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3.1.15 요15:12 가족애 우정 애정은 세상 사랑, 말씀 생활에 돕는 희생만 주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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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3.1.15 요15:12 가족애 우정 애정은 세상 사랑, 말씀 생활에 돕는 희생만 주님의 사랑

서기 0 142 2023.01.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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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5 주전

제목 : 가족애 우정 애정은 세상 사랑, 말씀 생활에 돕는 희생만 주님의 사랑

사회 : 안응규
찬송 : 14장(큰 영화로 신 주), 90장(주안에 있는 나에게) / 131장(내 주되신 주를 참사랑하고)

본문 : 요한복음 15장 12절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 이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주님의 고난으로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소망을 우리에게 입혀주시고, 우리를 이 땅 위에 세상 사람으로 목적을 정하지 아니하시고, 하늘의 사람 하나님의 형상의 목적의 대상으로 귀한 열매로 택하여 주신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함을 드립니다. 부족한데 우리에게 통째로 한 해를 열어 놓으신 주님, 한없는 감사와 함께 죄송함 밖에는 없으나 올 한 해도 저희들이 살아야 되겠고, 살려면 연결이 필요한데 무엇으로 연결을 해야 하겠나이까. 주님밖에 없사오니 우리를 가지로 택해 주셨으니 저희들은 든든히 주님만 믿고 따라가는, 복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닫혀 있는 마음의 문들을 열어 주옵소서. 귀한 날 귀한 시간에 다시 한 번 셋째 주일을 허락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새해 첫 주 성찬으로 시작하여 우리에게 다시금 결심하며 특별한 결심으로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열어놓으신 주님, 이 결심이 한 해를 계속 될 수 있도록 인내의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심히 연약하여 넘어질 때가 많나이다. 넘어질지라도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므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이 마음 이 자세, 변치 않는 저희들 되도록 이 시간도 귀한 말씀 귀한 종을 통하여 말씀을 증거 해 주실 때에, 오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살펴가며 모두가 다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으므로 복된 한 주간이, 주님과 나와 하나 되는 상호내주의 한 주간이 펼쳐질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끝까지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하여 주시고 여러 각처에 있는 우리 교인들 어디 있든지 일일이 다 살펴 주시 사, 온종일 주일을 거룩하게 잘 지킴으로 오늘 예배하신 은혜와 복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을 수 있도록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함께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계명이라 말은 꼭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이나 계명이나 같은 말입니다. 말을 말같이 듣지를 않으니까 꼭 들어야 될 말은 강조를 하게 돼 있습니다. 법이다. 진리다. 율법이다. 계명이다. 이 말이나 저 말이나 다 말이라는 말입니다. 인사 잘하는 게 좋다. 이게 얼마짜리인지를 아이들은 모릅니다. 근데 세월을 살고 보면 어른한테 인사 한번 잘하는 것이 이게 얼마나 큰돈이고 횡재가 되는 걸 느끼는데, 근데 어른이 말하면 잔소리라 그래서 듣지 않으니 어른은 할 말만 해야 되겠고, 또 말이 많다보니 그 말 중에 말 안 들으면 감옥에 보내버리는 그런 말을 모아놓은 걸 법이라고 그럽니다. 말이나 법이나 같은 말입니다. 근데 말 중에서 일반적으로 꼭 지켜야 될 말이다. 그럴 때에 따라합니다. 계명(계명). 성경에 계명이라 그럴 때는 들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게 아니다. 이럴 때에 계명이라 그럽니다. 예전에는 쳐도 안 가는 수가 있습니다. 요즘은 카메라가 많아서 손 근처만 가도 교도소 집어넣어버립니다. 그래서 폭행하지 말아라. 다 상식적으로 알지 않습니까? 이런 걸 계명이라 그럽니다. 예전에는 훔치고 심지어 사람을 죽여도 증거가 없어 도망 다니고 피했습니다. 요즘은 카메라가 많아서 다 잡아내버립니다. 살인하지 말아라. 이런 걸 계명이라 그럽니다. 계명은 들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게 아니라 안 들으면 큰일 나는 것만 줄여서 계명이다 그럽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교 가는 아이에게 차 조심해라. 부모로서는 이게 계명인데 애들이 예해놓고 가다가 친구들하고 좋으면 신호등을 봅니까? 차를 봅니까?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차에 한 번 잘못 되어 놓으면 평생, 평생 병신이 된다. 꼭 그리 말을 해야 이게 알아듣기가 좋은데 사람들을 병신을 만들라고 병신이라는 말을 못하게 합니다. 장애자란 말이 낫습니까? 병신이란 말이 낫습니까? 사고를 막는 데는 장애자보다 병신이란 말이 더 낫습니다. 조심 안하면 병신 된다. 부모로서는 차조심해라 이게 계명인데 듣는 애들로서는 말 같지 않은 소리 애들이 다 알아서 한답니다. 성경의 계명이란 말은 꼭 지켜야 되는 말이다는 말을 기억하십시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꼭 듣고 꼭 지켜야 되는 걸 계명이라 그러면서 그 계명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아주 간단하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모릅니까? 사랑이 어렵습니까? 뭐 사랑처럼 좋은 거 다 좋아서 노래도 전부 사랑 드라마도 전부 사랑 소설도 전부 사랑, 10대 20대 요즘은 70대 80대까지 왜 꾸미고 왜 모두들 생난리입니까 사랑 때문에 난리지. 근데 주님이 계명이라는 말씀을 딱 붙여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게 계명이다. 그거야 쉽겠는데? 그렇게 쉬우면 계명이란 말을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여기 다시 좀 봐보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연애하라 그 말 아닙니다. 앞에 보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이 사랑만 딱 찍어서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 이래 놓았는데, 앞에 거는 떼버리고 서로 사랑하라 그랬구나. 교회에서 마음 드는 아가씨한테 서로 사랑하라 그랬지? 이런데다대고만 써먹으니까 교회가 세상보다 더 더러워지는 겁니다. 여자애들은 제 눈에 제일 좋은 남자 마음 드는 거 하나 딱 찍어서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5장 12절 서로 사랑하라 했지? 성경을 이런 데 써먹는 죄를 지으면 약도 없습니다. 주님이 계명이다. 무조건 해야 된다.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줄이면 큰일 납니다. 앞에 조건을 붙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주님이 우리를 남녀의 연애로 사랑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또래 친구끼리 우정으로 사랑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피가 섞인 가족이라고 사랑했습니까? 이 세 가지를 세상에 사랑이라 그럽니다.

