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12.8 유1:4 하나 될 수 없는 두 길에 어색없는 비위생 신앙, 암초처럼 자기 멸망은 시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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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3.12.8 유1:4 하나 될 수 없는 두 길에 어색없는 비위생 신앙, 암초처럼 자기 멸망은 시간 문제

관리1 0 42 2023.12.09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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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금밤

제목 : 하나 될 수 없는 두 길에 어색 없는 비위생 신앙, 암초처럼 자기 멸망은 시간문제

찬송 : 117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본문 : 유다서 1장 4절 -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좋은 것이 너무 많아 하늘을 향하여 마음껏 달려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나이다. 영원 전 목적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으므로 영육의 넘치는 기회를 허락해 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하나이다. 넘치는 이 은혜는 세상을 향할 때 홍수심판처럼 이제는 영원히 불태울 영원한 후회를 겸하고 있사오니, 좌우 선택 중에 복된 선택하는 이 밤에 저희들 되도록 어려도 바빠도 또 노년의 종들까지도, 군무에 있는 아들들 입원 요양 해외까지 두루 살펴 그 어떤 주변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한 길만 오로지 변치 않고 걸어가는 이 밤에 저희들 되도록, 곳곳에 세운 우리 공회 강단들 함께한 교인들 되게 하시고 주신 사명 인하여 곳곳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마음을 모으며 소망 중에 있는 우리 온 교인들, 마음을 열고 감사하며 걸어갈 수 있는 기쁨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시대적인 큰 환란이 다가올 때 개인이 막고 도망가고 어떻게 방법을 찾을 수가 없을 때, 자연의 대 환경 국가나 시대적인 대 환란 하나님이 하늘에서 홍수 심판처럼,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그런 재앙과 어려움을 주신다. 그렇게 느낄 때마다 유다서를 마음속에 기억하십시다. 유다서 제목이라도 알고 있으면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살펴보면 되어 집니다. 6.25 같은 이런 환란을 두고 유다서를 살피며 준비한 것이 공회신앙의 73년 전입니다. 73년 전에 6.25 6.25 6.25 라고 그러는가. 불과 3년 전 2020년, 2021년, 2022년 바로 지난번입니다. 6.25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가 쓸어버렸습니다. 6.25 전쟁 이렇게까지 무섭지 않았습니다. 어 그럴까? 6.25 전쟁이 더 무섭지 않을까? 일반 사람들은 이놈이 잡으나 저놈이 잡으나 왜놈이 잡으나 고종이 잡으나 뭐 달라질 게 별로 있는가요? 나라가 뺏기면 안 된다고 떠드는 저 위의 것들은 여당으로 가냐 야당으로 가냐 일본 총독 밑에 살아야 되나 독립이 되나 달라지는데, 하루 세끼 밥 먹고 사는 신풍의 우리들은 저 위대한 지도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어디부터 해야 좋을는지 그거나 따져보지 뭐 그렇게 이 나라가 이리 가든 저리 가든 뭔 상관이 있습니까? 세끼 밥 먹고 그냥 살아가는데 별 지장 없으면 되지. 인민군 몰려온다 그럴 때 여수에 일반 서민들은 뭐 오면 좋은 거 아닌가. 공짜라는데 이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여수의 공무원 경찰하던 사람 군인 하던 사람들은 그 가족들은, 죄 들어오면 우리는 다 잡아 죽이는데 죽인다는데 공무원 군인 경찰 가족만 겁이 나서 난리였지 일반 백성들은 뭐 그렇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 역사의 진실이고 참 밝히기가 미안한데 미안한 진실이라 그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아이 낳으면 여자는 죽어나지만은 시댁에서는 뒤로 웃고 있습니다. 이거 뭐 아이 낳다가 죽으면 애는 챙기고 여자는 또 하나 구하면 되는데. 옛날에는 여자가 그렇게 흔했습니다. 요새는 딸 가진 부모가 뭐 그냥 뭐 자기 원하는 대로 그냥 좋게 살지 남의 아들 난리가 나든지 말든지 뭐 상관있습니까? 