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10.2 왕상7:47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의 기능들, 신앙의 실행으로 하나씩 갖추고 길러갈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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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월새

제목 :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의 기능들, 신앙의 실행으로 하나씩 갖추고 길러갈 요소들

찬송 : 106장(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본문 : 열왕기상 7장 47절 -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다 달지 아니하고 두었으니 그 놋 중수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

(기도)
이 아침도 새날로 주시고 영생을 오늘 하루에 모아 이 하루에 준비한 대로 영원한 나라가 영원토록 이어질 걸 소망 속에 가지고 어떤 현실을 주시든 말씀으로 나를 고치고 걸어가는 우리 교인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연휴에 방심하지 아니하고 세상은 방종 방탕으로 가나 우리는 주를 향하여 더욱 긴장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귀한 기회가 되도록 마음 마음 붙들어 주시고 여러 곳에서 오고가는 모든 교통, 모든 안전, 우리가 부족하므로 더욱 고쳐야 될 것이 있어 생존의 은혜를 허락하여 연로한 종들에게는 끝까지 기도와 소망을 잃지 아니하고 이어지는 신앙을 위하여 주님 앞에 애절한 때가 되도록 함께하시며 살날이 많아 보이는 이들에게 많은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마지막임을 깨달아 보배롭게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이 아침도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성전의 본관, 다락, 현관 입구에 들어오는데 놋제단, 놋기둥, 물두멍들이 눈에 얼른 들어오는 주요 시설들입니다. 신앙으로 말하면 주일과 예배와 십일조의 연보 생활과 전도, 심방, 성경 읽기와 같은 성도의 5대 의무 첫째는 주일과 예배입니다. 둘째는 성경과 실행입니다. 세 번째는 기도와 주님 동행입니다. 네 번째는 전도와 심방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연보와 물질생활들입니다. 이런 아주 중요한 성도의 5대 의무다. 믿는 사람은 기본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큰 저수지의 물을 집 채 만 한 돌들이 막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큰 돌은 물을 막는 데 쓰는 것이 아닙니다. 큰 돌과 돌 사이에 진흙과 흙 같은 것이 물을 막습니다. 큰 돌은 큰 댐에 하는 일이 뭘까요? 큰 돌들이 버텨줘야 그 사이사이를 흙이 막아서 물을 담아주는 겁니다. 집 채 만 한 돌들이 소양강 댐을 막아준다 해도 돌과 돌 사이에 진흙 이걸 빼버리면 물은 다 빠져나갑니다. 신앙생활에 주일이 무너지고 신앙생활에 성경에 바른 교리가 잘못되면 이거는 뭐 이단이 되거나 신앙 자체가 다 내려앉아버립니다. 그래서 나무로 말하면 큰 뿌리가 나무를 태풍에도 버텨주고 천년 가는 나무들은 천년을 버텨줍니다. 땅 밑에 큰 뿌리가 버텨주는 거는 맞는데 큰 뿌리에서는 음식, 양식, 영양 보급이 되지를 않습니다. 큰 뿌리는 비바람에 버텨주고 버텨주는 큰 뿌리 옆에 붙은 머리카락 같은 작은 뿌리가 물과 영양분을 빨아 나무를 무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신앙도 신앙의 크고 중요한 것이 신앙을 옳고 바르게 걸어가도록 버텨주는데 그 사람의 신앙의 기쁨과 소망과 성장과 발전은 일상생활의 소소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실행 작은 것에서 이루어집니다. 바리새인의 실패는 바리새인의 뿌리, 깊고 튼튼한 나무뿌리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이걸 지키다 보니까 잔뿌리를 다 잘라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는데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지켜냈는데 그게 틀린 게 아닙니다. 순간순간 찾아오시는 주님 그 주님이 기도 속에 함께하다가 그 주님이 사람이 되어 오니까 못 알아보고 죽여 버렸습니다.