정인이 금방 사랑 종류 몇 가지요? 적느라고 잊었나요. 남자 여자라 사랑하면 애정이라 그럽니다. 사랑. 부모 자녀 형제라 좋아하면 이거는 육정, 혈육의 사랑이라 그럽니다. 그다음 끼리끼리 모이면 좋아하는 것은 우정이라 그럽니다. 세상의 사랑은 사랑의 종류가 남자 여자라서 사랑 끼리끼리 사랑 가족이니까 사랑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사랑은 옆으로 딱 제쳐 놓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은 좋은 사랑이니까 꼭 기억해 보십시다. 구원의 사랑(구원의 사랑) 대속의 사랑(대속의 사랑) 이것만 사랑입니다. 하나님인데 사람으로 낮아지면서까지 손해 보면서까지 지옥 갈 나를 천국으로 돌려놓은 사랑 이 사랑만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 이래 놓으니까 귀신이 싹 바꿔가지고, 교회 찬양대 남학생 여학생 연애하면 좋은 사랑 아니냐. 이래서 이 나라를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이 나라 들어오기 전에는 세상이 이렇게 더럽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 불편한 진실이라 그럽니다. 사실은 사실인데 뒤져보면 참 불편한 것, 요즘 그런 말 세상도 많이 쓰지요. 불편한 진실. 100년 전에 선교사들이 생고생 당하며 이 나라에 예수님과 교회를 소개해서 천국 가는 사람을 만든 것은, 역사적으로 감사한 일이고 이렇게 세계 역사에 좋은 일은 없습니다. 굉장한 성과입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들이 예수님이나 가르치고 교회나 세웠으면 100%로 감사합니다. 그 인사만 할 건데 이 선교사들이 고향에서부터 연애질을 잘하던 사람들입니다. 서양 영화 모두들 한 번씩 보셨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도 흉내 내기 참 어려운, 낯 뜨거운 짓을 갖다 사방천지 다하는 게 그게 원래 유목민 서양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선교사들이 이 나라 와가지고 이렇게 양복 입으면 편리합니다. 이런 거는 고맙습니다. 이런 거는 좋고. 약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것도 좋고. 예수만 구원입니다. 이런 거는 완전히 그냥 황금 보석과 같은 생명이고,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를 위해 모두들 노력합시다. 이런 걸 복음이라고 그럽니다. 근데 수도 없는 많은 좋은 걸 전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하면서, 남자 여자 연애질을 하면 이게 재미있는 것이라고 그냥 온 나라에 퍼쳐 놨는데, 이건 선교사들이 영 몹쓸 걸 가르쳐 놨습니다. 근데 그 선교사들은 신사들이고 숙녀들이라. 난잡하게 연애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의사를 물어보며 우리가 결혼을 해도 될 사이인지 한번 만나봅시다. 이렇게 건전하게 자기를 지키며 조심을 했었는데, 이 못난 우리 조상들 한국 사람들이 남학생 쳐다도 못 보고 여학생 쳐다도 못 보도록 만들어 놓은 유교 문화에서, 예배당에 가면 남자 여자 그냥 눈을 맞출 수 있고 한 자리에 앉아서 찬송도 하고 그런다더라. 해놓으니까 이걸 갖다가 그냥 풀어가지고 나라를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1989년 신풍에 처음 오니까 안 믿는 사람이 동네에서 결혼했다고 안 믿는 사람들이 욕을 하는데 그거 참 이상했습니다. 왜 안 믿는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고 서로 결혼한 걸 욕을 합니까? 좋은 건데. 우리처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짓는 죄도 죄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그건 교인이나 하는 소리지 불신자들이야 마음 놓고 그냥 연애하는 게 재미있고 그렇게 결혼하는 게 더 낫지 왜 그 난리입니까. 근데 신풍에 불신자들도 저 사람 저 사람은 한 동네에서 결혼했단다. 이렇게 뒤로 욕을 하고 그럽니다. 이렇게 이 나라가 남녀 관계는 굉장히 건전했습니다. 선교사들보다 더 건전한 나라였습니다. 근데 예배당이 들어가지고 전부 다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어서 이거는 사람인지 강아지인지 짐승인지 애인지 어른지도 모르도록 이래 놓으니까, 이제 텔레비 뉴스에 보면 별의 별 죄가 다 나오는 겁니다. 세상을 이렇게 틀어놓으면 요 모양 요 꼴이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2023년 첫째 주일 둘째 주일 오늘이 셋째 주일이라 2023년에 첫째 주일은 요한복음 6장 몇 절이었죠? 한솔이 기억하시나요? 보지 말고 55절 요한복음 6장 55절 성찬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내 몸이 양식이고 내 피가 참된 음료다. 주님의 몸과 주님의 피가 음식이라 말이 아니라 주님 날 위해서 그 몸 고난 받으시고, 주님 날 위해서 그 피를 다 쏟아서 내가 믿는 사람 되었으니, 이것이 신앙의 양식이며 이것이 인격의 양식이 되는 거다. 이걸 교회의 거룩한 식사 신앙의 양식이라 한다. 한 해를 출발하며 성찬의 요한복음 6장 55절 말씀을 모두 함께 살펴봤습니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그 몸 하나님인데 사람의 몸을 잊고 고생하셨으니 참 잊지 못할 감사. 그 고생 때문에 내가 믿는 사람 되고 천국 가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다. 이런 거는 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주님의 사랑이라 그럽니다. 이것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남녀의 멋있는 사랑 부부의 멋진 애정은 교회보다는 세상에 가면 더 좋고 잘 가르치고 뭐 드라마 보면 좋은 거 꽉 찼을 겁니다. 그건 그런데 가서 보시고 예배당에 오실 때는 남녀 사랑 부부 애정 또 우정 또 동네 사람들의 그런 친목, 이런 거는 뒷골목 앞골목 집에서 텔레비에서 학교에서 전부 배우시고 다 그쪽에서 하시다가, 예배당으로 올 때는 그런 거는 털털 털어버리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대신 죽음으로 지옥 갈 날을 천국에 보내셨다. 이것만 교회의 사랑이고 요것만 주님의 사랑이고 요 사랑을 주님이 딱 들고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이게 어렵습니까? 이게 혼돈스럽습니까? 이게 그렇게 고등 수학처럼 괴롭습니까? 왜 그렇게 모두들 혼돈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 이번 주 요절입니다. 참 중요한 절수다 두 글자로 줄이면 요절이다 그럽니다. 어린 주일 학생들만 요절을 외우는 게 아닙니다. 나이 많은 분들은 당연한데 아이들은 영 모르니까 요절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주님이 나에 계명은 주님의 계명은, 성경에 주님이 구약의 613가지가 넘는 많은 명령을 계명으로 기록하셨습니다. 헤아릴 수도 없이 숨도 못 쉬도록. 구약에 수도 없는 계명들을 주님이 오셔서 딱딱 접어서 서랍 안에 집어넣어 버리고 하나만 기억해라. 얼마나 좋습니까.