이런 걸 불편한 진실이라 그럽니다. 뻔히 알면서 그냥 쭉 덮어놓고 모르는 척하는데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데려가든 일본이 우리나라를 데려가든 전주 이 씨가 이 나라의 왕을 하든, 이 사람이 대통령하든 저 사람이 대통령 하던 날 센 사람은 신풍에 살아가는데 지장 없을 거고, 또 나라에 따라 더 잘 먹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잘 먹게 해줘봐야 욕은 대배기로 할 건데 잘 먹으면 욕은 더 할 건데. 그래서 두고 갈 세상이라는 것은 그렇게까지 뭐 이리 붙으려고 저리 붙으려고 그렇게까지 용쓸 필요가 없고, 그냥 이러고 저러면 좋겠는데 정도 쳐다보다가 되면 다행이고 이게 뒤집어지면, 또 배가 이제 이렇게 휘청하면 이쪽으로 붙어야 살고 또 이쪽으로 배가 기울어지면 얼른 이쪽에 붙어야 사니까, 눈치나 보면서 슬금슬금 그리 사는 걸 서민이라 그럽니다. 양민, 서민, 국민, 백성이라는 것은 눈치 보고 사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비겁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못 났는데 비겁하게 살지 못난 사람이 어떻게 잘나게 살 겁니까? 근데 아래 위 할 것 없이 시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다 끌어 엎어버리는 환란이 올 때는 이럴 때는 믿는 사람은, 유다서를 기억하고 한번 읽어보면서 이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고 과거에 배운 것 중에 기억나는 걸 쥐면 살아날 열쇠를 쥐는 겁니다. 여수에 전 국민을 상대로, 여수의 전 시민을 상대로 6.25보다 코로나 2년이 더 무서웠습니다. 그것도 환란이라고 뭐 애들 장난인 거지. 세상사람 휘청거리는데 따라 휘청거리지 말고 우리는 믿는 사람이니 한 길 믿어 가는 길에만 집중하십시다. 유다서.

3절에 너희에게 편지까지 적어 꼭 말하고 싶은 뜻이 간절하던 차에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거라. 힘써 싸우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힘써 싸우라 이렇게 기록한 게 유다서 편지입니다. 편지로 기록을 해 주셔서 2천 년 지나도록 지금도 이 기록이 남아 있고 이 밤에 또 한 번 읽는 겁니다. “힘써 싸우라” 부부 싸움하라 그런 말 아니겠지요. 형 동생 밥상에서 싸워라 그런 말 아니겠죠.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현실마다 하나님이 한 번의 기회만 주십니다. 그 한 번의 기회를 붙들려면 옆에서 못 붙들도록 흔들 때 버텨내는 싸움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되는 겁니다. 4절 이후에 쭉 설명을 해오면서 제일 가까이 절입니다. 11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천벌을 받아야 되는 사람을 세 종류로 간단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쫓겨나서 인류가 첫 생활을 할 때 가인이 아벨을 때려 죽였습니다. 인류 첫 살인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첫 살인 그 사람을 11절에 다 같이 누구라고 한다고요? 가인이라 그럽니다. 넌 가인이 아니지만 가인이 걸어가는 그 길을 걸어가면 너도 가인이지. 가인은 예배라는 걸 신앙이라는 걸 나 편하게 교회를, 나 좋게 예배를. 요즘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나한테 좋을까? 이게 바로 가인의 길입니다. 가인의 길에 서면 하나님은 형제를 쳐 죽이며 그 짓을 해야 되겠느냐 이 죄로 묻습니다. 나는 외동이라 때려죽일 형제도 없는데요. 넌 없는데 하나님 앞에 넌 그런 죄로 처단 받아야 된다.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두 번째 선지자 발람의 어그러진 길, 선지자는 선지자로 하나님의 뜻으로 가르쳐야 되는데 돈이 안 된다고 살짝 옆으로 젖혀버렸습니다. 약간 돌려버렸습니다. 요건 하나님은 원하는 길이나 돈이 되지 않으니 돈벌이 때문에 약간 우측으로 좌측으로 옆으로 바꿔버린 것이 발람의 어그러진 길입니다. “삯을 위하여” 돈이 돼야 설교하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어야 교회를 다니지. 벌어놓은 돈 마음껏 편하게 써야 된다면 이게 막 바로 다 삯을 위하여 하는 일인데 뭔가 대가가 있고 뭔가 뭐가 있어야 되는데 “삯을 위하여 발람 선지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그거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시켜서 처단해버립니다. 이건 사망이다. 이건 본전도 못 찾는다. 