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3.12.9 유1:13 거칠게 흔들어대는 사건에 깊이 숨겨진 드러나는 자기 정체, 참 자기를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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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3.12.9 유1:13 거칠게 흔들어대는 사건에 깊이 숨겨진 드러나는 자기 정체, 참 자기를 만들 것

관리1 0 46 2023.12.0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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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9 토새

제목 : 거칠게 흔들어대는 사건에 깊이 숨겨진 드러나는 자기 정체, 참 자기를 만들 것

찬송 : 185장(하늘가는 밝은 길이)

본문 : 유다서 1장 13절 -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절로 10절까지 여러 가지 시대적인 불순종의 사례들을 들고 11절에는 인류 출발의 가인의 길, 또 벗어난 발람의 길, 돈 때문이었습니다. 명예 권위, 하나님이 주신 자기 위치를 떠난, 이게 고라의 패역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세 가지 임무를 짚었으나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1절로 10절까지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순종을 떠난 가인, 발람, 고라의 패역의 세 가지 그리고 이런 행위 이런 신앙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뭐 한 자리에 앉아가지고 같은 사람인 줄 알고 그냥 거침없이 먹는다, 뻔뻔스럽다, 대놓고 그런다, 외부로는 그런 것을 “기탄없이” 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내면적으로는 이건지 저건지 구별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양만 보인데 염소가 들어오면 이색 됨이 좀 있어야 되는데, 여반들만 있는 자리에 남반이 들어가면 쑥스러워야 되는데, 양복 입고 부자들이 점잖게 앉은 자리에 그냥 노숙자가 불쑥 들어가면 분위기가 이상해서 뭔가 좀 이상해야 되는데 자기가 자기를 아나 자기 주변의 환경을 살피기를 하나 뭐 그냥 뒹굴고 하나 되고 섞여 같은 줄 알고 방금 말한 그런 여러 가지 환경이 달라지면 손짓 눈치라도 하는데, 신앙의 사람과 신앙에 반대되는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 하나 속에서 그냥 허물없이 섞여버리면 이게 “기탄없이” 신앙 생활하는 경우입니다.

내 속에 천국의 소망이 강해지면 내가 세상을 위해 사나, 어떻게 살아왔나, 좀 이상하게 느껴야 되는데 그래야 정상입니다. 교회 오면 천국을 마구 강조하고 또 예배 끝나면 세상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가고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세상이 맞으면 신앙생활이란 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다른 교회들 대충 신앙 생활하는 것은 사회생활 중에 하나지만 우리처럼 설교도 노력도 교회의 지향점도 오로지 천국밖에 없다고 이렇게 강조를 해버리면 천국이 필요하면 더욱 열심을, 또 세상만이 자기 눈에 있다면 이런 신앙생활은 멀어져야 되는데 양서 동물처럼, 물에 들어가면 물이 편안하고 육지 나오면 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죄악 세상에 들어가 살아도 그냥 어머니 품처럼 또 교회 안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그 고향처럼, 이 두 개는 겹칠 수가 없는데 두 개가 겹쳐지는 것은 물과 기름이 마구 뒤섞이는 것이고 물과 불이 뒤섞여 물은 물대로 불은 불대로 이것도 가능한가? 그럴 리는 없는데 이게 “기탄없이 먹으며”

