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12.7 창25:31 에서와 야곱,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하나님 약속 역사, 가치 근원 평가의 결과, 두 선택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수새22.12.7 창25:31 에서와 야곱,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하나님 약속 역사, 가치 근원 평가의 결과, 두 선택

관리1 0 62 2022.12.07 05:51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21207수새

제목 : 에서와 야곱,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하나님 약속 역사, 가치 근원 평가의 결과, 두 선택

찬송 : 118장(예수 나를 오라 하네)

본문 : 창세기 25장 31절 -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며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가치에 따라 행동은 가는 겁니다. 금반지가 10만원이면 10만 원 이하로 판다면 사게 되는 겁니다. 천 원짜리 구리 반지를 10만 원 부르면 당연히 사질 않습니다. 큰 반지가 있는 사람이 구리반지와 비슷한 줄 알고 천 원에 팔려다가 두 배를 올려 2천 원 달라고 그러면 금반지 구리반지를 모르는 사람은 두 배라고 안 살 거고 천원을 이천 원 부르는데 이게 금반지인 줄 아는 사람은 이천 원이던 오천 원이던 얼른 사 버립니다. 에서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뭔가, 이게 장자의 명분과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고 말고 이게 문제가 아니라 에서는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야곱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가, 야곱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리 읽어봐도 하나님이 복을 줘야 복이 된다, 뭐 오래 사는 것도 복을 받아 오래 사는 것은 좋지만은 하나님의 복이 아닌 장수는 장수도 저주다.

이전에 이런 말을 교회에서 함부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너무 오래 살아 걱정하는 시대니 예를 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오래 사는 거 하나님이 오래 살도록 복으로 주시는 것은 그거는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는 복으로 손양원 목사님 가신 게 사십 아홉입니다. 아무리 애통한 사십 아홉의 가장 가장이 무너지면 가정이 다 무너지는 건데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거는 하나님이 복으로 주시는 기회입니다. 복으로 주시면 사십 아홉에 막 태어난 어린 아이까지 다 곤욕을 참 이거 뭐 가장 하나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건데 그래도 하나님이 복이라 그러면 예, 복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받아내는 겁니다.

그게 어떻게 복인가? 그건 하나님께 맡겨놓고 복이라면 예, 할 때 순종이고 순종이 믿음입니다. 복. 무엇이 복인가, 하나님이 주는 것만 복이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자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이 함께 살던 모든 부모 가족 다 버리고 주님의 인도만을 따라 갈 때 어딘지 알지 못하고 갔다 했습니다. 가고 보니까 가나안이었습니다. 가나안 가자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자“ 순종했고 한 걸음 순종, 두 걸음 순종 그리고 가난에 들어갔고 여기가 가난이다, 그 가나안이 뭔 복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렇게 쭉 살펴봐 보면 사람 살기가 험한 데입니다. 첫째는 물이 없는 데입니다. 물 없으면 풀 없고 물과 풀 없으면 동물 없고 물과 풀과 동물이 없으면 사람은 못 사는 뎁니다. 물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물 있는 곳에는 먼저 터 잡은 사람들이 딱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면 물싸움 나는 것이고 힘 있는 쪽이 이기는 것이고 뭐 계산하다 보면 복잡하지만 하나님이 가자했고 예, 여기라 예, 그다음 이삭에게도 또 야곱에게도 이삭이 우물을 세 번이나 뺏기며 버틴 뎁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곳을 떠나지 않으려고 요셉을 통해 부를 때 당시 세계 최 부강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부르는데 그 물 없는 어려운 곳에 살며 야곱이 애굽에서 부르는 요셉의 그 소식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건 가기는 가야 되고 요셉을 통해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부르는 것은 알았지마는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주신 땅이 가나안이라 환경의 인도 요셉의 말을 통한 말씀의 인도는 들어도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야곱에게 똑 부러지게 감화가 오지 않아서 머뭇거릴 때 하나님이 밤에 야곱에게 나타나 안심하고 가라, 갔다가 내가 다시 데리고 오겠다, 하나님의 인도의 확정을 마지막에 보고 그리고 내려갔습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소돔과 가나안을 두고 롯은 물이 넉넉한 소돔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물이 많으면 풀이 많고 물과 풀이 많으니 목축하는 아브라함과 롯에게는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땅을 인간들이 내버려 둡니까? 억센 인간, 강한 인간 자리 잡고 그들이 많으니 그 속에서는 인간의 경쟁 인간의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고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이 소돔과 가나안을 두고 선택을 머무를 때 그 소돔을 하나님께서 큰 죄인들이 있는 곳이라 ‘큰 죄인’이라고 그렇게 딱 적어놨습니다. 살기는 좋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야 할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괘씸하게 생각하고 지금 불바다를 만들 결심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롯과 아브라함의 갈리는 그 장면이 아주 간단하게 기록이 되었으나 ‘큰 죄인들이 사는 곳’이라 이걸 꼭다리를 딱 붙여놨다는 것은 그 말씀으로 명상을 해보고 오늘 우리의 환경과 비교를 해보면 롯의 심령이 세월 속에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아브라함에게 롯 한 사람만 동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밖에 없는 동지 생사를 함께 하는 인간적으로는 조카였으나 신앙적으로는 하나밖에 없는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동지, 원래 갈대아우르라는 더 먼 곳에서 오다가 중간에 하란에서 주저앉은 데라,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그 자녀들을 데리고 하란에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출발을 했다가 하란에 주저앉았는데 갈대아우르를 떠나 하라까지는 왔으나 신앙 출발은 각오하고 전부 다 함께 갔습니다. 그 데라도 노아와 셈의 직통입니다. 직통입니다. 직통으로 딱 내려왔는데 그 먼 갈대아우르에서 출발하여 한 걸음 두 걸음 끝까지 가다가 여기까지.