이렇게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가인이 걸어간 길, 두 번째 발람이 옆으로 돌려버린 빗길 곁길, 세 번째 “고라의 패역을 좇아”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는 사람을 뻔히 보여주시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는 그런 권위 그런 인도가 있는데, 그냥 쥐 박아버리는 것을 고라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패역이 되는 겁니다. 그건 나의 부모가 맞다. 나의 부모가 맞지만은 화딱지 난다고 쥐 박으면 넌 고라고 그 행동은 고라의 패역이다. 고라가 어떻게 죽었던가요? 고라와 고라를 따르는 250명 땅을 쩍 벌려서 전부 다 밑으로 봉해버렸습니다. 땅바닥 속에 들어가서 압착되어 죽은 것이 고라와 고라를 따르는 250명입니다. 이 땅 안에서도 가장 처참한 그런 꼴 되니 그러지 말아라. 이게 고라입니다. 세 가지 사람입니다. 가인의 길로 행하지 말아라.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가지 말아라. 세 번째 고라의 패역이 되면 아니 된다. 기억하셔야 됩니다. 나는 내 식대로 믿을 건데. 이게 가인의 길입니다. 돈이 돼야 믿지. 요리 되면 발람의 어그러진 길입니다. 옳긴 옳지만은 화가 난다고 쥐 박아버리면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 위를 향해 들쑤시고 부딪히면 고라의 패역이 됩니다. 셋. 그리고 12절입니다. “저희는” 이 세 가지 인간들은 우리 교회는 한국 교계는 누가 가인이며 발람이며 누가 고라인가. 이건 일단 좀 제쳐놓고 내 마음속에 가인과 같은 요소가 없는가. 다른 교회 가니까 의자도 극장 의자처럼 소파처럼 1인용 의자를 좋게 나와서. 비행기 다 타보셨죠? 비행기 안 타본 사람 이렇게 물어야 아마 쉬울 것 같은데, 비행기 안 타본 사람 손 좀 들어봐 보시죠. 아직도 한 서너 분계시네요. 네댓 분. 그 장난감 그거 위험해서 안타는 게 좋습니다. 그거. 누가 비행기 티켓 주면 돈으로 그냥 카드깡 반반 나눠먹기 하자. 이래서 그 돈 절반으로 비행기 쪽은 안 가는 게 그게 좋을 겁니다. 멀미나고 겁나지 않던가요? 모르고 한 번은 타도 그 두 번 탈 거 안 됩니다.

신풍 우리 시골에 비행기 안 탄 사람 서너 명. 뭐 이 정도면 그냥 지상 낙원 다 된 거죠. “저희는” 가인과 같은 사람, 발람과 같은 사람, 고라와 같은 사람 이 세 종류의 신앙 그런 마음이 내 마음속에 있거든, 자기 속에 자기를 얼른 들여다보셔야 됩니다. 이게 더 좋지 않을까 저게 더 좋지 않을까? 요즘 예배당 의자가 비행기 저 비즈니스 클래스에 좋은 의자 같은 의자를 예배당에 다 깔아놨던데, 우리 교회도 연보 많은데 그냥 의자를 다 소파로 바꾸면 어떨까? 너한테는 좋겠지. 근데 네 양심한테 물어 보거라. “삯을 위하여 발람에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돈 되면 다 몰려갑니다. 고라가 되는지 안 되는지 발람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고. “저희는” 내 속에 그런 요소가 있는지 늘 살펴봐야 됩니다. 신앙을 내 좋아하는 식 나는 친구 서너 명이 앉아 예배 보면 좋겠다. 나는 막 수백 명이 모인 데 가서 대장 노릇 하면 좋겠다. 나는 시내 가면 좋겠다. 나는 도심에서 돈 벌고 주말은 저 시골에 가서 전원생활하며 식당도 전원 식당, 예식장도 전원 예식장, 교회도 그러니까 이제 전원 교회. 이런 식 저런 식 이런 식 저런 식 사람마다 이런저런 꿈은 꿀 수 있으나, 주님이 어떤 식을 원할까 요래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면 가인의 길을 떠난 사람이고 나는 이런 식이 좋은데 저런 식이 좋은데 이걸 밀고 나가면 가인의 길에 선 겁니다. 우리 교회도 예배 때마다 그냥 갑갑한 강의만 하지 말고, 흩어져 끼리끼리 뭐 다과도 하고 놀러도 가고 이러고 저러면 훨씬 화기애애하고 교회가 부흥 발전되지 않겠느냐. 참 많이많이 들었습니다. 많이많이 들었는데 네가 좋아하든 내가 좋아하든 누가 좋아하든 그건 다 접어놓고, 교회는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좀 물어보며 어느 것이 더 좋은 걸까. 그러면 가인의 길을 피한 거고, 나는 좀 나 많은 사람들은 교회 못 오게 하고 젊은 사람들만 북적거리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는 방법은 이렇게 저렇게 방법이 많습니다. 이런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은 가인 식으로 믿자는데 그건 망하는 거다. 안 좋은 거다. 내 속에 그런 것이 있으면 내 속에 돈을 벌고 돈을 쓰는 데 좋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이 있으면, 내 속에 하나님이 인도하는 지도자를, 하나님이 인도하는 윗사람을, 하나님이 주신 부모의 죄 되지 않는 부탁을, 내 속에 쥐어박음이 전부 다 고라의 패역입니다.

