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5.26 마10:1 신학과 원어, 동정하면 공범도 소망도 됨, 자기 위치를 떠난 것이 3 가지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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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3.5.26 마10:1 신학과 원어, 동정하면 공범도 소망도 됨, 자기 위치를 떠난 것이 3 가지 고장

서기 0 59 2023.05.26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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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금새

제목 : 신학과 원어, 동정하면 공범도 소망도 됨, 자기 위치를 떠난 것이 3 가지 고장

찬송 : 80장(인애하신 구세주여)

본문 : 마태복음 10장 1절 -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요절을 외우고 나가면 여러 면으로 좋습니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그냥 열두 제자라 그러지 않으시고 앞에 ‘그’ 열두 제자라, 이런 것을 특정이라 그럽니다. 딱 찍어 ‘이 사람만’ 신앙의 세계에 그냥 따르는 수많은 무리 중에 이런 열둘, 저런 열둘이 아니라 2절과 3절에 헤아려가며 이 열둘만 열두 제자로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 속에 2절과 3절에 있는 열두 제자의 이름에 메여 있는 특성들 우리 속에서 꼭 살펴보자 그랬습니다.

어제 하루 일반적인 평일로 하루를 보냈으나 2절에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신앙이 들어 정말 주님을 제대로 따르는 제자 그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그 베드로가 주님이 누군지 모르고 따르다가 도망가고, 따르다가 배신하고, 따르다가 그 엉뚱한 데로 흩어지던 믿기 전에 이름이 시몬입니다. 사도 바울의 믿기 전 이름이 사울이고 믿은 이후의 이름이 바울이듯이 베드로와 시몬의 이름이 그렇습니다. 야곱은 날 때부터 택함을 받았으나 야곱의 이름으로 쭉 살아가다가 얍복강을 건너면서 이스라엘 이름으로 다시 받았습니다. 이름이 두 개가 되어 늘 믿기 전에 자기와 믿은 이후의 자기를 가지고 사는 베드로입니다. 주님을 처음 따를 때 시몬 한참 시몬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믿기는 믿어도 안 믿는 사람 정도의, 그런 상태도 있고 복되게 믿은 이름도 있고 그리고 우리도 지난날을 돌아보면 부족해도 이 정도 믿은 것은 남들이 그래도 보면 참 믿는 사람이다, 그런 자기 내면도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자기는 자기가 자기를 봐도 참 부족한 면도 섞여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나머지 열두 제자는 성경 전체를 차분하게 읽어보면 시몬이라는 이름이 쓰일 때와 베드로의 이름이 쓰일 때가 어떤지를 봐가지고 이런 행동할 때가 베드로구나, 이런 행동할 때는 시몬이라고 나오는구나, 그리고 살펴보면 저절로 나오는 건데 좀 욕을 딱 해버렸으면 좋은데 학자라는 인간들은 베드로는 그리스 나라 헬라어 사전에 보니 뭐 원어가 이렇더라, 저렇더라 그 소리만 평생을 해 대고 2천 년을 해 대고 앉아가지고 일반인은 강의를 들어도 알아도 듣지 못하는 암호 소리만 해서 자기 모르는 자기 아는 걸 다른 사람 모를 때 그 전문 용어로 가지고 사람을 누르는 그 행습 참 나쁜 겁니다. 다른 거는 몰라도 성경의 베드로는 성경 읽어보면 베드로가 뭔지 시몬이 뭔지 베드로와 시몬의 언어가 달라도 틀려도 성경에 적을 때부터는 성경 언어입니다.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베드로와 시몬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거 하나만 가지고 한독 읽어보면 저절로 나옵니다.

그다음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베드로 안드레 둘은 형제구나 이것만 가지고 창세기로 계시록까지를 차분하게 읽어보며 관련되는 게 나올 때는 적어보면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베드로고 성경이 말하는 안드레입니다. 그 외의 소리는 주워 담으려면 죽는 날까지 그거 들어봐야 헛일입니다. 1 더하기 1은 2다, 이렇게 수학을 배우는 사람이 하나 있고 1 더하기 1은 3이 아니다, 1더하기 1은 4가 아니다, 1더하기 1은 5가 아니다. 아닌 걸 갖다가 백 개, 천 개, 만 개를 배워 가지고 그 다음 1 더하기 1은 그러면 2가 되는구나, 이렇게 아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 가지고는 죽는 날까지 해도 아마 끝은 나지 않을 겁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첫째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더럽다라는 해석이 성경 원어인 헬라어에 보니, 헬라어의 사전에 보니, 그러고 시작하는 걸 신학이라고 그럽니다. 그 신학을 갖다가 쥐어박고 미워하는 이유가 그냥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거 저도 배우지 않았으면 성경이 좋고 신앙이 좋고 바르게 믿어 보려는 결심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말로는 더러운 건데 원래 원어에는 무슨 뜻인고? 이게 궁금해지는 순간 헬라어는 쉽게 말하면 그리스 나라 말입니다.