사람이란 중생이 되면 옛 사람과 세 사람의 고민이 있고 갈등이 있고 취사선택이 있어 마지막에는 세상으로 달려가든 아니면 신앙으로 달려가든 한길이라야 되는데, 여기서 이 말하는 거 보면 딱 거기 사람이고 저기서 저 말하는 거 보면 딱 교계의 사람이고 친구가 이 말할 때는 보면 신앙의 인물이고 저 말할 때는 세상 사람이고 이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거침없이 그러니까 그냥 믿는 줄 아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던지 아니면 이것과 저것이 뚜렷한데 함께 가면 둘 다 아닙니다. 위생적이며 비위생적이 뒤섞여버리면 비위생적이 되는 겁니다. 경찰과 도둑이 너무 가깝고 하나가 되면 그건 절반이 아니라 경찰이 그건 완전 내버린 경찰 되는 겁니다.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아, 기탄없이 먹으니 좋은 잔치 좋은 신앙에 힘을 얻고 신앙으로 순항, 잘 가는 것 같은데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잘 순항하는 거고 물속에 암초가 기다리다 순항하는 배와 만나면 순간 지끈 내려앉아버립니다. 좋을 때 좋은 거지, 좋게 보였던 거지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인 같은 사람, 발람 같은 신앙, 고라 같은 폐역이 열심히 함께 신앙생활하고 집회도 함께 가고, 교회 분담도 하고 강단에 설교도 했는데 세상 가면 세상사람, 교회 오면 신앙의 사람 두 개가 서로 부딪힐 것이 없이 자연스럽게 나간다? 둘 중에 하나인데, 둘, 두 가지 행위가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니요, 타이밍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암초가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퍽 주저앉아버립니다. 아, 재수 없이 왜 암초를 만났을까? 재수 없이 만나? 처음부터 네가 그러려고 딱 작정을 했으니 늦어진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애찬의 암초요 몸만 기르는 목자요” 나를 바쳐 다른 사람 신앙에 어떻게 좀 잘해볼까 또는 내 속의 세상을 향한 기회를 줄여 어떻게 해야 좀 신앙에 더 노력해 볼까 이게 목자인데, 신앙생활에 주력할 기회, 노력, 관심, 경제 전부를 탈탈 털어 두고 갈 세상 좋게 사는 데 쏟아 부으면 “몸만 기르는 목자”다. 심판 날을 위해서 살찌우는 짐승과 같다. “도살할 짐승과 같다” 짐승을 통통하게 길러놓으면 잡을 게 많아 이제 드디어 도사할 날이 가까워지는 겁니다. 하나님 심판 앞에 소돔같이 될 7절이 가까워지는 겁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주변 환경, 세상 추세에 따라 살아갈 뿐인데 “바람에 몰려가는” 그러면 “물 없는 구름이고” 하나님이 주는 은혜는 없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며 겪는 그만한 그런 일들만 있는 것이고, 속을 들여다보니까 하나님은 없고 뿌리까지 뽑혀버린 하나님과 연결의 뿌리가 살아있으면 사람이 볼 때 확인이 되는 가지, 이파리에 문제가 있어도 결국은 다시 또 새움이 돋지만 생명 얻고 뿌리 뽑혀버리면 세월 가도 그거 거름되지 나무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13절로 이어집니다.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바다란 물로 가득 채운 겁니다. 세상 생활 그중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죄짓고 산 생활을 바다라 그럽니다. 죄악 세상, 죄악 세상은 멀리서 보면 잔잔한 것 같고 또 오염되지 않은 물은 깨끗해 보입니다. 깨끗한 물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파도가 일면 물결이 일면 뒤흔들어 보면 깨끗한지 더러운지 나오는 겁니다. 그냥 물을 바닷가 해변의 물을 고요한 물, 호수든 또는 우물물이든 심지어 계곡의 물도 계곡 한 곁에 모여 있는 물 또 요즘은 tv에서 저 태평양 따뜻한 좋은 휴양과 바다 맑은 물이 보일 겁니다. 그냥 가만두면 맑은 물 같은데 물결이 일어버리면 맑아 보이는 죄악 세상, 이웃돕기도 하지요, 문화 봉사도 하지요, 가족이 요즘은 함께 모여 참 오손도손 사는 모습도 있지요, 아침 출근길에 보면 다 신사고 숙녀고 그렇지 안정된 고정된 그런 평안한 모습을 보면 아, 이만하면 세상도 괜찮은데 교회보다 나아 보이는 단체도 있는데 역사 이후에 이렇게 행복하고 좋은 세상이 있겠나? 안정된 상태에서 보면 바닷물처럼 괜찮게 보이는데 태평양 바다도 멀리 보면 그렇게 푸른색으로 그렇게 좋아 보입니다. 좀 가난한 사람들은 산을 보고 경치를 즐기고 정말로 부자들은 바다로 몰립니다. 저 멀리 전체를 보면 탁 트인 맑은 바다 막 새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물결이 일어보면 흔들어보면 속에 품고 있는 별의별 것이 다 거품이 되어 나옵니다. 또 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이 위로 올라와서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러면 그렇지 죄악 세상이 뭐 어디 갔겠습니까? 산꼭대기에 쓰레기부터 밀리고 쓸리고, 쓸리고 가면 들판으로 오고 산꼭대기 쓰레기부터 들판에 비료 거름 별의별 생활에 우리가 쏟아놓은 것 전부 마지막에는 물이 씻어서 강물을 따라 마지막에는 바다에 다 들어가 버립니다. 25만 명의 여수시민이 매일 대소변 붓고 설거지하고 샤워하고 쏟아놓은 그 하수도 정화조 오폐수가 차, 세차한 물이 농사짓고 축사에 온갖 것이, 다 쏟아낸 것이 정화한다고 그게 어디 갑니까? 마지막에는 여수 앞바다에 다 쏟아지겠지 크게 보고 멀리 보니까 잔잔한 푸른 바다 남쪽 바다 노래까지 부르나 흔들어보면 이게 물결입니다. 흔들어봐야 속의 것이 나옵니다.