“저희는” 12절에 “저희는” 가인 같은 내 마음, 발람 같은 내 신앙, 고라 같은 내 성격이 있으면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저희는 고라 발람 또 가인 같은 그런 요소고 “너희와 함께 먹으니” 좋은 너희 요 너희는 1절부터 보면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님의 그 대속을 성령이 지켜,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서 인도하는 그 마음은 이게 너입니다. 옆으로 벗어나는 것은 죄입니다. 두 패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두 파가 있습니다. 넌 내 편이냐 아니냐. 넌 이파냐 저파냐. 아이 그런 거 따지지 말자. 그거 따지지 말자는 쪽은 전부 도둑놈들입니다. 애국자 반역자 우리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살자. 너는 매국노구나. 도둑이냐 경찰이냐 그런 거 따지지 말자. 너는 도둑이구나. 이렇게 판단하는 겁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내 마음속에 두 인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신앙이 있습니다. 난 이렇게 믿고 싶은데 내 양심은 그게 싫고 이렇게 해야 되겠는데 이런 마음이 내 한 사람 속에 있으면 저희와 너희가 함께 먹으니, 밥상의 밥은 입으로 한 사람이 먹지만 내 속에 신앙의 힘은 죄 짓는 힘, 의의 힘은 늘 싸웁니다.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여당끼리 모여 야당 욕하는데 야당 국회의원이 하나 들어있으면 막 들볶아서 영 밟을 겁니다. 또 야당끼리 모였는데 여당이 하나 가 놓으면 막 밟아버릴 겁니다. 형사들이 10명 식사하는데 도둑놈 하나 들어갔다 설쳤다가는 그 자리에서 맞아 죽을 겁니다. 제아무리 경찰이라도 뒷골목 깡패 소굴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영 밟혀 죽을 겁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신앙의 세계에 신앙으로 먹는 신앙의 양식, 신앙의 힘은 뭘까?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다 같이 이게 성경에 어디에 있지요? 요한복음 6장 55절.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대신 죽고 부활하여 고생을 하셨으니 이 생각을 하니 내가 좀 힘을 내고 믿어야 되겠다. 이게 신앙의 양식입니다. 주님 피 흘려 다 바쳐 나를 구원했으니. 아니 그러면 내가 대충 믿어서 안 되겠구나 이런 각오 이런 결심 이런 신앙의 실행은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 양식인데, 이런 걸 배우는 게 예배인데 이런 걸 설명 듣는 게 설교 시간인데 그리 살게 해달라고 애 터지게 부르짖는 게 기도인데. 이렇게 살겠습니다. 각오가 찬송이고 감사가 찬송인데 주님으로 힘 있게 살아보겠습니다. 이게 신앙의 양식인데 신앙으로 힘을 얻는 건데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설교 듣고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속으로는 내 방식대로 하면 좋겠는데 이것만 찾는 겁니다. 찬송가가 우리나라에 흔하게 다 같이 쓰는 게 만 곡이 넘는답니다. 찬송이 만 곡이 넘는데 만 개 중에 이런 걸 불러야 젊은 애들이 좋아할 건데. 고라식, 가인식, 또 발람식 안 따지고 그냥 이게 좋은데 저게 좋은데 신풍은 시골이지 목사 35년 늙어서 맨날 했던 그냥, 그냥 찬송 몇 개만 가지고 또 하고 또 하고 잔소리를 갖다 저렇게 질기게 하니, 좀 새롭게 새롭게 젊은 사람 위해서 팍팍 바꿔 가면 이렇게 해야 발전이 되지. 그런 사람이 그런 마음이 내 마음에 함께 예배를 드리려 그러면 예배의 순서도, 설교의 내용도, 예배당 모습도, 마음에 안 맞는 게 억장이 무너질 겁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그런 마음도 있어 부모 때문에 형편 때문에, 나이 때문에 아직은 교회를 다닌다마는 이런 생각이 있다면 기탄없이 함께 먹는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애찬의 암초요. 