신앙생활을 실제 하다 보면 출발의 신앙은 많습니다. 바르게 믿어보려는 사람 천지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어려움이 닥치고 닥치고 닥치는데도 끝까지 가는 사람 중간에 다 떨어집니다. 한참 가고 더 가고 마지막 인간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면 주의 도우심 또 주님만을 따르는 믿음 하나만을 가지지 아니하고는 사람의 힘이 다하면 그 자리에 주저 않습니다.
그곳이 하란이었습니다. 하란은 원래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노아와 셈의 직통 신앙의 계통으로 쭉 내려오던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주의 인도, 구원의 목표를 향하여 걸어가다가 사람의 힘으로는 끝까지 걸어갔고 인간의 힘이 끝나고 주저앉은 자리 여기가 하란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인도를 따라 주님만 바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아브라함 여기에 따라 붙은 조카 롯은 아브라함에게 신앙의 동지였고 그래서 가나안에 갔고 그리고 그때 애굽으로 함께 내려갔다가 큰일을 당했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돌아오면서 벌써 하나님께서 복을 주며 신앙의 초기라 그 애굽에 한 번 내려간 거 탓하지 않으시고 한 지역에 함께 살 수 없도록 많이 부어 주셨습니다.
“많이 부어주셨더라” 그 과정에서 롯이 아브라함과 내적으로 신앙의 성향 신앙의 지향점이 조금씩 조금씩 틈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은 너무 많지 식구들도 있지 한 곳에 있기에는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의 저 말단 밑에서 부딪히지 밑에서 부딪히니 이 부딪히는 소식이 이쪽 주인 저쪽 주인에게 올라옵니다. 주인들끼리는 신앙이 있는데 이건 이해가 되고 양보가 되고 다 되는데 이들에게 식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그 가족 밑에 종업원들이 있고 그 종업원 중에 또 말단이 있고 소떼 양떼가 있다 보니까 난 괜찮은데 저 먼 곳에 생활의 언저리에서 조금 이렇게 접촉이 있을 때 접촉이 생기자 아브라함은 재산이 아니라 접촉이 아니라 하나님이 뭘 원하시나 이게 생생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에 롯을 불러 좌우가 있다 먼저 택하라, 이게 신앙의 여유입니다. 인간적인 배려가 아닙니다.

사람이 그럴 때에 먼저 택하라 그러면 강한 자의 방심이 됩니다. 방심이 있으면 큰일 납니다. 어떤 강대국 어떤 제국 어떤 강한 사람이라도 방심하면 그 순간에 다 내려 않습니다. 힘 있을 때 먹어 치워야지 아브라함은 겉보기에는 삼촌이고 부자기 때문에 조카에게 넉넉하게 양보를 한 것 같지만은 주님 따라 온 세월 주님 아니면 안 된다는 애굽에 갔던 그 경험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롯과의 문제가 딱 시작할 때 불러다가 좌우가 있다 먼저 택하라, 가나안이 있고 소돔이 있다 먼저 택하라, 신앙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왔던 아브라함 배고픔으로 한 번 애굽에 갔다가 실패한 그 경험 때문에 두 번 다시 먹고 사는 땅 위에 인간의 문제 세상의 문제 때문에 또 하나님과 끊어지고 하나님의 복을 떠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인간 복 대 내놓아도.