제가 한번 그리스 대사관에 한번 전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대사관 전화하는 게 제일 빠르지 않을까요? 신약은 헬라어고 헬라라는 나라가 그리스 나라입니다. 서울에 그리스 대사관 전화 해가지고 그리스 언어, 그리스 문법책 사전 책 추천을 해 주시라, 그러니까 건국대학과 외국어 대학 두 군데 그리스 전문가들이 있다 그래요. 두 군데 또 전화했습니다. 현대 그리스어와 성경을 기록한 고대 그리스도어는 아예 한국말하고 일본 말이 다르듯이 아주 다르게 보시면 된다 그럽니다. 그래도 그리스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것이 그리스도에 직접 공부하고 우리나라 제일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게 그래도 더 낫지 싶어 상관없으니까 좀 달라 그러니까 줘봐야 아예 소용이 없다고 그럽니다. 그렇다면 헬라어 가지고 이 말 저 말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현혹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물어야 될 겁니다.

“더러운” 뭐가 더러운 거지요? 한자 사전 국어사전 헬라어 사전에서 찾을 것이 아니고 창세기부터 더럽다 라는 단어는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가, 이렇게 읽어보면 그냥 나옵니다. 제일 많이 나오는 게 성경의 레위기입니다. 레위기 전브는 깨끗함과 더러움, 깨끗함과 더러움 이것만 나옵니다. 레위기로 가지고 더러운 거는 찾으면 되고 귀신이라는 것은 그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유다서 1장 하늘의 천사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죄를 짓고 쫓겨 나온 것이 이 귀신의 출처입니다. 천사구나, 천사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구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더러운 게 되는 겁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면 더러운 겁니다. 남자가 이발소 가서 이발 안 하고 미장원 가서 이발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머리는 이제 더러운 머리 되는 겁니다. 신랑 안 왔으니까 얘기해도 되겠나? 동천교회 이번 결혼식 화면을 뒤에서 잡아서 뒷머리만 봤는데 신랑 머리를 갖다가 그렇게 더럽게 해놓기를 갖다가 어느 미장원에서 했을까? 신랑 제가 가서 했을까? 또 신랑 옆에 가족들이 시켰을까? 신부가 원해서 그랬으면 그거야 뭐 뽑았던 말았던 건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평소 머리는 말끔했는데 잘한다고 했겠지. 그런데 이발소 가면 이발을 그래 안 해줍니다. 신랑을 갖다가 이발소가 아니라 미장원 가서 했으면 더럽게 한 거지. 신부 머리를 이발소 가가지고 바리깡으로 밀었으면 뭐 빡빡머리를 밀어도 깨끗한 게 아니고 더러운 머리가 된 거지.

아이가 어른 말 안 들으면 더러운 행동이지 뭐 별 거 있습니까? 하루 샤워를 세 번, 네 번 해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더러움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나오는 겁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으면 그 얼마 안 가면 병은 저절로 나게 돼 있는 겁니다. 아마 코는 숨 쉬라고 하나님이 만들어 놨을 건데 이게 굴뚝같았으면 코가 밑이 아니라 위를 향했을 겁니다. 코끼리 코는 유일하게 밑으로 가든 위로 가든 그럽니다. 비가 오면 밑으로 내려가고 코끼리가 담배 피울 때는 콧구멍이 아마 위를 향해서 굴뚝을 만들었을 겁니다. 코끼리는 담배 피워도 아마 폐암 안 걸릴 겁니다. 사람의 코는 딱 보면 그건 굴뚝이 아닌 것은 알 건데 숨 쉬라고 준 코를 굴뚝으로 사용하면 그건 뭐 그냥 더러운 겁니다. 그럼 이제 그다음부터는 뭐 폐암이 들어가든지 말든지 그래야 그게 정상이지.

그리고 뭐든지 하나 둘 살펴봐 보면 그러면 저절로 모든 것이 나오는데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봐도 그냥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게 더러운 거고 그게 이어지면 그다음 고장은 납니다. 특별하게 고장이 나버리면 그땐 병입니다.