암초라는 것은 망망대해에 배가 미끄러지듯이 잘 가는데 물속에 바위가 있어 박치기 하면 배가 갑자기 주저앉아버립니다. 이런 걸 암초라 그럽니다. 땅으로 말하면 지뢰를 바다로 말하면 암초라 그럽니다. 바다는 암초 땅에는 지뢰. 탱크가 가는데 탱크가 가는데 누가 뭘라 할 거냐? 탱크도 지뢰 밟으면 불덩어리 됩니다. 사람은 지뢰 밟으면 작은 거 밟으면 발목이 나갑니다. 큰 거 밟으면 여러 명 죽어버립니다. 지뢰가 나 지뢰 있다고 표시합니까? 감춰 있지 바다에 섬이 보이면 거기 누가 배를 몰고 갑니까? 부딪힐까 봐 피해가지.겉보기는 좋은데 물속에 기다린 암초가 잘 가는 배를 퍽 그냥 내려 앉혀버리는. 믿는 사람이 예배 시간에 신앙의 힘을 얻고 주의 은혜를 받아 세상을 힘 있게 믿어가려고 신앙생활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가인식 예배, 발람식 설교 또 고라식 행정, 교회 운영. 요게 예배당 안에서 암초가 돼서 이 배를 저 신앙을 이런 신앙의 노선을 주저앉혀버립니다. 내 속에. 교회도 좀 마음 맞는 몇 명이 따로 예배드리면 얼마나 은혜로울까 마음속에 한번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근데 성경을 읽어보니 마음 맞는 동호인 예배드리는 교회가 있던가요? 교회는 남녀노소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 함께 모일 때 교회라고 하고 예배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계시는 시골 동네에 온 가족이 설날에 오면서 60대 아들들만 와서 세배하고 가고 손주는 어디 갔냐. 아 얘들은 해외 갔습니다. 또 10살 생일잔치는 나 많은 할아버지 생일잔치 식당에 가면 남 보기 그래서 이 아이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에 그냥 떡 하나주고 주저앉으시라. 그러고 젊은 부부가 애만 데리고 쏙 빠져나갑니다. 이러면 가정은 아닙니다. 애들은 좋아하겠지 이러면 어른은 좋아하겠지. 가정이라는 것은 오늘 내일 손을 꼽는 나많은 이도 있고, 돈 번다고 부지런한 젊은 사람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애도 있고, 남반도 있고 여반도 있고, 돈 벌기 위해서 한 푼에 난리 나는 사람도 있고, 돈 펑펑 쓰는 뭐 같은 것도 있고, 이게 한 몸이 되어 얽혀 있을 때 가정이라 그럽니다. 가정이 전부 다 돈만 벌고 다 저것만 하고 다 남자만 있으면 그건 군대지 가정은 아닐 겁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별의별 게 다 모여야 이게 가정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사도도 있고 처음 믿는 사람도 있고 구경 온 사람도 있고 돈 벌러 온 사람도 있고, 별의 별 신앙이 다 섞여 한 몸일 때의 교회라 그럽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끼리끼리 동해로 또래 집단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주의 몸을 칼질하는 큰 죄가 됩니다. 교회마다 발전한다 소리만 나오면 청년부, 대학부, 무슨 부 다 쪼개서. 세상에 전도회조차도 1 전도회 2 전도회 숫자가 많아서 나눈 줄 알았더니마는 80 이상 여반은 1 전도회, 70 이상은 2 전도회, 20대들은 11 전도회. 많이 쪼갤수록 좋다 그러는데 많이 쪼갤수록 안 좋은 겁니다. 너는 너희 가정 그렇게 쪼갤 수 있겠냐 그러면 좋겠냐. 가정은 하나로 뭉치려고 난리를 하면서 예배당은 사시미를 떠? 못된 것들. 우리는 그러지 말자 그 뜻입니다. 다른 교회에 욕하는 게 아니라. 근데 그런 마음이 생길 건데 어떡합니까? 젊은 새댁 20대 3명 모였는데 80 할머니 하나 가면 아이 좀 알아서 빠져주시지 또 이런 데까지 오나. 그렇습니까? 젊은 20대 셋이 모였는데 80대가오니 이분을 모시고 뭔가 배울 게 있어 반갑게 모시고 끌어당기십니까? 저 있는 데서야 안 그러겠지마는 스스로 심판해 보시면 점수가 다 나올 겁니다. 일부러 그럴 것은 아니지만은 자연스럽게 그리 돼야 됩니다. 또 젊은 사람들이 싫다는데도 내가 들어가야 너희들이 복이 있다. 밀고 들어가는 노인네도 일찍 가셔야 되는데 너무 오래 산겁니다. 당신 젊을 때는 그랬나? 당신은 그랬을지라도 남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 이렇게 저렇게 좀 살펴봐야 됩니다.