이것이 첫 은혜 받고 신앙의 결심하고 출발할 때는 대개가 모두들 새파랗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1년 5년 10년 세월 속에 계속 먹고 사는 문제로 흔들어버리면 잘 벌면 잘 벌어서 번창을 하기 위해서 잊어버리고 못 살면 배가 고파 또 잊어버리고 이게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애굽에 한 번 갔다가 아, 하나님 없는 인간의 생계 대책 진로 선택은 죽어 죽어도 죽고 살아도 죽는구나, 절대 안 되겠구나, 세계 최강국의 바로가 챙겨주는 그것도 구원의 계통의 요절이구나, 한 번 경험으로 다시는 실패하지 말자, 아무리 부강해도 이것을 가지고 있었고 롯은 갔다가 왔지마는 양떼가 많아지고 재산이 넘치고 종업원들이 마구 넘쳐나니까 이걸 관리하느라고 이걸 계산하느라고 이걸 목축하느라고 어느 순간 종업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사장이 종업원 말을 귀를 기울여야 사업이 되지 또 처자식 말에 귀를 기울였고 어린 아이들과 여자 말을 들어야 가정이 편하니까 들어야 당연하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롯의 결정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업가로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고민과 결정, 아브라함을 들여다보니, 아브라함의 아내도 보통 여자는 아닙니다.
자세히 읽어봐 보면. 뒤에 좋아지고 보니까 모두들 사라, 사라 요즘도 이름을 여자 이름 사라 붙이느라고 정신도 없는데 원래 사라는 창세기 13장부터 또박또박 읽어보면 아주 강한 여자입니다. 독한 여자입니다. 롯의 처만 모두들 욕을 하는데 하갈과 이스마엘 쫓아낼 때 보면 그 사라도 독한 사람입니다. 그 사라가 신앙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양쪽 다 종업원의 분쟁이 있고 가족의 분쟁이 있어도 아브라함 속에는 두 번 다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복 아니고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강하게 심겨져 마음껏 부어주시고 두 가정이 함께 있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니까 롯속의 깊은 속에는 겉보기야 잘 믿지, 속에도 잘 믿지, 그런데 그 속에 그 속에 깊이 들어가니까 하나님은 흐리고 사업과 가족과 인간적인 것이 이미 짙어져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재산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더욱 그 모든 것에 피동 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 아니고는 아니 된다 이것만 계속 더 강해져 있고 양쪽이 부딪히니 롯은 롯이 좋아하는 가치를 따라 소돔으로 갔고 아브라함은 이제 다 털어버리고 목숨 걸고 애굽에 갔던 한 번 실패를 이번에는 빨간 자산 물 없는 가나안 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인간과 하나님, 인간이 볼 때 좋은 조건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 둘 중에 하나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을 쥐고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순간이 왔는데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방향을 틀면 자해가 될 수가 있습니다. 고행 자해. 고행과 자해는 불교식이고 인도식이고 거 기독교 아닙니다. 주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니 피할 수 없는 어려움 그때만 기쁨으로 가는 겁니다.

드디어 그런 기회가 왔고 한쪽은 물 많고 풀 좋은 소돔, 한쪽은 물 없어 그냥 빨간 자산, 풀 없는 곳입니다. 주의 인도라 가나안으로 갔고 이사야 49장에 가나안에 가는 아브라함을 해석을 해 놓고 있습니다. 순종하고 움직이니까 벌써 비가 오고 풀이 나고 싹이 돋아 나오는 걸 먹고 이미 다 죽을 줄 알았던 양떼가 넘쳐 300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리는 대목장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경험이 이삭에게 가며 이삭도 한번 똑같이 아브라함처럼 실패를 합니다. 그 실패가 들어 이삭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보고 인도만 보는 이삭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경험 이삭의 경험이 야곱에게 어릴 때부터 들어갔으므로 야곱은 인간적으로 형에게 밀렸지마는 형에게 치며 밀리며 살림이나 사는 못난 사람으로 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어느 쪽인가 하나님의 주시는 복이 뭔가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복 이것만 딱 집중했지 이 외에는 보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들어왔고 배가 고프니 그다음, 먹을 걸 말했고 음식이나 준비하는 야곱이야 인간적으로는 못 났지만은 가진 것을 원할 때 값을 요구한 겁니다. 뭘 줄 거냐? 에서는 들사람이라 마구 돌아다니다 보면 갑자기 급하게 먹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겁니다. “들사람이라 익숙한 사냥꾼이라” 천하가 내 것입니다. 어디 가도 다 잡아버립니다마는 인간이 살다 보면 급할 때는 있는 것이고 야곱에게는 매 순간순간 그 먹고 사는 양식, 구약이니까 육체의 양식 신약의 우리는 신령한 양식, 직장은 그렇고 사는 데는 그렇고 사는 형편은 참 답답한데 인간적으로 볼 때 야곱이 사는 직장 상태 사는 곳 모든 것은 갑갑한데 새벽마다 신앙의 양식 하루의 신앙의 양식 매일매일 주의 인도를 따라가는 신앙생활의 만족은 신앙생활의 힘은 그대로 쭉 유지를 하고 있을 때 에서와 부딪혔습니다.