예전에는 집에 컴퓨터 있어야지 계산기 주머니에 있어야지. 나 많은 분은 주판 이만한 것 들고 다녀야지. 종이에 펜으로 가지고 더하기 빼기해야 주고받고 장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휴대폰 하나에 입으로 가지고 2곱하기 2하면 휴대폰이 4하고 답변을 딱 해버립니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이 하나면 다 됩니다. 돈은 카드 한 장이면 100만 원 천만 원 할 것 없이 카드 한 장이면 세계를 돌아다녀도 다 됩니다. 참 편리하지요. 구약의 율법을 헤아려 보니까 어느 분이 613 가지더라. 그러는데 그거 잘못 헤아려서 그렇습니다. 더 넘습니다. 수백 개 수천 개 지킬 구약의 율법 전부를 주님이 오셔서 딱딱 접어 서랍에 넣고, 하나만 기억해라 그리고 주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 말도 멋있고 재밌고 좋고 귀에 쏙 들어오지 않습니까? 서로 사랑하라. 초등학생도 아는 말씀. 중고등학교 애들은 막 서로서로 사랑을 해서 지금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잡으러 댕기고 떼어놨는데, 요즘에는 그랬다가는 선생님 맞아 죽습니다. 말로 그런 것이 아니라 끄덩이 잡힙니다. 중학생끼리 사랑하는데 고등학생끼리 사랑하는데 어디 교장이 개입을 해? 어디 선생이 이래라 말하라 그래? 이건 아동 인권인데. 그 사랑은 학교 가서 하시고 골목에서 하시고 집에서 하시고, 예배당 올 때는 그런 걸 싹 지우시고 교회 성경 신앙 예배 때 사랑이란, 하나님이 사람 되기같이 고생하면서 나를 구원했으니 이것만 주님의 사랑이라 그럽니다. 이런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 따라 하십시다. 서로 사랑하라(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교회 오는 길에 내가 한 번 차 좀 세우면 연세 많은 분 교회 올 때 도움이 되는데, 연세 많은 분들은 차를 가지고 태우러 올 때 쉬워 보이시지요. 운전을  해봐서 그렇습니다. 운전하다가 브레이크 한 번 잡는 거 그렇게 그게 어렵습니다. 이렇게 둘러가는 거 괴로운 일입니다. 그렇지만은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 되기까지 고생하셨는데, 예배당 오면서 한 번 차에 어려운 노인 한 분 모시는 거 그걸 못하냐. 이걸 여기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 교회처럼 연세 많은 분들이 많은 교회는 젊은 것들이 이런 성경을 읽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서 교회 오기 어려울 때 젊은 것들이 차로 쌩쌩 다니면서 내 앞에 차 한 번 서 세워주고 태워주면 그게 뭐 어렵다고? 쉬워 보이지요? 연세 많은 분들은 교회 오실 때 젊은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을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많은데 입에 지퍼를 잠그시고, 입을 딱 닫아버리고 잔소리 한 번 안하는 게 젊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어렵지요?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냥 입에서 이 말 나가고 저 말 나가면 젊은 사람들이 귀찮고 잔소리라. 목사 설교 한 시간 들어주는 것만 해도 애가 타 죽겠는데, 거기다 대고 이 사람 저 사람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그러면 교회에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오귀례 집사님 앞에 잘 보셔야 됩니다. 이순금 집사님. 앞에 계신 저 오길심 집사님 오귀례 집사님 이순금 집사님 뭐 이런 분들은 주변의 청년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겁니다. 이 말 저 말 다 필요한 말인데 이 말 저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신앙에 꼭 필요한 말씀을 못합니다. 해도 묻혀버립니다.