화내는가요? 아니면 강조하는 건가요? 제가 헷갈려 그럽니다. 제가 화가 안 났는데 좀 강조를 하다 보면 왜 또 저분이 화가 나 가지고 저러는가. 그러는 분들이 하도 많아 그럽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 새로 나온 그 젊은 분도 오늘 그 교회 목사가 왜 성이 나가지고 왜 그럴까 뭔 일 있냐고 이렇게 물어보더랍니다. 열심히 강의하면 열강을 하는구나. 강의를 갖다가 진짜 잘하는구나. 이렇게 듣지. 따라 합시다. “애찬의 암초요” (애찬의 암초요). 전부 돈 모아서 벌어보려고 그러는데 아들 놈 하나가 도장 쿡 찍어 10년 벌어놓은 거 다 까먹는 게 가정경제의 암초입니다. 그런 게 가정교회의 암초. 온 식구들이 믿어보려고 애를 썼더니만 절 좋아하는 며느리 하나 턱 데려다가 퍼뜨려놓으니 온 집안이 이제 교회도 제대로 못 가겠습니다. 근데 이 친구가 돈도 잘 벌고 인물도 좋습니다. 따라 또 그냥 절로 가버리는 그런 집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걸 가르쳐 애찬의 암초다. 애찬의 암초다. 애찬이란 사랑의 식사라는 뜻입니다. 유월절 만찬이라는 뜻입니다. 성찬이라는 뜻입니다. ‘애’자가 ‘사랑 애’ ‘찬’자가 식사라는 뜻입니다. 사랑의 식사다. 둘이 연애하면서 외식하는 식탁을 말하느냐. 그 말이 아니라 주님 날 위하여 자기를 받쳐주시고 우리는 그 대속으로 바로 믿기 위해서 힘을 얻는 이게 사랑의 애찬입니다. 교회가 예배가 설교가 주님의 고난 감사해서 우리도 한번 노력해 보자. 잘 믿어보자. 힘이 들어도 이게 사랑의 식사입니다. 사랑의 잔치입니다. 예수 빼버리고 구원 빼버리고, 이번 주일은 어디로 가서 놀아야 좋을까? 이게 애찬의 암초입니다.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목자한테 양을 붙여놓으니까 양 잡아먹고 목자는 살이 빈둥빈둥 찌는데 양들은 빼빼 마르거나 아니면 다 식탁에 올라가 버렸습니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교인들이 신앙으로 좀 나아졌는가. 이리되면 하나님은 목자를 기뻐하십니다. 좋은 세상 자가용 끌고 좋은데 돌아다니면서 교인들의 신앙은 어떠한가. 이걸 보시는 주님 앞에 반사 구역장 또 저 먼저 믿는 사람들은 늘 좀 조심해야 됩니다.