에서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한 그릇 한 번의 필요를 요구했고 야곱은 뭘 줄래? 서로 필요한 걸 받고 서로 좋아하는 걸 주고받으면 이 사람도 자유 이 사람도 자유 서로 똑같은 거래입니다. 팥죽을 주라, 난 부엌살림이나 사는 사람인데 부엌에 있는 걸 달라? 네가 가진 장자명분을 줘라, 장자명분 그거 뭐 어느 짜게 쓰는데? 못난 것은 부모 할아버지 내려오는 그 어떤 걸 기대하지만 에서는 날 때부터 털 사람입니다. 에서는 억셉니다. 야곱만 이긴 것이 아니라 “들 사람이라 익숙한 사냥꾼이라” 천지가 내 땅입니다. 뭘 해도 다 합니다. 그깟 이름 너 하거라,  다른 집은 몰라도 이 집안에 첫째라는 신앙은 신앙의 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이 약속으로 지금 흘러가는데 당장 먹는 게 급하지 하나님의 약속? 언약? 앞에 준 언약이 구약이고 다시 더해준 언약이 신약입니다.
약자가 그런 약자입니다. 아, 성경 읽는다고 뭐 공무원 시험 합격을 합니까? 사업의 비법이 있습니까? 뭐 투자에 지침이 있습니까? 그 성경 백날 읽어봐야 뭐 너나 하거라, 이게 장자의 명분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고 하나님이 복을 주니, 아, 너나 하거라, 그 얼마짜리 된다고. 돈 벌 시간에 교회 가면 돈이나 못 벌지. 이게 에서입니다.

야곱은 직장 못 잡아도 잡은 직장 쫓겨나도 사는 데가 참 어려워도 뭐 그랬든지 말았든지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며 하나님이 주는 복이 방향이 어딘가 이것만이 전부였습니다. 이것만이 전부인데 이 신앙의 계통의 구약이니까 본인은 육체로 내려오는 이 신앙의 구원의 계통에 유리한 그릇을 에서가 가지고 있었는데 에서는 이게 불편합니다. 이거 아니라도 되는데 뭔 구약 신약 약속 언약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 이삭에게 했던 약속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내려가는 약속이 지금 이어지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한 마디였지마는 오늘 우리에게는 신구약 66권 약속이 아브라함 이삭하고 비교해보면 한 수천 배는 넘을 겁니다. 아 그거 읽다 보면 공부도 못하고 돈도 못 벌겠는데? 아 돈 벌고 퇴근하고 부부들이 오붓하게 쳐다보면 얼마나 재미있을 건데 남자도 이거 읽고 여자도 이거 읽으면 뭔 재미로 세상 살 거야? 천하에 돈 벌 데가 많고 풀어온 돈 주말이 되고 퇴근 후가 되면 가족끼리 오붓하게 이게 세상 살아가는 재미인데 그 성경 읽어봐야 외워봐야 공부해 봐야 더 파봐야 그 안에 약속에 의해 실체가 없지 않냐? 하나님의 약속은 실체가 없지 않냐? 약속은 약속 일 뿐이지.