내가 이 말 한마디는 젊은 사람에게 꼭 하기 위해 다른 모든 말은 참으마. 자기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끊고 눌러 버릴 때 그것도 젊은 사람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랑이 되어 질 겁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랑은 남녀의 이성의 사랑 아니고, 친구들끼리의 우정의 사랑 아니고 가족이라 마음이 끌리는 그런 가족 사랑이 아니고,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 사랑은 집에 놔두고 오시고 하나님인데 사람 되기까지 낮아지시고 고생을 다 하셨으니, 말씀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 이 고생 다했으니 나도 나 주변의 식구들 교인들 다른 사람들 말씀 생활 잘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는 것이 좋겠느냐. 그 노력이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서로 사랑하는 겁니다. 이번 한 주간 요한복음 15장 12절 말씀으로 계속 살필 건데 주방향은 이렇습니다. 2023년 세 번째 주일입니다. 한 해가 시작되면 작심삼일 3일간 결심하다가 대부분은 다 접는다고 그럽니다. 요즘은 시대가 빨라서 3일은 커녕 3시간이나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한 주 그 다음 두 주 그다음 주님이 오늘 세 번째 주일을 우리에게 주시며, 하나님이 사람 되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천국 가게 되었는데, 그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고생을 주님이 주님의 사랑이라 그러면서 주님의 사랑을 주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리고 첫 주 둘째 주 이번이 세 번째 주니까 주님이 주의 사랑을 세 번째나 주시는데, 첫 주에 받은 사랑 잊었고 두 번째 주신 사랑 잊었고 세 번째 주일의 사랑도 예배 시간 끝나면 전기 불 나하듯이 딱 끊어버리고 잊지 아니하시도록, 금년에는 주일주일 말씀을 좀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올해 첫 번째 주일의 말씀은 요한복음 6장 몇 절이라고 그랬지요? 찬양대 학생들 몇 절? 55절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몸과 주님의 피가 참된 양식이며 음료다. 주님 사람 되어 오기까지 고생하셨는데 말씀으로 사는 생활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 신앙의 양식입니다.
말씀으로 살아가려다 보면 고생은 하는 법입니다. 안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성찬은 신앙의 기본이며 알고 보면 신앙의 전부다. 교재에 그렇게 쓰셨습니까? 성찬은 교회의 신앙의 식사입니다. 첫 주일에 떡과 잔으로 먹고 마시면서 주님이 이런 몸을 가지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고생하셨으니, 주님이 당신의 잃은 양과 같은 피를 흘려 나를 구원하셨으니 올해 한 해 신앙의 양식 먹고 신앙의 힘으로 신앙으로 자라는 내가 돼야 되겠구나. 그게 한 해의 첫 주일에 우리가 함께하는 성찬입니다. 떡과 잔을 입으로 먹고 마시지 아니해도 그 생각 그 신앙 말씀을 마음속에 먹고 마시는 사람은 성찬을 참석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주일은 요한복음 15장 1절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이 내가 참 포도나무다. 주님이 내가 참 포도나무다 내가 포도나무라면 포도나무 둥치에서 뻗어 나온 것만 포도나무 가지다. 주님으로부터 돋아나오고 뻗어 나온 것만 믿는 신앙입니다. 주님이 누구신데? 우리를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오셨고 고생하셨으니 주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살도록 길을 열어놓으신 구원의 주님이시니, 우리가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만큼 포도나무 둥치에서 나온 가지가 되어 집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다. 나무와 가지의 사이는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김 씨인데 아이가 박 씨가 되면 뭔가 문제가 생긴 겁니다. 아버지는 말인데 강아지가 태어났으면 이건 잘못 알았던지 사귀든지 뭔가 고장이 생긴 겁니다. 좋은 게 아닙니다. 부모가 말이면 망아지가 나와야 이게 가지입니다. 부모가 개면 남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강아지가 나와야 됩니다. 주님이 포도나무면 믿는 사람의 신앙이란 교회의 중심이란 교회의 발전이란 믿는 사람의 말과 마음씨란, 주님이 말씀으로 살도록 그 고생 다 하셨으니 말씀으로 살려고 내가 마음을 먹어야 되겠다. 그 마음이 바로 포도가지입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가다가 넘어질지라도 이번 주간은 말씀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되겠구나. 그리고 말씀을 생각하고 한 번 행동했으면 그 한 번의 행동 행동이 포도나무에서 나온 가지가 자꾸 자라가고 굵어지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마음이 말씀을 완전히 생각하는 마음이 되고 그리고 나의 행동이 말씀 때문에 달라져서, 이제 말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져 버렸으면 이게 포도나무 가지에 맺어진 열매입니다. 열매란 결과라는 말이지요? 결과.

