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4.5.28 요10:1 주님만이 양의 문, 무슨 말이든지 주의 대속에 맞도록 조사 판단에 성령의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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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4.5.28 요10:1 주님만이 양의 문, 무슨 말이든지 주의 대속에 맞도록 조사 판단에 성령의 인도

관리1 0 64 05.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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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화새

제목 : 주님만이 양의 문, 무슨 말이든지 주의 대속에 맞도록 조사 판단에 성령의 인도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요한복음 10장 1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양은 우리가 있는 거다. 양의 우리 울타리가 있고 문이 있고 목자가 지키는 그 우리 속의 양은 든든하지 않겠는가, 양이 우리 안에 보호가 되면 좋지 않겠는가 당연하지요. 양의 우리에 문이 있는데 넘어오는 것들은 도둑이며 강도다, 양 훔치러 오는 도적, 양을 잡아가는 도적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울타리를 넘어 들어온다. 주님이 양은 문을 통해 드나들고, 그다음 문지기는 그 양 훔쳐 가는지 지켜볼 것 아닌가, 그러므로 예수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은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양은 뭘까, 양의 우리는 뭘까, 양의 우리의 문지기는 뭘까 말은 알아듣겠는데, 저게 뭔 뜻인가 7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예수님이 양의 문이라” 예수님이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예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아 우리는 구원이구나, 양의 생명과 양의 평안을 주는 양의 구원이구나, 병든 사람은 병이 나아야 구원이고, 공부 못하는 사람은 공부가 해결이 되어야 구원이고, 사고 난 사람은 사고 해결이 구원이지 않는가.

양에게 구원이란 양의 생명을 지켜주는 우리, 양에게 필요한 평안과 모든 양식을 공급해주는 양의 우리는 양에게 구원이구나, 주님이 문이면 그러면 우리는 양이 되겠구나. 마태복음 10장 16절 “내가 너희를 보내니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세상은 이리고 신앙은 이리떼 가운데 양이 되어 세상이란 현실이란 환경이란, 우리가 사는 평소의 생활이란, 우리의 신앙을 잡아가는 잡아먹는 훔쳐가는 죽여 버리는 양에게 이리가 원수듯이, 신앙에게 세상이란 환경이란, 생활이란 그 원수와 같구나, 그런데 우리가 있어 양의 신앙을 지켜주면 양의 생명을 보호하면 그게 구원이겠구나, 그런데 구원은 문이 있어야 되니 예수님이 양의 우리의 문이 되는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9절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7절에 예수님이 “나는 문이라” 그랬으니까 7절 끝에 “나는 양의 문이라” 9절 내가 문이니, 예수님이 양의 우리의 문이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다니면 예수 구원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 당연히 구원을 얻고, 예수님 때문에 들어갔다가 예수님 때문에 나왔다가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드나들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양식을 얻으리라.

엄마 때문에 태어난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겼다가 놀러 갔다가 안겼다가 학교 갔다가 안겼다가 또 잠자다가 엄마 품에 드나들며 그 젖 얻어 먹고 살고 보호를 받고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니 아이는 낳아놓은 부모의 품이 생명이며 구원이며 자라가는 양식이 되는 거고, 나무라는 것은 땅에 심겨져 자랐기 때문에 나무는 땅에 붙들려 있어야 생명도 또 모든 영양도 빨아들이고,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바람이 불어도 버티고, 그래서 나무에게는 땅이 생명이 되고 평안이 되지, 땅은 나무와 원수 사이가 아닙니다. 주님과 우리의 사이는 땅과 나무처럼, 또 양에게 우리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아이에게 부모의 품이 필요한 것처럼 그런 거다, 그런데 예수님 떼놓고 예수님 없이 10절 드나드는 것은 도적인데, 도적이 드나드는 것은 도둑질하고 안 되면 죽여 버리고, 양 잡아먹고 양 망치는 게 그게 도적이다, 이름은 목자라 해도 양의 신앙에 도움이 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 이걸로 보는 겁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에 도움이 되었으면 목자고,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에 도움 되지 않았으면 그게 도적이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주님은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 구원 위하여 죽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위하여 주님은 “자기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절 삯군은 월급 받고 양을 치러 오는 종업원은 삯군은 얼른 보면 목자 같은 데 이건 돈 벌러 왔기 때문에 삯군은 알고 보면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양을 던져놓고 도망가느니라, 뭐 이리가 사람 잡아먹겠습니까?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는 양 잡아먹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이렇게 쭉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양은 양의 우리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양이 양의 우리에 들어가려면 문으로 들어가는 거다, 양이 담 뛰어 넘어 들어가겠는가? 양의 우리의 문이 주님이시다, 예수.