공회의 노선과 역사와 뿌리와 모든 기본은 이만하면 괜찮습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보다 나은 것은 아직까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행위를 우리의 생활을 우리의 신앙을 자라가게 하지 못합니다. 건물로 말을 해도 튼튼한 기초와 뼈대만 있으면 짐승이나 살고 새들이 살지 가정생활이 되겠습니까? 아파트에 사는 분들이 도배장판 보고 살지 그 안에 있는 뼈대는 만나보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뼈대 골조가 튼튼해야 도배장판이 안락하게 아이들까지 포근한 가정을 만들어 줍니다. 구약의 성전도 성소, 지성소, 현관, 낭실 전부가 성전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떡상이 있습니다. 이 밖에서 안 보입니다. 떡상의 떡을 신앙의 양식으로 먹어야 힘이 나는데 양반 족보가 사람 먹여 살립니까? 양반의 족보라는 것이 과거 시험을 보게 하고 남들이 함부로 치지를 못하게 하고 자기를 지켜주는 좋은 기회는 되나 세끼 밥을 먹어야 배부르게 살아가는데 양반 혈통 뼈대에다 대고 세끼 밥 먹을 돈이 없고 밥그릇이 없으면 양반은 안 먹고 삽니까? 굶으면 죽는 거지. 성전의 모든 시설은 죄를 지은 죄인 또는 주님의 뜻대로 자기를 헌신하고 싶은 이런 번제, 화목제의 소나 양을 끌고 가서 이걸 이렇게 태권도로 죽이겠습니까? 뜯어서 토끼 잡듯이, 토끼야 뭐 손가락 열 개로 어떻게 하면 되겠지만 소나 양을 끌어다가 이걸 죽여야 되면 칼이 있어야 됩니다. 또 갈고리가 있어야 걸어놓고 난도질을 합니다. 이런 칼 이런 칼 옆에 있는 갈고리 이런 갈고리 같은 것은 에스겔 성전 에스겔 40장에는 가면 세부적인 것이 또 나옵니다.

출애굽의 25장 성막, 열왕기상 5장의 솔로몬 성전 에스겔 40장의 에스겔 성전을 비교를 해보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처럼 이면 저면을 가르치며 깊어지도록 잘 절묘하게 이렇게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에는 담과 대문과 문지기와 갈고리만 말하자면 적어놓은 정도입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칼 갈고리 송곳 같은 이런 소소한 작은 물품은 적지를 않았습니다. 그건 다른 데 보면 잘 나오니까. 떡 상이 가로세로 얼마냐, 나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성막에 보면 가로세로 규격이 잘 나오고 생긴 모양 터까지 전부 다 나옵니다. 그래서 성막과 솔로몬 성전을 겹쳐봐 보면 솔로몬 성전에서 기록한 내용에 성막에 있었던 내용을 그대로 올려놓고 이것이 앞날에 에스겔 성전으로 자라갈 이상적인 소망까지 겹쳐보면 이거는 입체적으로 모든 것이 그림이 딱 나와 버립니다.

오늘 아침, “솔로몬 성전 안에는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출애굽기 25장에 성막의 기구는 일일이 다 적었습니다. 다 적어봐야 헤아리면 헤아리지 못 헤아릴 정도는 아닙니다. 솔로몬 성전은 큽니다. 성막에는 등대가 하나고 떡 상도 하나였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등대가 열 개고 떡 상이 열개입니다. 열 배가 되어 집니다. 여기에 필요한 큰 대접, 작은 주발 이 정도만 적어놨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도구 기구들이 따라가야 됩니다. 오늘 신앙생활에도 집회가 필요한가? 또 월요일 날 연세 많은 분들 성경 읽기가 필요한가? 또 중간반 학생들 매일매일 성경 읽는 걸 물어봐야 되겠는가? 적어야 되겠는가? 백 목사님 생전에 반사들 일주일에 기도 몇 번, 성경 몇 번 일일이 다 적었습니다. 아니 뭐 골목에 가면 백 명, 이백 명씩 끌어다가 예배당에 쌓아놓는데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중학교 1학년짜리가 한 50명, 60명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서 예배당에 앉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어제까지는 초등학교 6학년이니까 주일 학생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 돼가지고 50명 60명을 군인들처럼 딱 세워가지고 걸려서 30분 걸어서 예배당에 앉히는 정도 이 정도니까 출석 8천 명에 제적 2만 5천 명의 세계 최고의 기록이 나왔고 오늘 생각하면 그거 뭐 전설이고 신화 같은 이야기가 돼버렸습니다. 반사 한명이 50명, 백 명, 2백명을 앉혀놓는다, 일주일 동안 성경을 몇 장 읽었는가? 그 힘으로 데리고 온 아이들은 이거는 전도가 되고 심방이 되고 한 주간 한 잔씩 먹어가며 놀아가며 나는 원래 아이들을 데리다가 놀러도 데리고 댕기고 여기도 다니고 저기도 댕길 수 있는데 또 이번에는 내가 교회 데리고 오면 교회에 데리고 오면 오는 거지.

