛날 논 팔아 소 팔아 등록금 이만큼 줬는데, 그 돈 들고 뒷골목에 못된 짓 하러가서 온갖 친구 만나면 죽는 날까지 고생해야지. 그렇게까지 원해서 망할 길을 갔는데도 살려주는 법이 있다면 그건 공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평등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자유세계도 아닙니다. 그 사람을 기계로 삼아놓은 겁니다. 인권유기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둘째 아들이 나간다고 할 때 나가게 허락하는 것이 인권입니다. 못 나가게 틀어쥐면 그건 아들을 노예로 만드는 겁니다. 부모가 설명을 잘해서 알아듣게 하고 그래서 다 되면 제일 좋고, 바로 인도했는데 안 되면 그 다음 하나님이 데려다가 돼지마구에 집어넣어서, 돼지 신세지게 만들어서 네 발로 기어 들어오게 만듭니다.

쉬운 길 복된 길 놔두고 뭐하려고 그렇게까지 합니까. 그런 걸 강아지 버릇이라 그럽니다. 강아지 버릇 다섯 글자를 두 글자 떼버리고 세 글자로 줄이면 개 버릇이라 그럽니다. 개 버릇 남 주나? 흙바닥에 강아지를 기를 때 사람이 먹다가 못 먹게 된 찌꺼기를 물에 섞어서 그릇에 담아주면 개는 이걸 먹어도 탈이 안 납니다. 사람이 먹다 버린 걸 먹고 개가 등치를 기르면, 도둑도 잡고 그다음 여름에 한 마리 잡아먹으면 온 식구들이 한 여름을 나고 그러느라고 원래 개를 길렀습니다. 근데 어떨 때는 음식이 남지 않으면 아깝지만은 개를 위해서 좋은 음식도 줍니다. 근데 줄 때 반드시 물에 말아줘야 이거 먹습니다. 개는. 개 버릇은 아까운 음식을 물에 말아 이렇게 주면 이걸 흙바닥에 뒤집어버립니다. 그래놓고 그걸 핥아 먹느라고 그냥 핥아 먹느라고 무슨 고생하시는지 아십니까? 이건 욕이 아니고 나쁜 말이 아닌데 쎄가 빠지도록 고생합니다. 혀를 쎄라 그럽니다. 개는 혓바닥으로 핥아 먹거든요. 그걸 다 핥아 먹으면 쎄바닥이 빠지지. 국어사전에 이거는 좋은 말이라고 그러던데 근데 사람이 강아지처럼 혓바닥으로 맨 땅을 핥는다고 생 발광을 하면, 참 주는 밥 먹고 주는 돈 가지고 앉아 공부하고 좋은 길 많은데, 머리로 그냥 벽에 박치기를 해서 머리를 깨 재끼면서 그렇게까지 망하려고 노력하면 곤란한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람은 독자의 신앙을 만들어라. 아이를 가졌으면 아이가 얼른 스스로 숨을 쉬는 아이가 되도록 빨리 신앙을 넣어주라. 젖먹이로 널 붙들고 앉아서 엄마가 애를 쓰고 그냥 부모가 애간장 녹여가며 겨우겨우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끌고 가지 말고, 자기가 자기의 갈 길을 딱딱 판단해서 척척 걸어가면 부모가 낳고 길렀으나, 부모를 앞서 부모를 오히려 도와주고 모든 사람이 볼 때 다윗은 어리나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부모와 교회는 천천이나 신풍교회 저 주일학생은 천천이 아니라 만만의 신앙과 복을 하나님이 주시고 저 사람은 그렇게 걸어가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씩 보여야 될 건데. 조례교회나 동천교회 같은 데는 그런 사람들이 가끔 한 번씩 이렇게 보입니다. 신풍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공회 본부가 되다보니까 뭐 어쨌든 사람은 좀 있는데, 아니 뭐 사람으로 치면 순복음교회는 70만 명이라는데 뭐 이거 뭐 2백 명 어디 갖다 붙이겠습니까. 사람 같은 사람이 하나 있어야 자기도 복이고 우리도 복이겠는데. 모두들 애간장이 녹도록 애간장이 녹으면 애간장은 저 뱃속에 있어서 잘 안 보입니다. 애간장이 녹으면 얼굴이 새카맣게 타버립니다. 얼굴 보고 아는 거지. 내가 숨을 쉬어줘야 숨을 쉬는 뱃속의 아이 이제 이 아이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 아니면 안 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게 배 밖에 나와서 아이가 된 겁니다. 근데 이것이 만약에 깨달음을 하나 닦아준다면 이제 젖 뗀 소년이 되는 겁니다. 사무엘은 젖 떼자 막 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거는 특별히 우수해서 영재 교육으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이건 신앙의 세계에서 기본적으로 그리 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1989년 3월 18일 여기 처음 오니까 제일 급하게 심방을 가야 된다는 집이 있어서 주일오후 예배 마치고 갔습니다. 자기가 손 목사님 아들들하고 친구가 되어 순천으로 학교를 같이 다녔답니다. 자기는 차 씨 문중에 5대 종손이라 제사 때문에 교회 절대 못 간다고 그럽니다. 근데 당숙도 여동생도 전부 사방천지 하나는 성광교회 하나는 성암교회 하나는 신풍교회 하나는 애양원 교회. 4개 교회 5개 교회가 서로 데려가려고 전도전쟁이 벌어지니까 그래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분은 나올 때부터 벌써 독립신앙입니다. 그때 89년에 신풍교회 집사님들 신풍교회 원로들보다 제가 볼 때 신앙이 훨씬 앞에 있습니다. 그분 전도한 분 그 전부터 믿었던 분들은 교회는 10년 20년 다녀봐야 맨날 젖먹이인데 투덜투덜. 덕산 집사들이 이러냐. 저러냐. 그러고 또 덕산 집사님들은 두 패가 돼가지고 이 집에 쌀 한말을 갖다 주면 쌀 한 말 갖다 줬다고 또 저쪽 팀이 싸움이 나서 난리고, 또 이쪽이 전도회장 돼서 쌀 한 말을 갖다 주면 저쪽이 욕을 해서 맨날 치고받고 싸우고 그 모양입니다. 시골에 교회가 5개 6개가 되면 누구든지 좀 눈치 있는 사람은, 아이 종교계가 그렇게 서로 치고받고 싸우니 저런 데 안 갈란다. 이게 보통 뿐입니다. 근데 그분은 아이 시골에 교회가 네 개 다섯 개나 되니까 나 같이 이런 사람도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신풍시골 한 동네 교회가 많아서 저는 환영입니다. 3시 반 되면 애양원에서 종소리 벌써 들리지. 4시 되면 여기 성암교회 종소리 들려오지 교회 안 갈 수도 없고 안 나가도 종소리 듣고 기도하고, 옛날 어릴 때 교회 댕기던 생각도 나고 손양원 목사님 얼굴도 생각이 나고, 교회 오기 전에 벌써 교인이 돼 버렸습니다.