그런데 문지기가 있어 조사를 한다. 문지기가 성령입니다. 성령 에스겔 40장에 세상에게 붙들려 간 신앙, 세상이 좁아 세상에 빠져버린 교회와 신앙, 세상을 닮아 세상 따라 가버렸는데, 다음으로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할 때는 문으로 들어오라, 문으로 들어올 때 내가 나를 돌아보고, 문통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돌아보고 여섯 걸음, 그다음에는 문지기가 나를 좌우 양쪽에서 서로 봐줘야 되는데, 이 문지기가 뭔가?

어제까지는 남의 눈을 통해 나를 고칠 것. 남이 나를 이렇다 저렇다 욕을 할 때 그 욕을 가지고 나를 들여다보면 그 나의 단점을 고칠 수 있는 문지기가 된다, 그랬습니다. 욕만 들으면, 남의 말만 들으면 전부 다 옳은가 그게 아니라, 남이 뭔 말을 할 때 내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면 성령이 나에게 저 말은 맞다 네가 고쳐야 되겠다, 저 말은 억지소리다 피동대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 좌우에서 나를 뒤흔드는 별의별 말을 그냥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신앙의 양심을 통해 들으면 되고, 신앙의 양심에 알려주는 분이 바로 문지기 성령입니다.

에스겔 성전의 문은 신약에 와서 보니까 주님이었습니다. 문은 예수님이라 구원이라, 예수라는 말은 말씀으로 살아갔는가, 사죄. 세상 속의 교회를 지키려면 세상 속에 나의 신앙을 지키려면, 오늘 같은 세상 속에서도 가정교회가, 가정교육이, 가정교회가 부부의 신앙이 바로 되어 지려면 나는 말씀으로 어떻게 살았는가, 말씀으로 산 자기를 돌아보고 나는 내 멋대로 살았던가, 주의 뜻을 따라 살았던가? 칭의로 자기를 살펴보고, 나는 나 혼자 세상을 사는가? 주님 손잡고 모시고 동행하는가? 나는 세상만 보고 세상을 사는가? 천국을 향하여 살아왔는가? 예수님이 문이라는 것은 말씀으로 뜻으로 하나님 동행으로 천국 소망으로 이게 사죄 칭의 화친 영생입니다. 내가 내 생활을, 내가 내 지난날을 내가 내 마음속과 내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말씀으로 되었나? 주의 뜻을 따라 가고 있나? 주와 동행하고 있나? 천국을 향한 나의 마음은 변치 않는가? 이 네 가지를 가지고 나를 돌아보면 이게 문지방을 통과하며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게 됩니다. 문은 주님이니까 내가 나를 네 가지로 돌아보면서,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문제를 남의 눈 남의 말을 통해 남과 비교해가면서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저 집은 이렇게 산다, 저 집은 저렇게 살았는데 나는 인생이 이리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남과 나를 비교해보고 남이 말까지 하면 그 말을 들어 나를 또 조사해 보고 부모의 말, 선생님의 말, 주변의 말, 교회의 말, 이웃의 말, 나를 누가 뭐라 그러는가? 나를 궂다고 투덜대는 사람, 입을 쥐어 박으려고 난리를 하는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며 문지기를 쥐어박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그 문을 들락날락해도 신앙과는 상관없습니다.