한 50년, 100년 전이라 치고 며느리는 잘 먹고 번들번들 살이 찌고 돈 벌어오느라고 아들놈은 빼빼 마르고, 애들은 씻지도 않아서 아주 거지처럼 요래 있으면 시부모가 얼마나 그거 밉겠습니까? 그때는 뭐 들볶아서 그렇게 못 했지요. 남자는 돈 버느라고 정신도 없고 여자는 그 돈 가지고 쓰느라고 돌아 댕기고 애들은 여기에 맡기고 저기 맡겨서 난장판이고. 요즘은 그래봐야 여자가 정권을 잡았으니 그게 좋은 거라니 뭐 할 말도 없고. 요리 되면 친정 부모라도 개입해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난리를 해야 되는데 친정 엄마가 더 밀어 주고 있을 건데? 좋은 데 시집갔다. 이런 걸 야단치면 확 그냥 툴툴 털고 와버려라. 하늘에 하나님께서 너한테 맡겨놓은 신앙의 사람들이 신앙으로 얼마나 뜨거우면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러느라고 너는 얼마나 애를 쓰는가. 이리 되면 목자입니다. 목자한테 양 붙여놓으니까 양은 팽개치고 저만 먹고 배고프면 양 잡아먹고 양들은 빼빼 마르고 아니면 잡혀가고 아니면 목자 식탁에 올라가고. 이게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입니다. 요 목자 보내놓은 주인이 이놈의 목자를 갖다가 그냥 얼마나 괘씸할까요? 구약의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를 읽어보면 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이스라엘의 목자들 제사장 선지자 왕에 대해서 뭐 괘씸한 말씀을 많이 해놨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우리는 구름이 흔합니다. 이스라엘 중동 지방은 비가 없는 데입니다. 구름도 드문 데입니다. 비가 없어 애가 터지는데 저 멀리서 구름이 보이면 저 구름이 하늘의 은혜를 쏟아 줄랑가. 위에서 비만 오면 해결이니까. 근데 구름이 왔다가 그냥 지나가버리고 비 한 방울도 안 주면 물을 줄 것 같더니만, 은혜를 줄 것 같더니만, 뭔가 있을 것 같더니만 한 내끼도 없이 그냥 지나가? 그놈의 구름 욕을 할 거 아니겠습니까? “물 없는 구름이요” 하늘의 은혜를 전해주지 못하는 설교요. 그래놓고 이제 저는 이 설교하면서 마음마음 하나님 앞에 감동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의 감동은 없고 애 터지게 강의를 해 싸니 들어주기도 참 민망하고 애는 쓴다만 마음에 와 닿질 않아서 참 넌 말하느라고 애쓰고 나는 안 들려 애 터지고. 이게 이제 일반적인 설교입니다.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죽고 죽고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요” 나뭇가지를 꺾어보니 물기가 없습니다. 굵은 가지를 꺾어보니 물기가 없습니다. 큰 둥치를 잘라보니 둥치 안에도 물기가 없습니다. 저 뿌리까지 물기가 다 없습니다. 보니까 죽어버렸습니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요” 나무가 애를 썼지만 가을에는 열매를 맺어야 이게 나무인데 뭐 열매나 맺을 것처럼 폼 잡더니만 마지막에 열매는 없고. 올해는 열매가 없으나 내년에는 열매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보니까 말라빠져 죽어버린 나무입니다. 나무가 있으니 열매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올해는 열매가 없어도 내년에는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속에 조사를 해보니 이건 내년 아니라 아무리 가야 그 2세가 없고 그 3세가 없을 나무입니다. 저도 저를 보고 여러분도 여러분들을 먼저 보고. 내 속에 신앙이라 말은 하는데 신앙 아닌 게 내 속에 들어앉아 신앙을 다 까먹고 앉았는가? “애찬의 암초요” 내 속에 생각하나 내 속에 판단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날 10년 평생 믿던 신앙을 주저앉혀버릴 위험한 게 내 속에 들었는가. 요즘 각 공회들의 제일 대표들하고 대화할 기회가 좀 더러 많아지고 있습니다. 30년 잘 믿다가 한 방에 다 내려앉는 인간들 그것도 신앙이라고. 지난날 30년 믿은 게 아까워서라도 좀 붙들어보지. 뭐 다 그냥 그런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애찬의 암초”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두고 갈 땅에 공부하고 돈 벌고 웃고 살았으면 됐지. 이게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입니다. 