오늘 우리에게는 수천 배 되는 약속을 한권의 책으로 이렇게 손에 들고 다니도록 이렇게 몰아줬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야곱에게 준 약속보다는 우리가 받고 있는 이 약속은 한량도 없습니다. 한 마디만 들어도 잔소리고 두 마디만 들어도 귀찮은데 자자손손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까지 내려오면 똑같은 소리 더 귀찮아서 더 튀고 싶은데 오늘 우리에게는 수천 년 내려오는 이 수많은 약속을 갖다가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빼곡하게 적어 책으로 주니 그 놈의 것 한 번 읽니 입시 시험 마무리 한 번 더 읽어 가지고 합격이나 하지, 이게 오늘의 교회 다니는 청년들 학생들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 부모는 습관이 되어 교회를 나오고 새벽 기도까지 나오지만 우리 아이는 새벽기도 나오는 것보다는 지금도 밤새며 공부하고 앉았으면 더 뿌듯하고 그럴걸요? 아마? 아, 건강 상한다 자 가면서 공부하거라. 이렇지.

미국에서 함께 공부할 때 같이 공부하는 학생 중에 하나가 두 살 밑엔데 서부교회 제일 부자 장로님 아들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뒤에 철이 들어 회개하고 이제 함께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학교 다닐 때 아버지하고 일화를 이야기를 해요. 중학교 고등학교 한참 열심히 공부할 때 부모님이야 서부교회 제일 중심 부부니까 새벽기도 당연히 나가는데 둘이 새벽기도 가는데 이 큰 아들 잠 깨면 새벽 기도 따라올까 봐 이 새벽기도 한번 따라 나오면 엄청 공부를 잘하고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그 절정에 새벽 한 번 흔들어 줘 놓으면 그날 공부 흔들어지고 이래 놓으면 치열한 경쟁에 문제가 될까 봐 부모가 새벽 기도 하면서 그냥 밤도둑 가듯이 사푼사푼 몰래 나간답니다. 그러다가 이제 새벽 기도 가려고 이렇게 귀가 밝아져 있다가 깨면 아이고 자거라, 그러고 그냥 쏙 빠져나간다고 부모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면 그게 부모의 사랑이지 그런데 새벽마다 백 목사님께서 뭐시기 새벽기도 안 나왔네? 아, 장로가 아이들을 떼놓고 그냥 새벽기도 와? 이렇게 이제 챙겨서 싸니까 양심에 가책이 된단 말이죠. 집이 부자고 2층입니다. 부모님이 1층에서 새벽기도 나가면서 2층에 있는 아이들 방 저 계단에다 대고 들릴까 봐 뭐식아, 불렀으니까 둘이 쏙 빠져나가더라고. 그게 그렇게 기억이 난다고. 그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이 치열한 세상에 아버지가 부자니까 돈은 주겠는데 그 돈이 잘 경영되고 앞으로 발달하려면 이 아이가 공부를 엄청 잘해야 되니까 마구 밀어주는데 새벽에 깨서 같이 따라 나온다 할까봐 웃으며 그런 이야기까지 했으니까 둘은 참 가까운 사이죠. 부모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지금은 또 천길만길 서로가 멉니다. 오늘 한국의 제일 좌파 언론에서 제일 위대한 미국에 성공한 목회자라고 대문짝만큼 소개하는 분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사랑, 그 장로님으로서는 자녀의 사랑이 거기까지였습니다. 이 새벽에 설교도 이리 들든 저리 이리 가든 저리 가든 약속입니다. 여기에 현금 주는 거 아닙니다. 이게 지금 보약 주는 거 아닙니다. 그냥 약속입니다.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그 약속 그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냥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아브라함 이삭 에서로 내려오게 순서가 되었고 에서의 문 앞에 와가지고 아브라함 이삭에게 약속한 이 약속, 바다 모리알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온 천하와 영원무궁토록 모든 복의 복을 준다, 약속은 있는데 지금은 아브라함 하나입니다. 지금은 이삭 하나입니다. 이삭이 나아놓은 게 에서와 야곱인데 순서가 에서입니다. 그래서 장자 에서에게 아브라함의 약속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죽을 때까지 그다음 아브라함의 약속이 이삭에게 내려왔습니다. 이삭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의 약속어음입니다. 하나의 각서입니다.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온 걸 에서의 문 앞에 가서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온 이 약속의 문건이 있다 받아 가지거라 ,첫째니 맡기니까 받기는 받아서 주머니에 넣어놓고 이게 돈도 안 되고 사냥하는 데 필요도 없고 코나 풀면 뭐 종이 한 쪼가리 단데 세상 살아가는 데는 이런 약속어음 이거보다는 달리긴데 창던지긴데 화살 쏘기인데 칼부림인데 온 들판에 어디를 가도 내 마음대로 다 잡아들이는데 천하가 내 건데 뭔놈의 이까진 약속 한 줄 가지고 주기는 주니 아브라함이 받아가졌고 이삭이 이어받았고 에서까지 오니까 이걸 쥐기는 지고 이게 뭔지 모르니까 뭐 이런 걸 갖다가 맡기고 돈도 아닌데 세상 살아가는 비법도 아닌데 이거 뭐 어느 짝에 쓰라고, 그래서 받아는 놓고 이게 뭔지 모르고 이게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급한데 야곱이 그거 주면 먹게 하겠다니까 얼른 내줍니다. 아, 너나 해라 연경 공부 너나 하거라, 양성원 아 너 나 가거라, 집회? 아니 멀쩡한 오월의 집회? 휴가철도 아닌데, 5월에 한 주간 빠지면 공부에 빠지고 공부에 한 주간 빠져버리면 중치들은 몰라도 마구 치열하게 나가는 데 한 주간 빼버리면 너나 가거라, 너나. 난 이번 주간에 입시를 앞두고 취업을 앞두고 어떻게 30년 20년 기다리는 직장인데 5월에 휴가 빼다 눈치 잘못 봐 놓으면 잘릴 테니까 너 나 가거라, 너 잘리고 나면 나는 출세하는 게 더 낫겠다, 이게 에서였습니다.