이번 주간 지금 살피는 것은 늘 세 번째입니다. “모든 약한 것을” 약한 것은 병도 아니고 더럽지도 않고 그 불쌍한 거 아니냐, 불쌍한 거 아니냐, 막내니 불리하니 불쌍한 거 아니냐, 그래서 막내를 오냐 오냐 길러놓으면 최근에 한 10년 봤지요? 10년간 한 천 건 고소 고발 들어왔는데 공통점이 그 마지막 움직이는 배후가 둘 다 막내입니다. 아니, 막내라고 그러면 전부 나쁘기만 한 건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그 두 사람은 7남매의 막내들입니다. 이쪽도 7남매의 막내 이쪽도 7남매의 막내, 그리고 이제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막내들 한번 살펴봐 보십시오.막내는 뭔 잘못을 해도 막내니까, 막내니까 이런 게 있습니다. 그거 한 번 두 번 세 번 양해하고 불쌍하다고 다독거린 사람이 나는 마음이 너무 긍휼이고 너무 착해서 그런 거는 봐준다,
네가 봐준 것이 죄 짓는 죄인에게 힘을 갖다가 실어준 건지 죄는 지었고 넘어졌으나 막내라 힘이 없어 실수한 건데 힘을 내서 다시 용기를 내라고 격려를 하고 용기를 줘서 소망을 준 건지 난 막내니까 뭐 의례 죄를 지어도 되는 거라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죄를 짓는 면허증을 주고 연습 숙달을 시켜 자기 타 죽을 줄도 모르는 불구덩이에 떨어지도록 밀어붙인 사람이 누구냐? 꼭 죄 짓는 죄인이 나올 때는 옆에서 세 가지 정도의 형태가 나옵니다.

죄를 짓는 거 보니까 저 인간은 소망이 없다, 남의 소망을 끊어 절망으로 바라보는 눈, 그 죄와 죄를 지을 수 있지 뭐 당연한 거 아니냐고 부추기고 박수치고 응원하고 손 잡아줘서 그 다음에 또 죄를 짓게 만드는 사람, 여기에 좌로 치우치고 우로 치우친 겁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사람 사람은 누구든지 제지할 수 있다, 두 번째, 죄 지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는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문제다, 누구든지 어떤 죄든지 지을 수는 있다, 그런데 앞으로 그 죄를 또 짓는 것이 문제다. 또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용서하는 것이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해 주는 거냐? 한 개 쥐 박아버려야 이거는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냐?

성경은 소망의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죄를 짓도록 약하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어떤 죄든 죄는 지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죄를 반복하게 만들면 그때는 앞에 지은 죄까지 덮어 써야 됩니다. 그런 줄 알고 남이 죄 지었을 때, 남이 실수했을 때 용서해라 봐주라 그럴 수 있다고 다독거리는 사람, 책임지면 됩니다. 책임지면. 죄 지은 걸 교도소 갖다 놓으면 풀어 줘라. 사면. 죄 지으면 또 사면해라. 두 번 세 번, 그래서 그 사람이 마지막에 한 번, 두 번, 세 번 용서를 받고 눈물로 돌이키며 이렇게 용서를 해 주는데 내가 이를 깨물고 내가 죽어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 이렇게 가는가, 한 번 봐주고 두 번 봐주니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어졌는가?

바늘도둑을 소도둑 만든 사람은 안 봐도 주변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용서라는 이름으로 작은 죄인을 큰 죄인 만든 겁니다. 죄 지은 사람과 주변에 부추긴 사람 둘이 공범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부터를 잘 읽어보면 출애굽기 21장부터는 거기에 대해서 또박또박 적었고 그냥 성경을 창세기로 그냥 그만 읽어봐 보시면 압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하나님은 응징의 하나님입니다. 다른 사람 죄 짓고 실수할 때 다독거릴 때는 하나님은 나처럼 용서하면 되지 하나님은 뭐 팥쥐 엄마처럼 말이지 독한 독재자처럼 하나님은 사랑이 없는 아주 혹독한 괴상한 신이다, 세계 역사에 하나님을 그렇게 욕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를 꼭 찍어내면서 여호와 하나님 이거는 가짜배기 하나님인지 귀신이 이름을 바꿔 쓰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게 신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여튼 여호와 그거는 영 못 쓰겠더라, 세계 신학이 이거는 주류로 틀어쥐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그 놈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귀신인지 사탄인지 사랑의 하나님인지 아무리 봐도 그건 못쓸 하나님이다, 제명을 해버려야 된다. 세계 신학의 주류가 이쪽에 가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오늘 아침 또 한 번 내 속에 약한 걸 아니 뭐 그냥 돈이 없으니 나는 서민이다. 서민이라는 말이 그게 참 나쁜 말인데 나는 돈을 못 벌였으니 서민이다. 서민은 양민이다. 양민은 피해자다. 그래서 이 서민, 양민 이 피해자 이 사람 말고 천하는 다 죄인이다. 귀신이 야물게 들어간 겁니다.