왜 이런 말이 들리는가? 왜 남들은 나를 이렇게 보는가? 말이 들리면 그 말로 가지고 나를 조사해 보고 나한테 말하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이렇게 사는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가? 나는 새벽 예배를 안 가는데 왜 저 집은 새벽 예배를 가는가? 새벽 예배 가는 집과 새벽 예배 안 가는 신앙은 뭐가 틀린가?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는 뭐가 틀린가? 우리 교단과 다른 교단은 뭐가 틀린가? 우리 예배와 다른 예배는 뭐가 틀린가? 우리 식구들과 다른 식구들은 뭐가 틀린가? 내 아이들과 다른 집 아이들은 뭐가 틀린가? 비교할 때마다 전부 그게 이웃을 통해 들어오는 말이 되어 집니다. 네가 옳고 바른 길을 걸어가니 외롭게 좁은 길이 되어 넓은 길이 비교가 되는가? 네 속에 신앙이 없고 너 속에 세상밖에 없다 보니 결과적으로 너의 가정과 너의 아이들이 신앙이 저렇게 없게 되었는가? 세상으로는 잘 먹고 잘 사는데 그걸 비교할 게 아니라 세상으로 잘 먹든지 못 먹든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라는 것이 들어있는가? 이게 문제인데 공부를 모르는 부모는 가방 들고 학교 가면 공부하는 줄 압니다. 공부를 아는 부모는 가방을 들고 드나드는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 성적이 어찌 되는지를 봅니다. 눈이 밝은 부모는 성적이 이러냐 저러냐? 상관없이 실력이 늘고 있는가, 공부할 의지가 있는가, 어느 전공이 맞는가 이것까지 보는 겁니다. 뭐가 문제인가 뭐가 잘못 되었는가? 주님이 나는 문이라 성령이 문을 지키는 문지기라 처음 믿을 때는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세상만 보고 살면 큰일 난다, 사람이 죽으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 주님을 믿게 되는 겁니다. 믿고 나면 주님은 널 위해 살 찢고 피 흘려 말씀으로 살도록 길을 열었는데, 넌 눈만 뜨면 돈, 눈만 뜨면 세상, 눈만 뜨면 먹는 거, 눈만 뜨면 이리 사냐, 저리 사냐 너는 살 연구만 하는데 주님은 널 위해서 죽었는데 너는 살 연구만 하는 게 옳으냐? 이런 양심의 가책이 이게 문지기가 나를 조사해 주는 겁니다.

오늘 아침 세상 속에 자기 신앙을 지켜내려면, 세상 속에 귀한 우리의 이 신앙을 이어가려면 내가 나를 돌아볼 때 그냥 내가 나를 그냥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되었는가, 주의 뜻대로 되었는가 사죄 칭의 입니다. 주님과 동행은 어찌 되었는가? 나의 천국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졌는가? 이걸로 자기가 자기를 살펴보고 그다음에 신앙의 양심 속에 너는 이렇게 살았고, 옆집은 이렇게 살았고, 너의 신앙은 이게 좋다 그러고 저쪽은 저게 좋다 그러고 너와 다른 사람을 자꾸 자꾸 비교를 하는 것이 문지기입니다. 뭐 남이 말을 해주면 그건 두 말할 것 없고, 남의 말만 들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많이 욕해 주면 무조건 고쳐서 좋은 사람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말을 하든 안 하든 내 속의 문지기 되신 성령이 내게 감화와 감동으로 이런 거다, 저런 거다 나도 나를 돌아보고 내 지식으로 내 경험으로 내 기억으로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이거 뭐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나는 양의 우리의 문이다” 성령은 문지기다. 예수 없이 드나들면 도둑이다, 예수 빼고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은 아무리 반성해봐야 그건 공자 제자 되지 신앙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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