야고보서 1장에 예를 들면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알아차리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결심과 행동은 신중히 해라 아주 쉬운 말씀입니다. 예전에는 한 마디 들으면 열 마디를 쏟아 내놓던 사람이, 이제는 열 마디를 들어도 또 참고 또 생각하고 또 계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 노력이 포도나무 가지고 이제 완전 체질이 바뀌어 어떤 말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고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딱 굳어져 버렸으면, 이 결과 이 열매를 포도나무 열매라고 그럽니다. 주님은 한 마디 들으면 보복을 했을까. 주님은 한마디 으면 부글부글 끓다가 끓는 물처럼 뒤집어 버렸을까. 주님은 어떤 말씀을 들어도 듣기는 속기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셨을까. 예를 드는 겁니다. 한마디 욕을 들으면 열 마디 욕을 내놓던 사람이 남이 실수로 발을 한 번 밟으면 주먹이 열 번 날아가던 사람이,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 이 말씀을 기억하여, 주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나를 구원하여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그러셨으니, 이제는 나 욕을 열 번을 해도 백 번을 해도 신중하게 판단하고, 이게 뭔 뜻일까 실수일까 어떤 것일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할까. 이렇게 노력을 하는 사람이면 포도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굵어지고 든든해지는 것이고, 이제 완전히 체질이 되어 누가 뭐라 해도 먼저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져 버렸으면, 그 성격이 포도나무 둥치에서 뻗어 나온 가지 끝에 맺혀진 열매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세월이 지나가며 말씀 때문에 나는 마음이 몇 개나 바뀌어 버렸는가. 이게 포도송이 헤아리는 방법입니다.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나는 표정과 말투와 걸음걸이와 성격이 몇 개나 바꿔져 버렸느냐. 그 바뀐 만큼이 포도 열매가 돼버렸습니다. 제가 나이가 좀 한참 먹으면서도 교회사택을 들어가고 사무실을 들어갈 때도, 신발 하나는 저기 하나는 저기 여기저기 늘 그러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세상 사람이 쓴 글을 한번 읽어봤는데 우리나라에 100살 넘는 사람이 100명이 채 된다. 안 된다 그럴 때입니다. 100살 넘는 사람이 지금은 아마 만 명도 넘을걸요. 우리나라 100살 넘는 사람이 100명이 안 된다 그럴 때에 100살 넘은 사람 집을 다 조사해 본 사람이, 100살 이상 된 사람 집을 방문해 보니까 한결 같이 신발이 나란히 섬돌에 나란히 있더라. 신발이 흩어진 걸 못 봤더라.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렇더라. 곡을 읽은 글이 한 번 있었습니다. 두고 갈 세상도 오래 사는 사람은 이렇게 신발을 나란히 하고 차분하게 들어가는데, 목사가 신발 하나 여기 던지고 저기 던지고 그냥 들어가는 게 급해서 이래 했으니, 사택 오는 교인이 사무실에 오는 교인이 현관에 신발을 보면서 목사 신발 놔놓은 꼬라지를 보니까 목사 마음이 엉망진창이구만. 성깔 하겠구먼. 이 목사의 마음과 생활이 막 어지러워 놓으니 신발이 이렇겠구먼. 오는 교인이 시험될까 100살 넘게 살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지장이 되지 말아야 되겠다 싶어, 그거 읽고 그날부터는 제가 신발을 나란히 해놓고 들어갑니다. 지금도 저 사무실에 신발이 나란히 돼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신발은 나란히 해놓고 들어갑니다. 말씀 때문에 신발 하나 나란히 하는 이걸 처음에 습관 가지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지금은 이제 신발이 약간 흐트러지면 아무리 바빠도 저절로 이게 이제 나란히 되어 집니다. 그 노력이 주의 말씀 때문에 되어졌으면 포도나무 가지가 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완전히 이렇게 내 습관으로 되어 버렸으면 열매가 맺어진 겁니다.