제가 길을 가다가 넘어지면 시청에 도로과 직원들이 돈이나 떼먹고 말이지, 내가 여기 길을 가다 넘어지도록 이렇게 도로 관리를 엉망으로 하고 시장과 공무원과 여수 시민 25만 명은 전부 가해자고 넘어진 나는 억울한 피해자다, 엉엉 울고 앉았으면 다른 골목에서 넘어진 인간은 또 나를 보고 욕하는 거 아닌가요? 천하에 넘어진 사람은 전부 다 나 욕할 거 아닌가요?
하나 계산해 보면 아 이 놈은 귀신이 말 한마디로 천하를 다 삼키는구나, 이거 부모 일찍 잃어 홀로 큰 사람, 계모 밑에 피해 받은 사람, 장애 있는 사람, 게으른 사람, 죄인들이 모여서 하는 짓들입니다. 못 나도 그러는 거 아닙니다.

길 가다 넘어졌으면 눈을 뜨고 다녀야 되겠구나, 그러면 다음에는 안 넘어질 겁니다. 남이 넘어졌을 때는 눈 뜨고 다니면 좋을 걸 나처럼 방심을 했는가 보다, 저 사람이 잘못 생각하면 자기는 넘어졌으니 피해자고 25만 여수 시민은 전부 지옥을 가야 된다고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이 안 들고 눈 뜨고 바로 걸어 길이 울퉁불퉁해도 넘어지지 않는 내가 되는 것이 나와 나의 가족의 행복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 이거 유치원에서도 가르칠 만한 일입니다. 초등학교부터는 1학년부터 그거는 배워야 될 겁니다. 네가 길을 걸어가다가 넘어졌다, 25만 명을 처형을 해버려야 된다, 초등학교 1학년을 길바닥에서 뒹굴게 하다니 이런 아동학대가 있나, 이런 희망 없는 인간들은 전부 다 없애버려야 된다, 여수 시민 중에 하나 넘어질 때마다 25만 명씩을 다 처형을 하라는 말인데 이거 누가 주장하는지 다 아십니까? 대부분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사고방식이 그럴걸요?

주일 오전 예배가 10시인데 갑자기 9시 반에 시작하는 바람에 30분이 늦었다면 교회는 기본적으로 30분 전에 나왔어야 되는 건데 30분 앞당긴 것에는 기본적으로 내가 지각이 없어야 되는데 참 내가 부족하다 그런데 내 건강과 가족 형편이 그러니 참 그렇다, 어쨌든 세상은 변할 수 있고 또 연락을 한다고 해도 연락이 안 될 수 있으니 다음에는 늘 교회에 변동이 있는가 귀를 기울여야 되겠구나. 이러면 당장 그 교회 주인 됩니다. 목사 위에 올라 앉습니다.

나 하나만 쏙 빼고 저들끼리만 쏙 빼먹고 나를 이렇게 쏙 돌려놓고! 머릿속에 이게 딱 들어오는 순간에 천하 귀신은 자기 머릿속에 다 집어넣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 해결하는 법은 없습니다. 성경의 해석이 그렇고 성경 전부의 기록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기 지혜와 자기 원리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루를 사시고 어떻게 매일을 사십니까? 걸렸다면 하나님과 천하 인민을 전부 욕만 하고 사는 사람 부족할 때마다 아 내가 아직도 좀 부족하구나, 그리고 자기의 약한 점, 자기의 병든 점, 자기의 잘못된 점을 찾는 사람, 옛날로 갈수록 자기를 돌아보며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놨습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으니까 이제는 75억이 들어가지고 전부 75억을 처형하라고 울고불고 생난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의인은 70억, 80억이 전부 다 서로를 원망하지만 난 내 부족부터 찾는다, 그러면 그 사람은 노아 홍수 때 노아와 같은 의인이 됩니다. 노아 후손되기 쉽지요? 주님과 한 편 되어 말세의 하나 남은 의인 되어지는 거 참 쉽지요? 쉬운 듯해도 이제 막상 당해봐야 내속에 그런 정신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게 됩니다.

지도를 보면 대한민국 제일 남쪽 서울과 제일 먼 우리를 향해서 보통 소외계층이라 그럽니다. 알고 보면 서울을 향해 진군할 때 가장 기초를 닦아 서울까지 가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쌓아 흔들리지 않는 천하 출세의 제일 좋은 밑바닥이라 생각하면 이런 좋은 데가 없습니다. 항상 양면을 가지고 나를 더러운 데서 지켜내고 내 병을 내가 고쳐 건강하고 힘없어 식어 지고 후퇴하는 나의 믿음을 한 번 두 번 반복하다 보면 그만 다 해결이 된다는 거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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