구약이니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에서의 순서대로 왔고 먼저 에서에게 갔는데 야곱은 오매불망 형 주머니 속에 저 종이 쪼가리, 저 약속, 저 언약 오늘 우리에게는 그게 성경입니다. 그게 이 말씀을 읽다가 느껴지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입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 들여다보고 앉았다가는 잽싸게 챙기는 거 못 챙기는데? 아, 경쟁 사업의 하나를 잡으려면 이 놈 쳐내고 저 놈 밟고 저 녀석 털어내고 앞에 가는 놈 뒤꿈치 쳐서 넘어뜨리고 밟고 앞으로 가는 것이 사업이고 공부고 세상 살아가는 투쟁이 다 그건데 성경 읽다가 추월당하고 양심 쓰다가 온 기회 놓치고 그럴 건데  돈 벌고 공부하고 세상 점령하는데 불편한 거 너나 하거라, 우린 그냥 하나님 앞에 매 맞지 않을 정도로 대충대충 믿고 세상 살아가는 비법과 비결이나 가질란다, 주일은 신앙은 하늘에서 난리 날까 봐 보험 들듯이 넣어놓고 그래서 성의 표시하고 모든 중심은 이 땅 위에 두고 갈 세상을 향하여 돌격 앞으로, 이건 오늘 먹는 것이고 오늘 가지는 것이고 내일 오는 거 영원히 오는 거 그러나 오늘 땅 위의 하룻밤 나그네에서는 상관없는 그 약속은 너나 하거라, 세월이 많이 지나가다 보니까 내일 가야 될 천국의 약속을 위해 오늘을 다 쏟아 붙이는 교회는 거의 없어졌을 것이고 하룻밤 나그네 하룻밤이니 오늘 가질 걸 다 팔아서 에서 다 주고라도 내일과 내일에 연결돼 있는 영생만 가지면 난 전부다, 이것만 집중하는 사람하고 하나는 이거 집중하고 하나는 저거 집중하고 에서는 오늘의 먹는 거 집중하고 하나는 나주고 나 거는 너 가고 서로 제자리로 찾아가 버렸습니다.
 
마지막에 알고 보면 신앙의 길이든 세상 것이든 자기 좋아하는 대로 가게 돼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 볼 것 없고 환경 볼 것 없이 내 속에 내일이 있냐, 그러면 오늘을 바치는 거고 포기하는 거고, 내속에 오늘 거 이 땅 위에 거 하룻밤 나그네가 전부면 이걸 위해서 영생의 약속의 모든 것은 대충대충 하다가 던져주는 거고.

양성원이 1박 2일인데 이번 양성원은 한 2주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일반 새벽예배지만 마치 집회처럼 양성원처럼 그렇게 되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난 내 속에 무엇이 들었나? 무엇이 들기는 똑같지. 무엇이 가장 중요하게 무엇이 가장 내 깊은 속을 차고앉았나? 제일 깊은 속에 뭐냐? 그걸 분석하고 그걸 파악을 해야 자기 인생은 그쪽으로 굴러가겠구나, 결국 그리되어집니다.



1차-khs

Comments

Category
State
347,351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