이렇게 아동 인솔 인도에 특화가 돼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다 놓는 것은 교회로는 전체 숫자 중에 일부가 되지만 주님은 넌 술 먹는 친구도 많이 데려다 놓고 강아지 있는 데 가면 개들도 네 친구가 되고 어디든지 가면 너는 사람이 몰려다니고 끌려 다니는 그러한 인성이 좋아서 그런 거냐? 우선은 아이들을 많이 데려다 놓으니 신앙 있는 반사처럼 보이나 그 신앙의 내면을 주님이 들여다볼 때 넌 뭐냐? 매일매일 읽는 성경이 말씀이 되고 그 말씀을 읽을 때에 각오가 되고 회개가 되는 기도가 모여지고 이런 세계를 모르고 골목에서 세월을 보내는 이 불신자들 이 지옥을 향하는 아이들을 부모의 전도는 어려우나 아이들은 내가 마음먹으면 되니까 하나님이 손끝에 메어주셨으니 데리고 와야 되겠다, 이런 대속의 사명이 있고 말씀의 양식이 있고 기도의 지난날과 비교해 보는 이런 각오 결심을 성령이 감화와 감동으로 주셔서 이것이 한 주간 이어지다가 토요일 오후 기회가 될 때 아이들이 많은 골목에 가서 달래고 인도하고 끌어다가 놓고 가르쳤느냐? 신앙 없는 사람들이 체질적으로 아이들을 잘 몰고 절에도 갈 수 있고 놀러 갈 수도 있고 학습지를 돌릴 수도 있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데 또 예배당도 데리고 왔는가, 이런 성경, 기도, 회개 그리고 신앙의 은혜가 열매로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심어놨는가 이거는 세월 속에 봐보면 무엇으로 심고 무엇이 열매가 맺었는지는 그 판단하는데 그렇게 쉽지 어렵지를 않습니다. 사람을 단면을 보고 당장을 보고 아는 것은 안다고 해도 알기가 어렵고 세월 속에 딱 봐버리면 이거는 뭐 그냥 묘목 보고는 몰라도 가을에 감이 열리면 감나무인 거고 사과가 열리면 사과나무고 그런데 묘목을 심었을 때 이게 뭔 나무인가 그건 전문가 아니면 알기가 어렵습니다. 맺힌 열매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쉽습니다.

70년 전 80년 전 이 나라 해방되고 첫 출발할 때 북쪽이 맞는가? 남쪽이 맞는가? 헷갈려 가지고 그냥 간단하게 최고의 지성인이 양심까지 있으면 북쪽으로 다 튀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게 옳습니다, 백도광 장로님이 해방 직후에 서울 대 법대 다닌 분입니다. 그분 말씀이 그래요. 전부 빨갱이라고, 서울대 연고대는 거의 좌파로 보면 되고 그중에 과 좋은 과들은 전부 다 골수 빨갱이들이라 목숨이 위험할 만큼 분위기가 그랬답니다. 625 전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들어봐도 남쪽과 북쪽을 나란히 비교해보며 이건 뭐 그냥 답이 딱 나오는 겁니다. 북쪽이 옳고 이거는 남쪽은 안 되게 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그때도 눈치 있는 사람은 아, 한 집에도 한 동네도 한 가족끼리도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은 뭔가 뒤로 빠지니 결국은 안 좋은 거고 제거 저 먹으라면 뭐 이거는 다 생존 경쟁에 있는 최선을 다하니까 인간은 이게 옳은 것 같은데? 그때도 눈치 있는 사람은 있었고 일반적으로 보면 전부 다 북쪽이 옳아서 그렇게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5년 하고 나서 전쟁 터지니까 남쪽에서 북쪽으로 피난 간 사람들은 스파이들, 암약하던 좌파들만 올라갔고 일반 백성들은 모조리 다 내려왔습니다. 5년 살펴보니까 거의 나온 겁니다. 오늘은 올라가라고 국경을 저렇게 내려놔도 한 인간도 올라가는 인간 없습니다. 이 나라 머리가 제일 좋은 사람들이 70년, 80년 전 해방 직후에는 전부 북쪽이 옳다고 다 그랬습니다. 이런 걸 보고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도 감리교가 옳으냐? 침례교가 옳으냐? 이쪽이 옳으냐? 저쪽이 옳으냐? 당장에 단번을 보면 얼굴을 보고 친절을 보고 당장을 보면 알기가 어려우나 그것도 자세히 보면 알 수는 있어야 되고 아주 확실한 것은 10년의 세월, 50년의 세월, 100년의 세월 세월로 쫙 훑어봐 보면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해도 그건 뭐 그냥 다 표시가 나는 겁니다. 전도관 박태선 시작할 때 천국이 다 들끓었습니다. 지금 신천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지금 전도관 가는 사람 없지요? 통일교 시작할 때 저 이화여대 여대생들 주로 붙들고 시작한 겁니다. 전부 그 집에 첩 떼고 다 그랬지요? 지금은 돈벌이 때문에는 가도 거기 가는 사람 없습니다. 결국은 세월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세월의 심판으로 하나님이 절대 주권 예정하지 인간에게는 맡겨놓지는 않아서 그래서 늘 세월 속에 흐름으로 살펴보고 또 동시에 오늘하고 두 개를 합하는 겁니다.