될 사람은 처음부터 됩니다. 안 될 사람은 빼딱하게. 내가 교회 댕긴지 십년인데 집사도 안 줘? 내가 20년인데 장로도 안 줘? 주는 거야 쉽지만은 주면 십일조가 나와야 되는데 또 십일조나 합니까? 십일조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치고 또 십일조 하는 사람 못 봤습니다. 안 해놓고는 또 큰 소리는 더 칩니다. 신풍교회는 조사도 안하니까. 될 사람은 빨리 되고 안 될 사람은 갈수록 악해집니다. 나를 악인을 만들면 남이 선한 사람으로 고쳐주지를 못합니다. 나 맡은 식구를 얼른 독립의 신앙 복된 신앙으로 만들어라. 그보다는 내가 내 속에 있는 잘못된 사상을 얼른 복되게 바꾸거라. 내 속에 욕심도 사고방식도 성격도 내 속에 지난날에 대한 지식도 지혜도 판단도, 내가 내 속에 엉뚱한 소리 하는 걸 얼른 나와 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라. 요리 되면 환란 오든 말든 복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환란의 날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미리 기도해라. 나의 신앙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 준비의 기회를 내가 쉽게 생각하고 놓치지 않도록 하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회도 없을 것이라 기회는 단번입니다. 모든 면으로 많은 면으로 중요하게 검토하고 근본적으로 신앙 살아가는 생각 자체 안 바꾸면, 남이 아니라 자기부터 어렵게 되어 집니다.

정규직을 5천만 명이 데모해서 정규직을 없애버렸습니다. 정규직 머릿속에 딱 지워버리면 편안하게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신앙생활하면서 주님 앞에 갈 건데, 5천만 명이 자기 손으로 정규직을 다 없애놓고, 없는 정규직 들어간다고 뭐 도서관에 10년 20년 그러고 앉았으니, 코미디하고 앉았지. 우리나라 정규직을 언제 없앴는지 기억이나 하십니까? 1990년대 초입니다. 그때 조금 잘했으면 정규직이 넘쳐났을 건데 5천만 명이 작정하고 이 나라 정규직의 뿌리를 다 뽑아버렸습니다. 눈치 있는 사람은 어 앞으로는 정규직 끝났고 먹고 살 만할 테니까. 직장 있으면 1년 직장 다니고 2년 잘리면 2년 성경 보고 2년 기다리다 보면 나 할 일 또 나옵니다. 그러면 2~3년 또 직장 갔다가 또 일 없으면 또 1~2년 2~3년 3~4년 마음껏 또 신앙생활하고 이런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정규직이 있고 꼬박꼬박 댕겨야 되는데 요리 되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없어서 그런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정규직 없을 때 우리 교회도 누구누구 머리에 띠 띠고 나가가지고 목숨 걸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데모가 나 평생직장 없어도 되니까 저 사람 자르지 말라고 그렇게 데모하고 앉았습니다. 미쳐도 보통 미치진 않겠지 이번엔 내가 들어갈 순서인데 전부 안 들어가겠답니다. 그래가지고 노벨 평화상이라도 받았나. 평생에 실직잔데. 어디에서 무슨 짓에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니 그냥 개나대나 짖어놓고 보는 거지. 이런 현상이 나오면 개떼들이라 그럽니다. 짖어놓고 보는 겁니다. 한 마리 짖으니까 온 동네 개 다 짓고 떼 창을 부르고 앉았습니다. 지금 뭐 하느냐고 물으면 뭐하는지도 모릅니다. 전부가 다 이러니 조금 생각하면 나 살길 나 걸어 갈 길은 얼마나 많은지 복이 넘치고 터져서 웃고 평생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런 길을 뒤집어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가지가 같이 겹쳐 있습니다. 환란과 구원은 늘 겹쳐주십니다. 지혜 있게 복된 사람은 환란이 깊어갈수록 복이 많아서 웃고 있고 안 그런 사람은 전부 휘청거리고. 이 밤도 알아들으면 좋겠고 그냥 심정은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학생의 진학에 이렇게 좋은 때도 없었고 학생의 진학에 이렇게 재앙도 없고, 학교 마친 사람의 진로가 이렇게 좋은 때도 없었고 학교 마친 사람의 진로가 이렇게 막힌 적도 없었고, 이렇게 직장의 환경이 좋은 때가 역사적으로 없었고 이렇게 직장에 참혹한 때가 역사적으로 없고, 말씀이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기록이 되었나. 감탄하며 감사하고 살 수 있는 때입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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