백 살을 살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그 신문 기자에 저는 가집니다. 그리고 그 신문 기자의 그 글에 저는 열매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알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말씀으로 은혜가 돼야 될 건데 목회자를 만나러 오기 전에 신발을 먼저 보는데 현관을 여는 순간 신발을 보면서, 이놈의 교회는 이 목사는 정신머리가 아주 혼돈스럽고 정리 정돈이 되어 있지 않겠구나. 이럴 때에 이분들에게 말씀으로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말씀 때문에 이렇게 제가 저를 바꾼 겁니다. 체질이 제가 그렇게 정리 정돈이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 때문에 바꾸려고 노력을 하면 제가 무엇이 된다고요? 노력이 가지가 되는 겁니다. 그 노력을 하다가 마음과 행동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으면 그다음 뭐가 된다고요? 포도 열매가 되는 겁니다. 이게 두 번째 주간에 주님이 나는 둥치요 너희는 가지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라. 가지면 열매가 맺어야 가지지. 올해 첫 번째 말씀은 주님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으니 나도 말씀으로 살며 고난당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게 신앙의 양식이지. 이 세상에 돈을 벌려고 그래도 땀이 나는 거고 세상에 장사를 하려고 그래도 손님한테 굽신 거리는 거고, 세상 공부를 하려고 그래도 도서관까지 가는 거고. 세상에 도둑질을 하려고 그래도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도둑질 해보셨습니까? 도둑놈도 도둑질을 제대로 해보면 아이 도둑질 하면서 이만큼 고생하니 차라리 공부를 하겠다. 마음을 바꾸게 돼 있는 겁니다. 잡혀가는 어설픈 도둑놈들이니까 도둑질을 갖다 좋아하지. 깡패가 주먹질로 남을 다 이기려면 공부보다 더 어렵고 그거 어떤 노력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나쁜 짓도 제대로 해본 사람은 저절로 나쁜 짓하니 차라리 옳은 걸 하는 게 낫겠구나. 이렇게 사람이 바뀌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주님을 생각하고 말씀으로 사는 데는 어려움 고난이라는 것은 당연히 있는 거다. 당연한 줄 알고 고생을 하려고 대들면 주님이 고난을 없애버리고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올해 첫 번째 주일에 요한복음 6장 55절은 신앙의 양식을 살폈습니다. 신앙 양식. 주님 고난당하셨는데 내가 이까짓 것쯤 못하겠느냐. 이게 느낌이 오지 않고 이게 결심이 되지 않을 때는 부모를 생각하라 그랬습니다. 나 위해서 부모님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 공부를 못해? 이 정도를 못 참아? 몇 시간 앉아있는 걸 못 해? 돈 주고 밥 주는데. 날 낳느라고 고생하고 기르느라고 고생하고 지금까지 희생하는 부모를 생각하면 서울 한복판에 가서라도 어떤 유혹 어떤 시험 다 물리치고, 고향에서 기다리고 바라보는 부모를 생각하고 내가 흔들리지 않고 천만 명 속에 내 길은 간다. 부모를 제대로 생각하면 부모에게서 나온 그 가지가 자녀다운 것이고, 그 열매는 그 가정에 희망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그래서 둥치와 가지와 열매라는 것은 안 믿는 사람도 알아야 되는 일이고 믿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나 구원 위하여 하나님이 나 말씀으로 살도록 길을 열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고난을 당하셨으니 이걸로 신앙의 힘을 삼자 첫 주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주간은 나도 말씀으로 살아가려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한 번 두 번 노력하다 보면 나는 포도나무 가지가 되고, 말씀으로 살려는 내 마음과 노력이 내 마음과 내 행동에 습관이 되고 새사람의 인격이 되고 굳어지면, 그러면 이게 두 번째 주간에 나는 주의 가지되어 포도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작년 1년을 한 해 더 삶으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습니까? 그건 세상 열매입니다. 돈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건 경제 열매가 맺어진 겁니다. 보기 싫은 사람하고도 사교적으로 잘 대화하는 사람이 되었느냐. 그럼 매너 있는 도덕의 사람의 열매가 맺어진 겁니다. 작년 1년을 되돌아 볼 때 주님 생각하고 말씀으로 바뀐 내가 무엇인가. 그 바뀐 부분이 있으면 이건 포도나무의 포도가지에 열매가 맺어진 겁니다. 두번. 그리고 이번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 주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피 흘려 살 찢고 너희 위에 죽음으로 구원했다. 너도 너 있는 힘 다하여 다른 사람 신앙에 도움 되도록 노력 하거라. 이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작년 1년 내가 수고함으로 가족이든 아는 사람이든 다른 사람 신앙에 도움 되도록 말이나 노력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형이 몸이 아픈데 형이 교회를 안가면 동생도 안 갈 테니 동생 때문에라도 이 정도면 내가 교회를 가야 되겠다. 그리고 일어서서 걸어갔다면 이것도 소리 없이 동생의 신앙을 위해서 노력한 그런 사랑이 되어 집니다. 내 동생이라 아까워서 사탕 한 개 더 주고 용돈 하나 주는 것은, 세상에도 있는 그거는 애정이고 우정이고 그거는 가족 사랑입니다. 동생의 신앙에 동생이 말씀으로 사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한 번이라도 수고나 아니면 손해를 본 게 있었느냐. 정말 이게 있었다면 이게 바로 주님이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한 것이 되어 집니다. 이것만 신앙입니다. 이것만 교회가 가르치는 겁니다. 이것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이거 외의 사랑은 세상 것입니다.