성전도 눈에 보이는 큰 건물 큰 시설도 당연히 중요하고 문 안에 들어 있는 떡 상, 그 떡 상 위에 올라가는 떡 그거 뭐 하지요? 그걸 먹어야 신앙의 힘이 나고 힘이 나야 실행을 하는 겁니다. 떡 상 맞은편에 있는 등대, 등대에는 등잔이 있고 등잔에는 기름을 켜고 불을 킵니다. 그럼 그을음이 생기고 이걸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도록 심지를 관리를 해야 됩니다. 옮기는 기름통도 있어야 되고 따르는 것도 있어야 되고 거기에 먼지도 털어내야 되고 그래서 숟가락도 필요하고 불집게도 필요합니다. 놋제단에는 큰 불집게가 필요하고 등대 위에 등잔의 불관리는 젓가락처럼 작은 불집게도 편리하고 별의별 도구 기구가 다 있는데 성전의 성소, 지성소 돌과 백향목이 중요하다, 이거는 뭐 열왕기상 5장 6장에서 많이 배웠으니까 두 말할 것이 없는데 그 성소 지성소 안에 있는 떡 상이란, 향단이란 떡 상 위에 떡과 향단 위에 향이란 그건 멀리서 보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걸 관리하고 그걸 굽고 그걸 태우고 그걸 손을 보는 데 필요한 별의별 기구가 다 있었더라, 그거 없으면 성전은 뼈대 골조만 있지 도배장판 벽 창문이 없는 아파트 꼴 납니다. 아파트에서 창문 다 떼놔 봐 보십시오. 아파트에 현관 문짝 떼고 현관 창문에 유리창 떼고 도배장판 다 떼버리고 보일러 스위치 다 끊어버리고 전기선 다 스위치 고장 내버리고, 못 사는 겁니다. 스위치가 들어, 보일러 스위치가 들어, 가스레인지 스위치가 들어서, 현관에 있는 도어 록 스위치가 들어서 곧 눈에 보일락말락한 작은 스위치 스위치 스위치가 들어서 온 아파트가 지상낙원을 만드는 겁니다. 뼈대 골조도 필요합니다. 이게 있어야 버팁니다. 그리고 이 속을 아기자기하게 돌려놓고 돌려놓는 것이 있어야 이게 품 안에 앉고 천국을 천국답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는 “기구가 심히 많았더라”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의 기능들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의 사상들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의 하루하루가 내 속의 말씀으로 기도로 실행으로 나를 꺾고 고치는 것이 얼마나 가득 찼느냐, 이게 있어야 신앙입니다. 신앙의 원리는 단순하나 신앙의 실행으로 하나하나 갖추고 길러가는 것은 무수해서 다 헤아리지도 못하겠고 다 척량을 못 하겠더라, 다 그 놈의 무게를 달수가 없었더라. 아이 하나 기르는데 엄마의 그 관심, 그 사랑, 그 애정, 그 아이 아플 때 고통스러운 게 얼마나 많았을까 그걸 달수가 있습니까? 아이 하나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졸업장 한 장 가져올 때 졸업장 하나를 위해서 365일 곱하기 6년을 학교를 다녔을 것이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들은 매일매일 싫은 공부를 하러 갔으니 그것도 졸업장에 담긴 눈물과 억울함이 한도 없습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아내가 아내 노릇하느라고 쏙 썩은 것이 얼마며 그 무게를 달수가 없다고 여자들이 이 난리를 하는데 남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속에 느낀 그 부담감은 이건 또 달수가 있습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두고 갈 땅의 것도 남모르게 혼자서 애먹은 것을 달려면 달기가 어려운 건데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제대로 신앙을 해보려고 말한다면 그 마음고생, 그 의무, 책임의 무게라는 것은 한량이 없는 겁니다. 갯수로 봐도 무한해서 헤아리지를 못하고 달려고 해도 달 수 없는 이런 주일, 이런 하루, 올해 1년 이런 시대에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우리의 모든 자세 두 개를 겹쳐서 기억하셔야 됩니다.

두 달간 공부한 솔로몬 성전의 모든 공부는 중요한 거, 골조 되는 거 굵직굵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47절부터 51절까지는 수도 없는 기구가 있었더라, 그리고 몇 가지만 예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자기를 그려낼 수 있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신앙의 하루 안에는 애타는 기도가 열 개가 들고 백 개가 들어 있어야 됩니다. 또 그 기도 하나 속을 들여다보면 헤아릴 수도 없는 무거운 그 중압감, 책임감, 애절함이 또 있어야 됩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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