주일 오전 예배 오는 분들이야 거울 한번 보고 옷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누구든지 주일 오전 10시 예배 올 때는 평안한 마음 교인답게 옵니다. 내 뒤 꼭지를 뒤에서 한번 탁 때려보면 그 사람 마음이 평안한지 늘 신앙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뒤 꼭지를 한번 쳐보면 나오는 반응이 바로 물결입니다. 흔들어봐야 그 사람의 속이 나오지. 말을 던져봐야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 하느니라” 좋은 말로 던져보면 그게 시련인데 그 뭐 이말 저말 별의별 말이 던져지는데 북풍은 막아내는 사람 남풍에는 썩는 작물, 남풍에는 무럭무럭 자라는데 북풍 오면 스러지는 그런 작물, 그런 철새 독수리도 철새입니다. 찬바람이 불면 독수리는 찬바람을 타고 높게 날아 겨울을 버티지 못하는 짐승들을 잡아먹습니다. 또 남풍이 불면 제비가 오고 독수리는 도망갑니다. 북풍 불면 제비는 가고 독수리는 오고 철 따라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어봐야 속에 있는 정체가 나오지 넌 뭐냐? 가난하니 못 살겠다 곡소리가 나오는지 돈이 많으니까 건방진 소리가 나오는지 자기편이 있으니까 흐뭇해서 막 자기 걸 다 내놓고 봉사를 하는지 여기저기서 자존심 긁어놓으니까 뭐 그냥 멧돼지 곰도 이럴 수가 없도록 악하고 독한 게 나오는지 이게 “자기의 수치”인데 앞에서부터 나온 모든 잘못된 생활이 수치인데 흔들어봐야 그 속에 거품이 나옵니다. 아, 이게 속에 들어 있었구나. 바다도 흔들면 물도 흔들면 거품이 일면서 속에 더러운 것이 다 정체가 드러나듯이 사람도 뒤흔들어오면 막 속의 것이 버글버글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생난리를 다합니다.

어떤 말에 어떤 행위에 어떤 환경에 누구를 만나 상황이 어찌 되면 거품을 무는가, “바다의 거친 물결이오” 흔들어보면 바람이 불어보면 그러면 내 속에 들어있는 것이 뭔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보면 “영원히 예비 된 창세로부터 준비된 진리 없는 옳은 거 모르는 깜깜한 흑암에 돌아 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보통 “유리하는 별들이라” 이 별들을 마귀 귀신들이라 그러는데 그건 당연하고 그 마귀 귀신에 붙들린 심신 자기 속의 내면의 신앙이 다 이겁니다. 흔들어 볼 때 어려울 때 바뀔 때, 흔들어 볼 때, 나하고 안 맞는 상황이 펼쳐질 때 이럴 때 속을 볼 수 있는 겁니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보이는 바다가 바다의 정체가 아닙니다. 거친 물결이 일어 속에 뭐가 나오는지 볼 때 그때 비로소 아는 겁니다. 정수기를 통과한 깨끗한 물은 흔들어 봐 보십시오. 물결은 물결만큼 물결로 끝이 나지 그 속에 거품이 일지 않습니다. 소변, 흔들어 봐 보십시오. 마구 더러운 거품이 나옵니다. 소변에 거품이 많아도 가만 두면 또 깨끗해집니다. 흔들어야 나오지 바다도 그렇습니다. 내 마음 내 생에 나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좋을 때 잘 나가는 신앙 그걸 신앙으로 알았기 때문에 속을 인간이 되어 집니다. 환경이 흔들기 전 내가 내 마음을 고요히 살펴 나는 어느 부분에 약점이 많다 미리 살펴 잡고 바로잡는 게 신앙의 복입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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