세상 것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태양도 얼마나 좋은지 저 태양 때문에 우리가 지금 주일날 이렇게 문제없이 교회를 왔습니다. 이 땅이 든든하니까 지금 밟고 차를 타고 이렇게 왔습니다. 태양도 땅도 주변도 나라도 국가의 경제와 국방도 우리의 모든 것 전부가 다 세상 겁니다. 이걸 잘 사용하면 이거는 복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자연과 환경 전부를 뒤집어 죄 짓는데 사용하면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주가 되어 버립니다. 부부의 애정도 나쁜 거 아닙니다. 좋은 겁니다. 주님이 주신 겁니다. 하늘의 선물입니다. 가족의 사랑 하나님이 주신 기본 사랑입니다. 좋은 겁니다. 이런 우정 저런 우정 전부가 다 주님이 주신 하늘의 은혜고 선물입니다. 애정도 우정도 가족애도 전부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선물인데, 이거 전부를 똘똘 뭉쳐가지고 말씀 어기는 쪽으로 가지고 나가면 이때는 이게 저주가 되어 집니다. 애정도 우정도 가족의 사랑도 이 땅위의 모든 자연의 은혜를 전부 다 뭉쳐서, 말씀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 세상의 사람과 세상의 모든 환경도 전부 하늘의 축복이 되어 집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계명은 꼭 지켜라 그 말이죠. 내가 너희를 사랑함 같이 하나님이 사람 되어 모든 고생 생명까지 바쳐 너를 구원하고 말씀으로 살도록 해주었으니, 너희들도 서로서로 다른 사람의 신앙에 도움 되는 마음만 먹으라. 다른 사람 신앙에 도움 되는 말만 하거라, 다른 사람 신앙에 도움 되는 행동과 수고만 하거라 이것만 주님의 사랑입니다. 어렵지 않은 겁니다. 마음속에 두고 생각하십시다.