하늘나라 가져갈 거고 어디 쓸려고? 집 좋지, 자가용 좋지, 직장 괜찮지, 벌이 괜찮지, 가족들 같이 웃고 행복하게 살지. 세상이 지상 낙원인데 뭔 안 가본 천국 간다고 그래? 천국은 관심이 없고 두고 갈 땅은 자꾸 자꾸 좋아지고 네 몸만 기르는 목자구나. 우리에게 맡긴 식구의 신앙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수고하나. 그것도 있지만 내 속에 두고 갈 땅의 것은 자라가고 넘쳐가고, 내 마음속에 가지고 가야 되는 영생의 요소는 줄어들고 네 몸만 기르는 목자구나. “바람에 불려가는” 바람에 불려가는. 시대가 이런데 뭐 그렇지 시대가 그런데. 시대라는 게 지금은 다 그런데 케케묵은 옛날 소리하면 되나? 하나님보다 나은 과학이 십일조 받아 십일조해서 복 받은 것보다 투자해서 돈 번 게 훨씬 나은데, 기도해서 병 나은 것보다 대학병원에서 마구 나 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바람에 몰려가는, 바람에 불려가는, 시대에 따라 흥청거리는 바람에 하늘이 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필요 없고, 그 속을 들어가다 보니까 하나님과 끊어져 뿌리 없는 가을나무요. 그냥 진단해보면 다 나오는 겁니다. 시험 쳐서 빵점이 나왔으면 그동안 헛일했습니다. 잘못 배웠습니다. 그리고 출발하면 기회라도 있는데 점수는 빵점 맞아놓고 좀 맞은 것처럼 떡 폼 잡고 앉았으면 앞날이 없습니다. 이번 주간에 대학 시험 보고 모두들 수능 시험 점수가 아마 통고 되었는가 그런 가 본데, 시험을 봤는데 50점 나왔으면 난 12년 50점 공부했구나. 그러고 돌아봐야지 80점이나 맞은 척 그렇게 가호 잡는다 그러죠. 폼 잡는다 그러죠. 요즘은 그걸 뭐라고 그러나요? 이 단어도 자꾸 알아듣게 설교를 해야 아이들이 알아들을 것 같은데. 연극해봐야 그런 척해봐야 앞날이 또 그리 됩니다. 오늘 금요일 권찰회 때 우연히 이렇게 물어보니까 현재 우리 교회 출석하는 초등학교 6학년이 13명이랍니다. 굉장하지요. 13명이면 2~3명은 결석해가면서 주일마다 한 10명이 앉을 겁니다. 믿는 집, 믿는 집 초등학교 6학년만 7명입니다. 굉장한 겁니다. 현재 아이들의 숫자는 80년대 공회 전성기와 비교하면 10대 1입니다. 13명이 졸업한다 말은 130명이 졸업한다는 뜻입니다. 시골교회에. 이건 뭐 뉴스에 나와도 될 만한 일입니다. 이거 13년 전에 엄마들이 수고하여 아기 가지고 13년을 애써 지나온 세월에, 이제 12월 둘째 주 셋째 주 넷째 주 지나가면 내년 1월부터 초등학교 졸업하고 이제 중간반이 되면서, 우리와 함께 출석부에 올라가는 지금까지는 초등학교 6학년들은 예배 네 번 다 참석해도 주일 학교 올라가지 장년 반 숫자에는 넣지를 않습니다. 내년부터는 장년 반 숫자에 더해질 겁니다. 이게 가을 열매입니다. 13년 전에 뿌리가 그동안 애를 써서 길러놓은 겁니다. 이게 물을 가진 구름입니다. 이게 애찬입니다. 이게 애찬입니다.

내년은 졸업생이 몇 명인가요? 오혜진 선생님 대충. 내년도 4명? 한 해 4명이면 우수한 거죠. 13명이 너무 많은 거지. 그 4명에 또 저 시내에 있는 집 애들이 더해지면 다섯이 되고 그럴 수 있겠지요. 10년 뒤가 되면 몇 명이나요? 지금 세 살 몇 명인가요? 지금 3살은 두 명인가요? 올해는 13명 지금 3살은 2명, 10년 뒤가 되면 졸업생은 2명. 그다음 내년에 태어날 아이는 몇 명인가요? 제로. 13년 후에 졸업생은 없습니다. 아니 뭐 올해 풍년이면 됐지 뭐 13년 뒤에 내가 살아 있을는지 없을는지 알 수 있냐. 오늘이면 전부지 뭔 내일이 있냐. 이런 사람을 막 가는 사람이다 그럽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했지만 소망은 가져야 되겠지요. 근데 13년 뒤에 졸업생은 오늘이 현재입니다. 그래서 잠깐 여기 읽어보니까 현재 스물에서 스물아홉에 신풍교회 청년 불신자 말고 신풍교회 청년만 20명입니다. 20명이 결혼해서 20명 놓으면 13년 후에 졸업생 20명입니다. 아니지 20명이 결혼하면 10명을 낳지요. 둘이 하나 놓지 하나가 하나 놓지는 못할 거 아닙니까? 심각하게 읽으셔야 됩니다. 20대들 지금 잘 나가지요? 결혼? 내가 결정하는데 예 결정하십시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냥 애나 터져서 눈치나 보지. 내 멋대로 할 때가 좋은 때입니다. 내 멋대로 결정하시고 훗날 값은 반드시 하나님이 자기가 먹게 하지 다른 사람 먹게 하지 않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좋을 때 마음껏 결정할 수 있을 때 잘 계산해서 뭐가 나중에 좋을 건가. 가정마다 연구해 보셔야 됩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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