모든 것을 하나로 줄여 예수님의 구원이라 그럽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그러셨다니 주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주님이 날 위해 수고하셨으니, 이 주님이 나를 위하여 수고한 게 어느 정도인지 좀 알아봐야 되겠지요. 주님은 따라 하십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삼위일체 하나님) 주님은 그냥 주님 아닙니다. 회사 사장님 정도 되는 주인 되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중에 1급이 있고 2급이 있고 3급이 있고 4급이 있는데, 3급 4급의 하나님이 오셨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일체라 말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모든 면으로 똑같습니다. 이게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우리 위하여 사람 되어 오심으로 낮아졌고 바보가 된 거지. 주님 속에 있는 2위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삼위일체입니다. 정확하게 같습니다. 그래서 이걸 교리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 성자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 성령은 성신, 성부 성자 성신 성부 하나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할 때 성부 하나님. 두 번째 오신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 성자 예수님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오늘도 교회 가자 무슨 말씀인가 들어보자 좀 고쳐보고 노력하자.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감화 감동하시는 하나님을 성신이라 그러는데 성신 하나님을 성령 하나님이라 그럽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성자 예수님입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날 위하여 사람 되시고 그 몸 찢고 피 흘려 나를 믿는 사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을 믿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고, 주변에 다른 사람 말씀으로 사는데 말 한마디든 행동 하나든 차 한번 돌아오시던, 또는 연세 많은 분들은 할 일이 없다 생각하시는데 젊은 분들을 위해서 좀 말 좀 줄이시고,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 한 번 더 일어서시고 움직이면 건강에도 좋을 겁니다. 큰 거 말고 아주 적은 것부터 말씀으로 사는데 다른 사람 도움이 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 주간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나는 다른 사람 신앙에 방해되도록 행동한 것이 없었는가. 전부가 다 많을 겁니다. 이것부터 고치는 것이 주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시작입니다.

(기도)
주님 생각함으로 지난해 말씀으로 사는 이 일에 부족한 자기를 돌아보고, 또 주변의 말씀으로 사는데 도움 되도록 살았어야 되는 주의 사랑 하늘의 사랑이 부족했음을 돌아보고, 올해 안에 세상에 만 가지 소망과 기대를 접어두고 올해는 내 마음과 내 생활에 말씀이 좀 더 발전될 수 있도록, 또 주변에 나의 수고로 말씀 생활에 도움 되며 말씀 생활에 내가 들어 손해되지 않도록, 내가 나를 꺾으며 내가 나를 조심시킬 때 주님 나를 위하여 고난당하신 그 고난 그 희생 생각하므로, 우리 모든 교인들 올해 안에 말씀 생활을 위한 헌신희생 자기 절제에 복된 한 해가 되어, 이런 우리를 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강도 가정도 경제도 나라의 국방과 모든 안전도, 주님이 더하여 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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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1.15주전      요15:12            신앙은 고난        예장총공 신풍교회


□ 복습 : 신년행사
1. 성찬 : 신앙의 (기본)이며 (전부)
2. 열매 : 주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

■ 예수님의 구원
1. 삼위일체 하나님,    요10
 ① 성부 – (하나)님 아버지
 ② 성자 – 성자 (예수)님
 ③ 성신 – (성령) 하나님

2. 십자가의 대속,      빌2
 ①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6
 ②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7
 ②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8

3. 포도나무 열매,      요15:5
 ① 주님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 (상호) 내주

 ② 우리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상호 (내주)

 ③ 계명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4. 서로 사랑하라
 ① 네가 사랑하라 : (너)만 사랑하라
 ② 상대방은 맡겨라 : (주님)이 결정
 ③ 주님 가신 길 : (성령)이 역사

■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1. ‘친구’라 하심은                        교인/ 결혼/ 진로/ 직장
 ① 위로 쓰면 : (망령), 교만
 ② 옆에 쓰면 : 세상, (속화)
 ③ 아래 쓰면 : 대속, (사랑)

2. 주님이 우리를 친구로                 
 ① (사람) 되었고               
 ② (모두)주셨고                  ③ (고난) 당하셨으니

3. 우리가 주변을 친구로 
 ① 낮아질 (목표)를 정하고
 ② 줄 수 있는 (한계)를 정하고
 ③ 고난 당할 (각오)를 정할 것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벧전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요15:2,5,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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